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끝은 무뎌지지 않았다. 146일 만에 최고위원회의에 복귀한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50)의 입은 여전히 매서웠다. 국정화 역사교과서는 '아베 교과서이자 쿠데타 교과서'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말 때문에 당직정지라는 징계를 받았지만 '할 말은 하겠다'는 복귀 선언 그대로였다.
'강성' 이미지가 정 최고위원의 전부는 아니다. 얼마 전 출간한 책에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10남매를 키우며 현대사의 굴곡을 헤친 어머니에게서 조국을 본다고 했다. 감옥에 간 막내를 보고 가슴 아파한 어머니를 생각하며 정치에 대한 사명을 되새긴다. 때로는 최전방에서 '당 대포'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거침없이 정면승부하는 이유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다.' 정 최고위원은 요즘 마틴 루터 킹의 말을 새삼 떠올린다고 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정의와 불의의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악의 편이라고 말씀하셨다. 적어도 국정화 문제만큼은 국민들이 침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 사진/뉴스토마토
-최근에 낸 책 <거침없이 정청래>는 어떤 내용인가.
어머니 이야기를 많이 담았다. 1921년생인 어머니는 16살 때 시집 와서 10남매를 낳으셨다. 1965년에 태어난 내가 막내다. 그 과정에서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보릿고개 등을 모두 겪으셨다. 막내를 키워서 대학에 보냈는데 민주화 운동 한다고 감옥에 가는 걸 보시고는 충격받고 쓰러지셔서 6년 동안 앓다가 돌아가셨다.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지만, 대한민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슬픈 어머니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강성으로 알려졌는데, 감성적 측면이 느껴진다.
역사적인 고초를 겪은 수많은 어머니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낳고 키운 어머니들에게서 조국을 본다. 조국 또한 같은 고초를 겪은 것이다. 우리 어머니들이 바라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것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가는 꿈이라고 생각한다. 그길에 벽돌 한 장이라도 놓는 것이 정치라는 영역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팟캐스트 '나는 정청래다'도 인기를 끌고 있는데.
팟캐스트는 책을 홍보하려고 시작했다. 책 광고를 1분짜리로 짧게 하지 말고 1시간 반 동안 해보자는 의도였다. 세계 최초의 시도였다고 자부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3~4번 방송에 100만 건이나 다운로드 됐다고 한다. 스트리밍을 포함하면 500만 명 정도가 들은 셈이다. 주변에서 없애지 말라고 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계속해도 될까요?' 물었더니 지지하는 댓글이 엄청났다.(웃음) 그래서 매주 현역 국회의원을 초대해 인생사도 듣고, 정국 현안에 대한 얘기를 나눌 생각이다. 최근에는 새정치민주연합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위' 위원장인 도종환 의원이 출연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것을 어떻게 보나.
한마디로 '아베 따라하기'다. 영구집권을 꿈꾸는 일본 극우세력처럼 대한민국의 극우세력도 영구집권을 꾀하려는 전략이다. 역사를 통제해서 민주의식, 역사의식을 말살하겠다는 것이다. 또 '북한 따라하기'이기도 하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건 북한이 하는 방식을 채택하겠다는 얘기다. 북한이 김일성 유일사상을 주입하려고 국정화를 한 것처럼 일제 강점기를 조국 근대화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유신을 근대화 혁명의 출발로 보자는 얘기다. 이렇게 왜곡된 역사인식을 학생들에게 주입해 영원히 우파의 국민으로 살아가게 하겠다는 모략이다. 대부분이 나라가 자유 발행 체제로 가는 마당에 일본 군국주의와 나치 방식으로 역사를 100년이나 거꾸로 되돌리는 위험한 도박이다.
-야당뿐 아니라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지만, 저지하기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1987년 6월항쟁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헌 조치로 촉발됐다. 대통령 직선제로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결국 개헌이 이뤄졌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그때 호헌 조치에 못지않은 충격적 사건이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학교수들이 집필 거부를 선언하고 있다. 이들이 지난 대선에서 모두 문재인 후보에 투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봇물처럼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다고 해서 이번 일에도 지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의 큰 착각이고, 국민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판단이다. 결국 성공할 수 없는 '역사 쿠데타'다.
-20여일 전 최고위원회에 복귀하며 '할 말은 하겠다'고 했는데.
