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홋카이도 강제노동 희생자 70년만의 귀향
입력 : 2015-09-18 06:00:00 수정 : 2015-09-18 06:00:00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팀장
“홋카이도가 섬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이 산을 넘어도 저 산을 넘어도 바다다. 그러니까 도망칠 생각 하지 마라!”
 
1940년 12월 눈이 내리는 겨울 밤 일본의 홋카이도 시골 역에 내린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에게 탄광의 간부가 내뱉은 첫 마디 말이다.
 
그 때 식민지 조선의 고향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배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 온 그들은 열차에 실려 히로시마, 오사카, 도쿄를 거쳐 혼슈의 끝 아오모리에 닿아 다시 배를 타고 홋카이도에 닿았다.
 
열흘에서 보름에 걸친 강제연행의 기나긴 길에서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길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이 되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끝 모를 강제노동의 고통이었다. 고향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눈물로 새기며 배고픔과 추위, 구타에 시달린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끝내 해방을 보지 못하고 혹한의 땅 홋카이도에 유골이 되어 묻혔다. 해방 70년이 되어 유골이 된 그들이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온다.
 
홋카이도 아사지노 일본 육군비행장 건설현장에서 발굴된 희생자 서른네 분, 슈마리나이 유류댐, 심메이선 철도공사현장에서 발굴된 희생자 네 분, 비바이 미쓰비시 탄광에서 가스폭발사고로 희생되어 근처 절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던 희생자 여섯 분, 니시혼간지 삿포로별원 납골당에 합장되어 있던 희생자 일흔 한 분이 그들이다.
 
1970년대부터 홋카이도 지역에서 강제노동의 역사를 발굴해 온 일본 시민들과 재일조선인들의 활동이 밑거름이 되어, 1997년부터 한국, 재일, 일본, 아이누 젊은이들이 자신의 손으로 강제노동 희생자들의 유골을 발굴해 온 동아시아공동워크숍의 활동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오늘의 유골봉환으로 그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을 일본으로 끌고 가 강제노동의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은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에게 있다. 따라서 희생자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할 책임도 당연히 그들에게 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정부의 밀실야합으로 맺어진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전후보상이 끝났다고 강변하는 일본 정부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있다.
 
군인, 군속으로 끌려간 희생자들의 유골 가운데 극히 일부가 한일 정부 간 교섭으로 돌아온 사례가 있으나 그마저 지금은 중단된 상태이다. 70년이 지나는 사이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유족들도 이제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일 양국 정부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며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다 못한 시민들이 직접 희생자들의 유골을 들고 귀향길에 나선 것이다.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인천까지 항공편으로 두 시간 반이면 오는 길을 두고 홋카이도에서 도쿄,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부산을 거쳐 서울에 이르기까지 그 때 그 청년들이 끌려간 길을 거슬러 오는 열흘간의 대장정이 마침내 오늘 서울에 도착한다. 내일 7시 서울광장에서는 그들의 장례식이 치러진다. 70년 만에 고향 땅에 돌아온 그들을 두 손 모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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