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나는 일하는 것이고 이씨는 집주인으로 월세 받는 것인데 보험료를 내가 더 많이 내야 하는 거요?”
최근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역가입자로 전환됐다는 소식을 들은 김씨는 이유를 알아보던 중 몰랐던 사실을 깨닫고 허탈을 금치 못했다. 퇴직 후 가진 재산은 집 한 채 달랑인 그에게 자동차까지 있다고 보험료가 20만원 가까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같은 동네 사는 B씨는 옆에서 보험료 얘기를 하던 도중 자기들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하질 않는가? 분명 서울에 주택만 5채가 있는 부자라고 들었는데 말이다. 듣고 보니 김씨를 울리는 이씨 나름의 비법이 있었다.
30억 자산가 보험료 1만원 vs 집한채인데 월 15만원
이씨가 건강 보험료를 거의 내지 않게 된 연유는 이렇다. 중개업을 하는 이씨는 사업자등록증(소득이 있는)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내야한다는 소식에 18만원에 달하는 보험료를 내야할 처지에 놓였다. 만원 한 장도 허투로 쓰는 법이 없는 이씨는 보험료 책정에 세대원 재산과 자동차 소유 여부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때부터 '수전노' 이씨의 갑작스런 상속이 시작됐다. 현재 살고 있는 부인 명의의 32평형 아파트를 첫째아들에게 넘기고, 자신 소유의 아파트는 둘째아들에게 이전했다. 어차피 물려줄 거라면 미리 이전해 주고 건강 보험료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자동차도 아들 명의로 넘기면 월 2만8000원은 아낄 수 있었다. 그는 두 아들에게 집과 자동차 명의를 넘기면서 건강 보험료를 월 1만4410원으로 줄였다. 이씨는 임대수입도 있어 건강 보험료를 낼 수 있는 능력도 충분하다. 그러나 정작 15만원에 달하는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3억짜리 주택 한 채 안고 있는 A씨다.
부자들의 묘한 건강보험료 절세(?)비법
국민건강보험은 직장가입과 지역가입으로 나뉜다. 직장가입자는 오로지 근로소득의 3%만 건강 보험료로 내면 된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종합소득(이자소득, 배당소득, 사업, 근로, 연금, 기타), 재산, 자동차 세 기준을 고려해 건강보험료 부과한다. 기본적으로 총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이 소득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보니 이씨처럼 허점을 이용해 절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건강보험체계에서는 재산과 소득이 많아도 직장가입자로 등록하면 보험료가 훨씬 싸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연간 300억에 30억 빌딩을 소유한 사람이 건강 보험료를 만원정도 낸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는 30억짜리 빌딩 주인은 딸이었는데 딸을 빌딩관리자로 등록해 자신을 월 급여 110만원 받는 직장가입자로 등록시킨 뒤 보험료를 3만원대로 낮춘 것이다. 이처럼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주택 5채 이상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부양자로 등재돼 건강 보험료를 면제받고 있는 사람들이 15만명이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김씨처럼 자격을 상실할 경우 상황에 따라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중고차가 더 비싸게 대우(?) 받는 황당한 사례도 발생한다. 홍씨(42세)는 이직을 하면서 차를 사기로 결심했다. 원래는 2000cc 아반떼 신형을 사고 싶었으나 경제적 부담이 커 중고차를 알아봤다. 그러다 2003년에 나온 3000cc 외제차를 500만원에 샀더니 다음 달 건강 보험료가 무려 5만원이나 오른 것이다. 깜짝 놀라 전화해보니 배기량과 연식을 보고 계산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김씨는 “연비 좋고 배기량도 적은 차를 안타고 싶은 사람이 없겠느냐. 돈이 없으니 그런 중고차를 사는 것”이라며 “없는 사람들 돈을 더 뺏어간다”고 분개했다.
반포자이 전세살면서 농가주택 등록..보험료 감면
같은 전세를 살아도 반포 자이에 산다면 재산이 많아서 보험료를 많이 내야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전세 6억원 집에 사는 지역가입자 송모씨가 연소득 5000만원에 2500cc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면 이 경우 건강 보험료는 34만원이 넘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27만원밖에 내지 않는다. 이는 그가 등록한 재산이 강남에 있는 6억짜리 전세가 아닌 시골에 있는 모친 소유의 농가주택이어서 7만5000원 이상을 감면 받은 것이다. 연소득 5000만원이라도 대출을 받아 2억원 전세보증금을 낸 서씨는 건강 보험료가 6만원 더 올랐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세를 놓는 건물주는 영세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2016년까지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어 건강 보험료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자산가들은 사업장을 만들어놓고 직장가입자로 등록하거나 임대사업자가 되기도 한다"며 “우리가 돈을 걷고 싶어도 현행 세법 체계에서는 정보 공개가 되지 않아 걷을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말했다.
퇴직후엔 피부양자→임의가입→지역가입 순으로 유리
그렇다면 보통 지역가입자가 건강 보험료를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피부양자로 인정되는 것이다. 본인의 가족 중 직장가입자가 있어야 하고, 직장가입자에 의해 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 때 가족이란 배우자를 비롯해 자녀, 사위, 며느리 등이 포함된다. 또 소득요건도 만족해야 한다. 소득요건은 이자소득과 배당소득 합계액이 4000만원 이하이고, 사업자등록이 있지만 사업소득이 없는 경우, 사업자등록이 없는 경우 사업소득의 연간 합계액이 500만원 이하이고 근로소득과 기타소득이 있는 경우에는 합계액이 4000만원이하여야한다. 이런 부양요건과 소득요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되면 피부양자 자격취득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신청서를 작성해 국민연금보험공단에 제출하면 된다.
또는 퇴직을 하거나 이직을 위해서 직장을 그만 둔 경우에는 국민건강보험에서 지역가입자로 전환시킨다. 이 때 건강보험료 폭탄이 발생할 경우가 있는데 이를 대비해 2년 동안 기존 직장보험료 정도만 내면 되는 임의계속가입제도에 신청하면 유리하다. 신청방법은 전 직장에서 1년 이상 근무한 뒤 퇴직한 지역가입자로 지역보험료 납부기한에서 2개월이 지나기 전까지 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하면 된다. 안태권 미래에셋은퇴설계소 연구원은 “건강보험을 유지하는 것도 재테크가 된다"며 "퇴직 후에는 피부양자, 임의가입, 지역가입 순으로 신경을 써서 유지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명정선 기자 cecilia10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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