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한-미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이 핵 포기라는 명확한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공동성명에서는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개발이 유엔 안보리 결의의 상시적 위반임을 명시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발사 또는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추가적 실질조치를 포함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을 경고했다.
한미 공동성명에 맞서 북한은 즉각적인 비난공세보다는 평화협정체결을 주장하며 한반도 비핵화 카드를 제시한다. 북-중 관계 회복을 위해서라도 중국의 6자회담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반영된 대응인 듯 보인다. 남북 고위급 합의에 따른 대화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이산가족상봉 일정도 진행 중이어서 북한이 과거와 달리 신중론을 보이는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위기와 대화라는 패턴이 사라지면 북한은 자신의 핵 능력 강화를 공개적으로 선포하고 이를 입증하는 방식으로 핵무장 위협카드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재등장시킬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핵무장 노력은 미국의 대북압박에 대한 방어적 측면과 동시에 정치의 상부구조 이해를 반영한다. 북한이 핵 능력을 과시하려는 이유는 북미 관계의 개선, 미국과의 대화를 통한 활로 개척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북핵 위기는 1990년대 이후 국제질서뿐만 아니라 남북한 역관계, 북한의 통일과 대남전략의 급격한 변화를 반영한다. 냉전 시기의 북방 삼각구조가 깨지고,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가 지연되면서 북한의 고립화, 국제 안보환경의 변화 등이 북한에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 조성됐다.
나아가 남한은 국제정세의 변화과정을 포착하여 적극적으로 북방정책을 추진했지만 북한은 유엔 동시 가입,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의 수정, 조국통일과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강화의 통일적 추진으로 전환한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은 통일보다는 오히려 체제 유지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북핵 문제의 성격은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대결과 갈등의 역사가 투영되어 있으며, 미국 정부의 대북압박정책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반평화적 수단에 의한 모험주의적 대응의 조합이라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은 냉전 해체 이후 중국과 소련의 핵우산에 공백이 생기고 대북경제 봉쇄와 압박이라는 상황이 지속하자 핵 개발을 통한 비대칭 억제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북한 정권은 핵 실험이나 인공위성 발사를 통해 정권의 지도력을 강조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 했으며 ‘체제의 위대함’을 선전하는 도구로 활용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보여준 일련의 핵 시위는 한반도와 주변국 민중을 볼모로 한 ‘거대한 도박’이라 비판받아야 한다. 북한이 2012년 새로 개정한 헌법 전문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한 것, ‘경제건설과 핵 무력건설 병진 노선’과 ‘핵보유국 및 인공위성 제작·발사국임’을 법령으로 채택함에 따라 동아시아 군사적 긴장은 고조됐다. 이로 인해 일본 군국주의세력과 한국의 핵무장론자들 주장이 득세하고 한미주둔군지원협정(일명 SOFA)의 개정과 한미동맹의 재구성을 위한 논의는 약화됐다.
현대사가 입증하듯이 핵무기가 전쟁 방어수단이자 전쟁을 억지하는 평화수단이라는 주장은 허구였다. 핵무기의 목표는 엄밀한 의미의 군사시설이 아니며 시민에 대한 절대적 파괴, 절대적 소외일 뿐이다. 공포의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핵 무장이 상호 필멸 전략으로 명명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핵 문제 해결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목표는 비핵화를 통한 비확산이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핵 보유 또는 핵무기 증강(수직적 확산)은 규제하지 않은 채 제 3세계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수평적 확산)만 규제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이중 잣대로는 북한과 반 서방국가들을 설득할 수 없다. 물론, 북핵 문제를 핵 독점과 주권 사이의 갈등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일부 반제민족주의자의 시각, 한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극우세력의 주장 또한 설득력이 없다.
한미 공동성명이 북한에 대한 엄포가 아니라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대북 경제 봉쇄, 제재를 지속하여 북한 핵 능력만 키워왔던 미국과 한국 정부의 정책이 수정되어야 한다. 비핵화를 위해서는 2007년 6자회담의 2?13 합의에서 협의한 동결·불능화·폐기라는 3단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북한을 “국제 의무와 공약을 준수하는 데 동의”하는 길로 이끌려면 최소한의 조치로서 북미 고위급 회담과 함께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정례화해야 한다. 동시에 평화체제와 비핵화 평화추진을 위한 복합적 대화채널을 가동해야 한다. 6자회담(평화체제)의 신속한 개최와 4자회담(비핵화)을 통해 6자회담의 비효율성을 보완하는 등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한편, 한국정부의 적극적이고 공세적이며 선제 대응도 필요하다. 한국이 북한보다 외교적·경제적 우위와 자신감을 획득한 상황에서 북한이 비핵화의 카드로 제시한 평화협정을 수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백두산 관광, 제2, 제3의 개성공단의 확대 등과 민간교류 활성화 등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야 한다.
북핵 문제와 동아시아 위기의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논의가 불필요하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과거의 인식 틀로 현실에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인식 틀로 현실적 해법을 찾을 것인가로 나아갈 때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창언 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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