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맛지도] 떡볶이에게 반한 건 처음이야, 매콤 달달 분식집 - 다문화가게 '얌얌 분식'
기능사회
2015-10-03 20:31:54 2015-10-03 20:32:47
1997년 12월 3일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로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기업들의 부도 및 경영 위기가 계속되었고 실업자가 증가했다. 97년 당시 작은 완구공장을 운영하던 김태윤 씨도 IMF의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공장과 재산을 잃어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해야 했다. 김 씨는 노숙 생활 중 후배를 만나 용산에서 함께 포장마차를 운영했다. 거기에서 중국인 허샹 씨를 만난 김 씨는 그녀와 결혼한 뒤 회기역 2번 출구 앞에서 함께 노점 생활을 시작했다. 회기역 앞 ‘얌얌 분식’을 운영하는 다문화가정 김태윤?허샹 부부의 이야기다.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로에 있는 회기역 2번 출구 계단을 내려가면 도로의 양쪽에 나란히 들어선 분식집과 포장마차들이 보인다. 노점들 앞으로 마을버스와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나가고 허기진 누군가는 분식집 앞에 서서 무언가를 먹는다. 분식집 중에서도 유독 많은 학생과 젊은이가 찾아가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얌얌 분식’이다. ‘맛있게도 얌얌’이라는 문구가 보이는 간판 아래에서 바삭바삭한 튀김과 어묵·떡볶이·순대 등이 이리저리 오고 간다. 12, 13가지의 튀김과 저렴하고 양 많은 떡볶이와 순대 덕에 이미 이곳은 회기역의 맛집으로 자리 잡았다. ‘얌얌 분식’을 운영하는 김 씨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 안녕하세요, ‘얌얌 분식’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A : 안녕하세요, ‘얌얌 분식’은 떡볶이·튀김·순대·어묵 등을 파는 분식집입니다. 2005년에 회기역 앞에서 수레 끌며 장사를 시작했는데 처음엔 다코야키(문어 빵)를 팔았어요. 품목이 점점 늘어나면서 지금과 같이 분식을 팔게 되었죠. 규모가 조금 커지니 좋은 상호를 지어야겠다 싶어 ‘얌얌’으로 정했습니다. ‘얌얌’하면 먹는 게 금방 떠오르니 사람들이 더 자주 찾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지었어요.
 
‘얌얌 분식’의 메뉴판.사진/지속가능 '바람'
 
 
Q : 분식집 장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 원래 졸업 후 작은 완구공장을 운영했어요. 제가 87학번이니 90년대 초였겠네요. 어린이 세발자전거를 팔았는데 젊은 나이에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했던지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더라고요. 근 10여 년 동안 열심히 운영하며 공장 규모를 착실히 키워갔죠. 그런데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쫄딱 망했어요. 공장도 잃고 재산도 잃었죠. 남은 30만 원을 손에 쥐고 서울역에서 노숙했어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어느 날 서울역에서 후배를 만났어요. 후배도 뭔가 하다 망해서 노숙하고 있던 거예요. 뭘 먹고 살아야 하나 함께 고민하다가 용산역 앞에서 장사를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수레 끌고 다니면서 떡볶이를 팔게 되었죠. 이게 생각보다 잘 되었어요. 사람도 많이 찾고 돈을 꽤 버니까 규모가 커졌는데 여러 사정 때문에 후배랑 따로 가기로 했어요. 너는 너대로 가라, 나는 나대로 가겠다. 그리고는 아내를 데리고 이곳에 와서 장사를 시작했죠.
 
Q : 지금은 중국에서 온 아내분이랑 같이 분식집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아내 분은 어떻게 만나셔서 여기에서 같이 장사를 하게 되었나요?
 
A : 아기엄마는 용산역에서 떡볶이를 팔 때 만났어요. 당시 근처에 있던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던 사람이었어요. 공장에 다니면서 떡볶이를 먹으러 자주 찾아왔죠. 자주 보니 친분이 생겼고 한국말을 가르쳐주게 되면서 더 가까워졌어요. IMF로 사업이 실패하면서 느꼈던 상실감을 지금 아내에게 위로받으면서 사랑에 빠졌던 거 같아요. 아내가 한국말을 못해서 의사소통을 한자(漢字)를 글로 써가면서 했어요. 밥 먹었느냐고 물어볼 땐 식(食)자를 쓰고, 사랑한다고 말할 땐 애(愛)자를 쓰고.
 
