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한·일 정상회담이 2일 서울에서 열리지만 한일관계를 진전시킬만한 성과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희망을 공개적으로 밝혀 왔다. 하지만 아베가 어떤 인물이며 그가 이끄는 일본 정부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 보면, 박 대통령과 한국 정부에 아쉬울 것은 별로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이라면 핵심 쟁점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물론이고 다른 쟁점들에서도 돌파구를 마련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인 뿌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으로 징역을 살았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에 닿아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군국주의 일본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역사수정주의의 토대 위에 서 있는 아베는 외조부의 숙원이었던 헌법 개정을 이뤄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이다.
아베의 그 희망은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하나씩 현실이 돼가고 있다. 중국을 견제해야 하지만 그를 위한 충분한 재정 투입이 힘든 미국은 일본을 대리인으로 내세우기로 하고 아베의 꿈을 밀어주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에 힘입어 아베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다. 지난해 7월 헌법 조문은 그대로 둔 채 해석만 바꾸는 방식을 통해 일본도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어 아베는 지난 4월 미국 방문을 계기로 집단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내용으로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했다. 9월에는 집단적자위권과 관련된 일본 국내법 제·개정 절차를 마무리했다. 남은 것은 개헌뿐인데, 개헌이 당장 안 되더라도 이제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미국을 대신해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지속적으로 원해온 이유는 미국의 압력 때문이었다. 일본을 동북아 군사전략이 대리인으로 세우려는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한 더 튼튼한 연대를 만들기 위해 한·미·일 3각 동맹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애덤스 카티나 미 국무부 대변인이 지난 29일 "한·일 양국의 건설적 관계는 미국에 있어 전략적 우선순위"라며 "양국 정상회담은 역내 평화와 번영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논평한 데에 잘 드러나 있다. 아베는 미국의 이런 뜻에 부응하고자 2006년 9월 방한 이후 9년 만에 한국땅을 밟는 것이다.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된 근본 배경이 이러하다 보니 회담에 임하는 아베의 목표는 미국을 향해 ‘한국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이라는 분석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아베가 역사에 대한 자신의 신념까지 양보해가며 박 대통령과 합의를 도출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가는 법·제도적 정비를 마친 자신감으로 충만한 아베 입장에서 한국에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지난 8월 아베의 전후 70주년 담화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과거사 문제에 관해서도 아베가 할 만큼 했다는 메시지였다.
최대 쟁점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정상회담 직전까지 양국이 벌이는 신경전을 보면 회담에서 만족할 만한 해결책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30일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조속히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위안부 문제가 금년 내에 타결돼 피해자분들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관방부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이제까지 밝혀온 대로"라며 "전제조건 없이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한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금년 내 타결’이라는 시한을 제시함으로써 조급함을 드러내며 협상력을 약화시킨 반면, 일본 측은 아쉬울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일본의 이같은 태도로 미뤄볼 때 아베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인신매매로 희생돼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는 지난 4월 방미 때의 발언 정도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아베는 다른 쟁점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한국에 할 말은 하는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인 기자에게 한국 검찰이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한 문제를 언급하며 언론 자유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중국해 갈등에서 한·미·일 3각 공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함으로써 그렇잖아도 미·중 사이에서 난처한 입장인 한국을 더 곤혹스럽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정상회담을 마친 아베가 수행기자단과의 간담회를 갖거나 귀국 후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은 주제를 이야기한다면 적잖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한·일 정상회담 개최가 공식 발표된 지난달 28일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서울 종로구 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쓴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리는 학생을 안아주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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