책 잡힐 일을 만들지는 않겠지만, 할 말은 참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다만 앞으로 더 진중하고, 지혜롭게 말하겠다는 의미였다. 계속 할 말은 할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웃음) '아버지는 군사 쿠데타, 딸은 역사 쿠데타', '이것은 아베 교과서이자 종북 교과서이고, 쿠데타 교과서다' 모두 내가 한 말이다.
-87년 6월항쟁을 언급했는데, 이른바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에 대한 비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 않나.
'386'이란 용어 자체를 거부한다. 6월항쟁은 80년대 학번과 60년대생만 해낸 일이 아니다. 고졸 노동자, 중졸 식당 아줌마도 힘을 보탰다. 그리고 나는 소위 386이라는 분들과 같은 길을 걷지도 않아서 86그룹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남의 일이기 때문에 말하기에 조심스럽지만, 대중의 평가는 냉엄하고 정확하다. 그런 평가에 대해 굳이 반대할 생각이 없다. 86그룹이 선명성 있는 의정활동을 못한다는 평가가 있는데, 난 정반대의 이야기도 듣는다. 하지만 자랑이기 때문에 자제하겠다.(웃음)
-총선이 6개월 정도 남았다. 선거제도·공천을 둘러싼 신경전도 벌어진다. 특히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에서 '현역 20% 교체'도 내걸었는데.
지난해 최고위원에 출마하며 이미 상위 30%는 단수 공천, 하위 30% 낙천, 중간지대 40%는 경선을 하자고 주장했다. '물갈이 공천'에 대한 부분도 동의한다.
-징계를 받았던 것이 공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이미 사면받았다.(웃음) 공천에서 불이익은 없을 것 같다. 지금 문재인 대표나 최고위는 당 지도부라고 해서 기득권을 인정받지 말고 공정하게 다 경선하자는 방침을 갖고 있다.
-당내에서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 논쟁이 뜨거웠다. 안철수 전 대표는 자체적으로 혁신안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민주정당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다만 국정화 정국에서 싸움이 치열한 만큼 시선이 분산되거나 집중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타이밍을 조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혁신안에 대해선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고, 부족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방향이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지 않나. 어떻게 자기 입맛에 100% 맞는 안이 나올 수 있겠나. 그러려면 혁신안이 130개 나와야 한다. 혁신안이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안 되려면 당헌·당규 개정 작업을 같이 하며 실천해나가야 한다.
-탈당 움직임도 있고, 문 대표 재신임 정국 이후 비주류 쪽에서 '통합행동'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당내 분위기를 어떻게 보는지.
지금은 당내 통합을 먼저 할 시기다. 우선 집안 단속부터 하고, 총선에 임박해 다른 세력과 통합이든, 연대든 해야 한다. 당내 단결이 첫 단추가 돼야 한다. 그걸 넘어서는 통합 목소리는 지금 상태에서 적절하지 않다.
-문 대표의 향후 행보는 어떻게 전망하나.
알아서 잘하시지 않겠나.(웃음)
-지역구가 서울 마포을인데, 지난 4년을 돌아본다면.
4년뿐 아니라 초선(2004~2008년) 시절부터 시작해 열매를 맺은 것들이 있다. MBC 유치 운동 끝에 본사 사옥이 상암동으로 옮겨졌다. 주민과 힘을 모아 땅값 인하 운동을 벌이며 서울시를 움직인 결과다. 경의선 철도 부지도 공원으로 바뀌었다. 원래 아파트 6층 높이로 지상철이 놓이기로 되어 있었지만, 지하화하면서 공원이 됐다. 연남동 상권도 덩달아 살아나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지금 봐도 뿌듯하다. 학교에 지원되는 특별교부세도 크게 늘면서 교육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얼마 전 국정감사가 혹평 속에 끝났다.
개인적으로는 보람이 있었다. 민간 잠수사의 억울한 사연을 세상에 소개했고, 지방자치단체를 전수조사해서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도 못 받는 사실을 알렸다. 인감증명서 위변조, 교통순찰차 경고방송이 반말로 이뤄진다는 점도 지적해 곧바로 개선됐다. 다만 국회의원이 잘한 일들은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다. '맹탕국감'이라는 보도는 해마다 나온다.(웃음)
이순민·박주용 기자 soonza00@etomato.com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5개월여 만에 복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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