그런데 아내가 비자만료로 중국에 돌아가게 되었어요. 계속 옆에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게 가버리니 속이 텅 빈 느낌이 들더라고요. 함께 보낸 시간이 소중하게 다가오고 아내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때에 중국에 간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임신했다는 말을 들었죠.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서류를 준비해서 중국에 찾아갔어요. 아내와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게 생각보다 복잡했어요. 준비해야 할 서류도 많았고요. 힘겹게 한국에 돌아와서 자리 잡고 시작한 곳이 여기 회기역 앞이에요. 처음에 왔을 땐 정말 허허벌판이었어요.
 
Q : 가게 운영을 시작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A : 우여곡절이 많았죠. 2005년에 여기 빈자리를 350만 원 주고 들어왔어요. 수레에 천막을 치고 장사를 했는데 무허가 노점이었어요. 정부에서 단속 나오면 피해 다니고 걸리면 벌금내고. 하루에 3~4만 원 팔았는데 생활비론 턱없이 부족했죠. 밥을 제대로 먹고 다니는 날이 적었어요. 쌀 살 돈이 없어서 라면을 많이 먹었어요. 그때 최고의 외식은 남대문 가서 굴국밥 먹는 거. 장사하면서 막노동도 같이 하곤 했어요.
 
서울 후암동에서 마련한 신혼집은 사글셋방이었는데 형편없었죠. 힘들었지만 가족을 바라보고 악착같이 살았죠. 제가 열심히 살아서 그런지 함께 노력한 아내 덕인지, 2010년 정식으로 허가가 떨어졌어요. 다문화가정이니까 도와주겠다, 대신 가게를 더 깔끔하게 하고 열심히 살아라, 라는 차원에서 허가가 났던 거 같아요. 허가 난 뒤 위생적인 측면을 많이 챙기게 되고, 가게가 안정화하면서 먹고살 만해졌어요. 음식을 최대한 깔끔하게 해주고 싶은데 여전히 길거리에서 운영하다 보니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게 지금의 어려운 점이랄 수 있겠네요.
 
Q : 외지에서 생활해야 했던 아내 분이 고생 많으셨을 거 같아요.
 
A : 그렇죠. 특히 언어 문제 때문에 힘들었을 거예요. 한자 써가면서 대화했다고 말했죠. 지금 한국말 하는 거도 장사하면서 배운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중국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밥 먹었느냐고 ‘니츠팔러마’이러면 왜 욕을 하나 이러고. (웃음) 문화적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많았죠. 아마 제일 큰 어려움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일 거예요. 지금도 보면 중국 방송 틀어놓잖아요. 그리워하는 게 느껴지죠.
 
처음 장사 시작했을 땐 다문화가정이 지금 같이 많지 않아서 주위에서 따가운 시선을 자주 받았어요. 이질감도 많이 느꼈죠. 아내와 언어나 문화적 측면에서 다르다 보니까 안 맞는 게 많아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그랬어요. 그런 걸 참아가면서 아내는 저와 자식들 바라보고 가정을 일궈나가고 있는 거죠. 서로 이해?배려하려하고. 그래서 정말 고마워요. 게다가 이젠 사회적으로 다문화가정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 인식도 많이 변해서 잘 적응해서 살고 있어요.
 
동대문구 ‘다사랑 알리미’에 소개된 ‘얌얌 분식’.사진/지속가능 '바람'
 
Q : 요즘 프렌차이즈 떡볶이집이 많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포장마차에서 파는 곳이 특색 있어서 좋더라고요. 사장님이 생각하시는 ‘얌얌 분식’의 특색이 뭐가 있을까요.
 
A : 튀김이요. 아내가 중국 사람이라 기름 가지고 요리를 잘해요. 만두도 잘 빚고요. 그래서 튀김이 다른 데 보다 종류가 많아요. 12~13가지를 팔고 있어요. 더 맛있고 양도 많죠.
 
Q : 저도 여기 튀김이 특히 인상 깊었어요. 종류도 많은 데 튀김 하나하나가 큼지막하고 바삭바삭하니 맛도 좋죠. 게다가 다른 곳은 대개 2,000원에 네 개인데 여긴 여섯 개예요. 어떻게 이렇게 싼 가격으로 파실 수 있으신가요.
 
