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한·일 군사협력, 장기적인 국가전략 고려했나
일본 방위상 발언 은폐 논란 등 파열음…국방당국 신뢰 추락
여론 눈치 보며 흔들리거나 동북아 신냉전 휩쓸릴 우려
2015-10-25 10:11:04 2015-10-25 10:11:04
한국과 일본의 군사협력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일 정상회담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국방교류는 그 어느 정부 때보다 깊고 넓어지고 있다. 최근 일본 방위상이 ‘한국의 주권범위는 휴전선 이남일 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일본의 속내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일 군사협력을 무리하게 추진한다면 자칫 감당키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20일 방한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회담한 것은 최근 국방교류의 정점이었다. 두 장관은 회담 후 발표한 공동보도문에서 “양국이 지역 및 세계에 있어 많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며 국방교류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략적 이익을 공유한다’는 표현은 주로 동맹국들끼리 쓰는 것으로 두 나라가 같은 목표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최근 일본이 한국에 대해 종종 쓰고는 있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 표현에 한 장관이 동의한 셈이다. 나카타니 방위상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몰래 추진하다 발각돼 무산된 군사정보협정 등이 체결되면 양국의 실질적인 군사협력이 본격화된다. 한 장관은 “국회의 국민의 지지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지만 완전히 거절하지는 않았다.
 
일본에서 18일 열린 해상자위대 관함식에 한국 해군의 대조영함이 참가한 것도 상징적이었다. 두 나라의 국기를 나란히 게양한 대조영함의 수병들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탄 사열함인 ‘구라마’ 앞을 지나가며 거수경례를 했다. 구라마에는 과거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것이자 현재 해상자위대의 깃발로 사용되는 욱일기가 걸려 있었다.
 
국방부는 여론을 의식한 듯 한국 함정이 일본 관함식에 참가한 것이 처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과거사 갈등을 증폭시킨 아베 총리의 사열을 받는 행사에 13년 만에 반드시 가야 했는지에 대해선 뚜렷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아베는 관함식 전날에도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의 가을제사에 공물을 바쳤다. 그는 관함식 직후에는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최신예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에 올라 미·일이 군사적으로 한몸이 됐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22~23일에는 일본에서 한·미·일 국방부의 차장급들이 수석대표로 참석하는 안보 관련 실무회의가 열렸다. ‘3국 안보토의’(DTT)라는 회의체의 틀 안에서 열린 회의로,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이슈를 다뤘다. 특히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와 각국 군대의 활동 범위와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군사당국은 사안의 민감성 때문인지 회의의 의제와 결과를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이밖에 일본의 항공막료장은 20일 서울 국제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에 참석해 정경두 공군참모총장과 회담했다. 지난 2일에는 일본 방위정무관이 방한해 백승주 국방차관과 대화를 나눴다. 양국 국방장관들은 다음달 자위대 음악축제에 한국 군악대를 파견하기로 했고,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군사협력을 위해 준장급 실무회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이같은 군사교류의 실상을 보면, 과거사 갈등으로 인해 2012년 5월 이후 양자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별 의미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상회담 여부와 상관없이 실질적으로는 이미 광범위한 협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미·일 3각 군사협력 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의 압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16일 한·미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한·일 두 나라가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맺기 바란다고 요청한 바 있다. 미국 해군참모총장은 이날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3국의 연합군사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초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두 나라 정치·군사적 협력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의 군사적 팽창에 대한 우려가 크고, 그런 일본과 협력해도 괜찮다는 여론이 형성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증대시키다 보니 당국이 무리수를 두면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나카타니 방위상 20일 한민구 장관과 회담하면서 “대한민국의 유효한 지배가 미치는 범위는 휴전선의 남쪽이라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고 발언한 것을 국방부가 누락한 일이 대표적이다. 그 발언은 자위대가 북한에서 작전을 펼칠 때는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국방부는 그 발언은 공개하지 않은 채 “나카타니 방위상은 ‘한·미·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라고만 밝혔다. 그러다가 다음날 일본 언론에 의해 전체 발언이 공개되면서 국방부가 여론을 의식해 일부러 은폐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정부가 이처럼 대일협력을 밀어붙이며 무리수를 두다가는 여론의 역풍을 맞거나 장기적인 국가전략에 심각한 내상을 입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사정보협정 밀실 추진이 발각된 후 비난 여론을 무마하고자 독도를 방문함으로써 한일관계를 파탄시킨 이명박 대통령 식의 길을 걷거나, 혹은 한·미·일 군사동맹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동북아 신냉전’에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지난 18일 일본 도쿄 남쪽 사가미만에서 진행된 일본 해상자위대의 관함식 도중 ‘키리사메’ 구축함 승조원들이 욱일기 옆에 서 있다. 이 행사에는 한국 해군의 함정(대조영함)도 13년 만에 참가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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