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향한 ‘대헌장’으로 평가받는 9·19공동성명이 채택된 지 지난 19일로 10년이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 중 최대 난제인 북핵 문제를 마침내 해결할 수 있게 됐다는 그날의 기대는 사라진지 오래고, 한반도는 더 위험한 곳이 되어 있다.
2006년과 2009년, 2013년 세 차례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은 자신들의 헌법에까지 핵보유국임을 명시했고, 현재도 핵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통한 안보를 추구하는 원인이 되어온 미국은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사실상의 방관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한국도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 문제에서 사실상 손을 뗐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참가하는 6자회담은 2008년 12월 이후 7년 가까이 열리지 않고 있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이번 10주년을 계기로 마련한 북핵 세미나는 9·19공동성명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중국 외교부 산하 중국국제문제연구원 주최로 18~19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이 세미나에는 북한 측이 참석하지 않은 채 6자회담 참가 5개국과 호주, 태국, 캄보디아 등에서 온 전문가 30여명만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9·19공동성명이 한반도 평화와 안전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하면서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논의만 했을 뿐이다.
2005년 제4차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원칙과 기본 경로를 명시한 합의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나머지 5개국이 에너지 지원 등 경제협력을 증진시킨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추진하는 한편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협상도 진행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한반도 냉전체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작업이다. 특히 9·19공동성명은 이같은 합의들을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해 단계적으로 이행한다고 명시했다. 어느 한 나라가 어떤 행동을 먼저 한 후에 다른 나라가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 행동’을 하자고 약속한 것이다.
이 성명을 이행하는 구체적인 ‘액션 플랜’은 2007년에만 두 차례 나왔다. 북한 핵시설 폐쇄에 관한 내용을 담은 2007년 2·13합의는 이행을 완료했다. 2차 액션 플랜으로 북한 핵시설 불능화를 다룬 10·3합의는 2008년 8월 북한 영변 핵시설 내의 냉각탑이 폭파되는 데까지 이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해 12월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를 끝으로 회담이 재개되지 못하면서 10·3합의의 이행은 중단됐다. 그 이후 기왕에 이행된 비핵화 조치들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고,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개발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추가했다.
2008~2009년 이후 한국과 미국 정부는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정말 비핵화를 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행동을 먼저 해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영변 핵시설 일부의 가동을 중단하는 등 선제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못 박은 것이다. 그러나 9·19공동성명 탄생 주역들은 그처럼 전제조건을 내거는 것은 회담 재개를 불가능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능력만 커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미·일 정부가 북한에 요구하는 선제 조치는 6자회담을 열어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들이기 때문에 회담을 여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같은 입장의 대표주자는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다. 그는 9·19공동성명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베이징에서 회담 중인 한국 대표단에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하며 협상을 컨트롤한 인물이다. 이 연구위원은 “회담에서 얘기를 해봐야 북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고 그래야 대책이 나오는 것”이라며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강조한다. 당시 한국측 수석대표였던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의 경우는 약간의 선결조건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에만 행동을 요구하는 한·미·일 정부의 입장과는 다르다. 송 총장은 17일 언론인터뷰에서 “북한은 기존의 핵활동을 중지해 핵 개발 ‘엔진’을 끄고, 미국은 대북 제재 일부를 해제하는 패키지” 조치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송 총장과 이 연구위원이 공히 강조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이다. 6자회담을 재개하는 일과 회담 성사 후 미국과 북한의 입장차를 조율하는 일 등에서 한국이 강력한 의지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미국 측에서는 9·19 당시 미국 측 차석대표였던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 국가종보국장(DNI) 산하 비확산센터 소장이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하고 나섰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19일 워싱턴타임스 기고문에서 그같이 주장하며 "재개된 6자회담이 아무런 소용이 없고 북한이 9·19공동성명에서 합의된 비핵화를 거부한다면 그때는 북한과의 협상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북한을 외면하고 북한과의 상호작용 없이 상황이 저절로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북한과의 핵협상에 대한 회의론이 강한 미국 정부 안팎의 분위기에서 디트라니와 같은 주장은 극소수만이 하고 있고, 1년여 남은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중에는 북핵 협상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19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9·19공동성명 1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연설하고 있다. 북한 측이 참가하지 않은 이번 세미나에서는 9·19공동성명에 관한 원론만 강조됐을 뿐 7년째 중단된 6자회담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은 제시되지 못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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