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교과서 제도는 정부의 행정관료에 의해 교과·교육 내용이 영향을 받을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하는 헌법 규정과 모순될 수 있다."
지난 1992년 헌법재판소는 이같은 결정문을 내놓았다. 헌재는 한발 더 나아가 "교과서 문제에서 중앙정부의 일방적 결정으로 획일화를 강제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기본 이념에 부합하는 조처라 하기 어렵다"며 "국사의 경우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군사정권의 기운도 채 가시질 않았던 때였다.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28일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공동 주최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토론회'에서 "헌재 결정문에는 국정 교과서가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위헌적이라는 내용이 바탕에 깔려 있다"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헌법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당시에도 국정 교과서가 잘못됐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획일화된 국가주의적 사고를 강제하는 답답한 현실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교육 현장에선 역사 교과서가 국정화하면 '죽은 교육'으로 이어진다는 목소리를 냈다. 임선일 여의도고등학교 교사는 "역사 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뀌면서 학교에선 주입식 교육이 아닌 해석을 통한 토론 수업이 가능해졌다"며 "학생들로부터 통찰력을, 교사들로부터 전문성을 뺏는 국정화로는 살아있는 역사 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배경희 참교육학부모회 사무처장도 "박근혜 대통령은 '창의력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융합형 인재를 키우겠다'고 공약해놓고 하나의 교과서로 순응적 교육을 하려고 한다"며 "세월호 참사를 본 학부모들은 더 이상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가르칠 수 없다"고 말했다.
야권은 1000만 서명운동과 '진실과 거짓 체험관'에 이어 이날 토론회로 공동 행보를 계속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주장에는 자기들만 애국이고, 생각이 다르면 모두 비애국이라는 무서운 사고가 깔려 있다. 애국을 독점한다는 사고가 바로 독재"라고 비판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교육부 차관 업무를 대통령이 발 벗고 나서고, 비밀 전담부서를 구성해 청와대가 국정화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모습 자체가 비정상"이라며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인식부터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 의원도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다양성이라는 성취를 내팽개치고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고 있다"고 했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운데)와 정의당 심상정 대표(왼쪽), 천정배 무소속 의원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정관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야권 3자 연석회의 주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의 공동 행보는 지난 21일 서울 신촌 1000만 서명운동, 25일 서울 보신각 앞 '한국사교과서 진실과 거짓' 체험관 개막식 이후 세 번째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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