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3000여km 떨어진 한국에 외교적 쓰나미로 다가오고 있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여하는 문제나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는 문제 등에서 미·중 양자택일의 힘든 결정을 해왔던 한국은 두 나라 모두 물러날 뜻이 없는 남중국해 문제에서 다시 한 번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2010년 미국과 중국이 각자 “핵심적인 이해가 걸린 수역”이라고 선언하면서 본격화한 남중국해 갈등은 중국이 지난해부터 인공섬을 건설하기 시작하며 악화됐다. 중국은 사람이 살지 않는 산호초는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유엔 해양법을 뛰어 넘기 위해 산호초에 활주로와 항만 등 거주시설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지난 27일 오전 미국이 ‘시위’를 벌이며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미국은 해군 구축함을 인공섬 중 하나인 ‘수비 환초’ 12해리 안쪽으로 진입시키는 작전을 폈다.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자 중국은 미사일 구축함 2척을 파견해 미 구축함을 추적했다.
이 작전이 벌어지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관리들은 “진입 작전은 수주일 동안 계속될 것”이라며 맞섰다. 그러나 그로부터 이틀 후인 29일 존 리처드슨 미 해군참모총장은 우성리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사령관과 화상 회담을 열어 국면을 전환시켰다. 이들은 회담을 통해 양국이 대화를 지속하고 충돌을 피하기 위한 합의문을 준수하기로 했다. ‘군사적 위기 통보’와 ‘공중 조우’ 대처요령 등을 담은 두 건의 합의문으로 지난 9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체결된 것이다. 이번 진입 작전의 실질적인 지휘자인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이 2일 중국을 방문하는 등 군사교류를 예정대로 하기로 한 것도 긴장을 더는 끌어올리지 말자는 의사를 교환한 셈이다.
하지만 대화국면이 열렸다고 해서 두 나라가 기존의 입장을 바꿀 생각은 없어 보인다. 양국은 일단 숨고르기를 하면서 미래의 충돌에 대비한 군사적 대비를 다져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와 함께 주변국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외교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자신들의 편에 서라는 요구를 노골적으로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에게 (내가) 유일하게 요청한 것은 우리는 중국이 국제규범과 법을 준수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라며 "만약 중국이 그런 면에서 실패한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같은 요구와 중국의 ‘무언의 압박’ 속에 놓인 한국은 일단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0일 일본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답변은 이 문제에 관한 정부의 표준답변이다. 박 대통령은 “남중국해는 우리 수출 물동량의 30%와 수입 에너지의 90%가 통과하는 중요한 해상 교통로”라며 “해당 지역에서의 항행과 비행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고, 분쟁은 국제적으로 확립된 규범과 관련 합의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답했다. ‘항행의 자유’을 강조한 것은 미국의 손을 들어준 셈이고, ‘평화적 해결’을 언급한 것은 이번 진입 작전을 비난한 중국의 입장과 비교적 가깝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중국해 분쟁의 당사국은 아니면서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 파트너인 일본과 호주는 다소 다른 태도를 취했다. 일본은 미국 편에 확실히 섰다. 아베 신조 총리는 27일 “(미국의 군함 파견은) 국제법을 기준으로 한 행동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동맹국인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와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호주는 줄타기 행보를 보였다. 마리즈 페인 호주 국방장관은 28일 성명을 통해 미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호주도 미국처럼 남중국해 암초 인근 해역을 자국 군함이 통과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호주는 11월 초 중국과 남중국해에서 연합훈련을 할 예정이다. 미국의 진입 작전 후 훈련이 연기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페인 장관은 일정에는 변화가 없다고 확인했다. 호주가 이처럼 ‘양다리’ 전략을 쓰는 것은 호주의 주요 수출품인 철광석과 석탄 등 원자재의 최대 구매자가 바로 중국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과의 정치적 관계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하는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남중국해 분쟁 자체에 대한 선택도 힘들지만, 그 여파로 동아시아 전체에서 미·중의 안보경쟁이 가열될 경우 더 큰 고민에 빠질 수 있다. 명목상으로는 북한 미사일 대비용이지만 실제로는 중국 견제용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미국이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남중국해 작전 이틀 후이자 한·미 국방장관이 회담하는 안보협의회의(SCM) 나흘 전인 29일 사드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의 부사장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를 한·미 정부가 공식·비공식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미국의 ‘군불 때기’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중국이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에 있는 ‘미스치프 환초’(중국명 메이지자오)에서 인공섬을 건설하고 있는 장면을 지난 5월 미국측 위성이 촬영한 것이다. 수십척의 배들이 준설토를 실어 나르고 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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