A : 청량리 도매시장에 직접 가서 물건을 떼서 팔아요. 100% 신선하다 이건 아니지만, 꽤 괜찮은 물건들을 저렴하게 구해 와서 저렴하게 파는 거죠. 가격이 싸다 보니 아무래도 남는 게 많진 않아요. 생활하는 데 지장은 없지만 많이 팔아야 남으니까. 그래도 자주 찾아와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면 지금 가격이 좋은 거 같아요.
 
Q : 전 여기 오면 떡볶이?순대?튀김 이렇게 세 개 시켜서 먹거든요. 튀김도 튀김이지만 떡볶이도 소스 맛이 독특해요.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적당히 맵고 적당히 달달한. 순대나 튀김을 곁들여 먹기에 딱 좋은 맛이에요.
 
A : 노력 없는 좋은 결과는 없다고 생각해요. 손님들이 좋아하는 소스를 개발하려고 서울 시내의 유명한 떡볶이집엔 다 다녔던 거 같아요. 먹어보고 비교하고 집에서 시도해보고. 그냥 고춧가루 고추장 물엿만 넣으면 부족해요. 과일도 갈아 넣고 채소도 갈아 넣고, 맛을 내기 위해 좋은 재료를 함께 넣어야죠.
 
당면떡볶이?순대?튀김. 이게 7,000원이다!.사진/지속가능 '바람'
 
Q : 가게를 운영하면서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원칙 같은 게 있으신가요?
 
A : 청결?친절?맛이요. 청결하게, 친절하게, 맛있게. 거리에 있는 가게라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매일 세 번씩 청소해요. 친절은 손님이 오면 매번 다 그러긴 어렵지만, 최대한 손님 입장에서 요구를 맞춰주려고 하고요. 맛은, 이미 있는 메뉴도 맛있으나 계속 변화를 주려고 노력해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잖아요. 변화와 함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려고 시도하고 있어요. 여기 꽃게랑 홍합이랑 넣고 얼큰하게 만든 해물 어묵도 최근에 새로 내놓은 메뉴예요.
 
Q : 운영하신 지 10년 정도 되셨으니 소소한 이야기들이 많을 거 같아요. 특별히 보람찼거나 기억에 남는 일 있나요?
 
A : 삼육병원에 면접 보러 왔던 간호사가 생각나네요. 병원에 면접 보러 가는 데 너무 배가 고파서 찾아온 사람이었어요. 당시 가게가 여기밖에 없었는데 그 사람이 찾는 게 우리 가게에선 취급하지 않는 거였어요. 딱해서 먹으라고 그냥 만들어 줬어요. 그리고는 잊고 있었죠. 나중에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삼육병원에 입원할 일이 있었는데 담당 간호사가 그분이었던 거예요. 먼저 알아보고 인사하면서 편하게 대해주더라고요. 배고프고 돈도 없을 때 그렇게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사람들이 가끔 생각나서, 그리워서 찾아줄 때 가게를 운영하는 게 보람차게 느껴져요. 삼육보건대나 시립대 학생들이 많이 찾아오거든요. 제가 10년 정도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취직하거나 결혼해서 다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기 데리고 올 때도 있고. 오랜만에 찾아와서 가게가 바뀐 것 같아 가려다가 제 얼굴을 보고, 사장님 저 누구누구였는데 기억하시느냐고, 일부러 찾아왔다고, 이런 경우도 있었어요.
 
Q : 앞으로의 운영 계획이나 손님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A : 다양한 음식을 더 맛있게 제공하고 싶어요. 튀김 종류도 늘리고 싶은데 원가문제 때문에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거든요. 새 품목들을 현실화해서 종류를 늘려보려고요. 그리고 좋은 자리가 있다면 가게를 하나 더 늘려야겠단 생각을 해요. 지금 장소는 좀 복잡하고 좁잖아요. 더 위생적이고 음식을 먹기에 아늑한 공간에 가게를 열고 싶어요. 하고 싶은 말은, 맛있게 먹고, 그 힘으로 성공해서 나중에 다시 또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얌얌 분식’ 가게 모습. 사진/가게 제공
 
 
송윤아 기자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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