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 정주영 ‘창의력·추진력’의 결실
정주영 회장 탄생 100주년 맞아 재조명…“정부 대북정책도 뒷받침”
‘정주영과 남북관계’ 세미나서 당시 통일부 장관 등 ‘증언’
2015-09-13 10:11:57 2015-09-13 10:11:57
"어차피 남과 북은 같이 살아야 한다. 북한 진출은 평화도 가져오지만,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우수한 노동력을 활용해 남북이 협력하면 상생의 경제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경쟁력이 떨어진 남한의 제조업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금강산관광 사업이 그 첫 번째 발걸음이다.”
 
‘정주영과 남북관계’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9일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주최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1989년 첫 북한 방문과 1998년 두 차례의 ‘소떼 방북’,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 등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1997년 당시 현대그룹 중국대표로 정 회장 방북 관련 실무를 맡았던 김고중 전 현대아산 부사장은 세미나 발표에서 정 회장이 금강산관광 사업을 추진하며 종종 했다는 말을 소개했다. 남북경협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간명한 설명이었다. 정 회장은 “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 전쟁 나면 다 끝이다. 우리가 이루어놓은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될 수도 있다”며 ‘남북의 상생’을 강조했다고 김 전 부사장은 덧붙였다.
 
1915년 북한 지역인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정 회장은 노태우 정부가 7·7선언을 발표하며 남북관계의 패러다임 변화를 선언한 이듬해인 1989년 처음으로 방북해 금강산 개발 등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고 돌아왔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인 1998년에는 6월과 10월 북한을 방문해 각각 500마리와 501마리의 소를 기증하고 돌아왔다. 10월 방북에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금강산관광 독점 개발권을 확보하며 대북사업의 시동을 걸었다. 금강산관광은 98년 11월 시작되어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으로 중단될 때까지 10년가량 계속됐고, 195만여명이 관광을 다녀왔다. 개성공단 사업도 정주영-김정일의 약속을 토대로 2000년 현대아산과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사이의 합의서가 채택되면서 본격화됐다. 정 회장은 2001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김대중 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정 회장의 소떼 방북을 승인했던 강인덕 전 장관은 세미나 발표에서 정 회장이 금강산관광을 추진하는 과정을 보며 느낀 점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정 회장의 애향심과 금강산 및 통천에 대한 애착이다. 둘째는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 육지로 북한 땅을 밟는 극적인 이벤트를 생각해낸 그의 예측과 통찰력, 창의력이다. 셋째는 ‘우격다짐’의 북측 논리를 제압할 수 있었던 강력한 지휘력과 인내력이다. 강 전 장관은 또 “정부와의 협력, 나아가 국민 대중의 지지와 동의를 확보하기 위한 홍보·선전 능력도 발휘했다”며 “정부의 대북정책을 정확히 파악해 이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사업 목표를 성취하는 능력의 소유자였다”고 강조했다.
 
김고중 전 부사장이 소개한 에피소드들도 주목을 받았다. 그에 따르면 1998년 정 회장의 육로 방북은 당초 북한 군부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러나 정 회장이 꺼낸 ‘소떼 방북’ 카드의 명분이 좋아 그 반대를 무력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전 부사장은 “정 회장이 고향을 떠날 때 부친께서 소 판 돈을 들고 와 그 돈을 돌려준다는 의미였다”며 “서산농장에 소목장을 마련해 (정 회장이) 오래 전부터 남몰래 준비한 아이디어”라고 밝혔다.
 
개성공단 입지 선정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도 소개됐다. 김 전 부사장에 따르면 공단 부지로 현대는 황해도 해주를, 북한은 평안도 신의주를 원했다. 그같은 신경전 속에 1년간 침묵하던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8월 방북한 정몽헌 회장에게 개성에 공단을 만들어 보라는 깜짝 제안을 했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김 전 부사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개성 일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라며 “현지답사 때 판문점 지역에 커다란 태극기와 인공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정 회장이 남북관계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대북사업에 대한 본인의 강력한 의지와 현대그룹의 자본력 때문이었지만, 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화해·포용정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냉전적 대북정책으로 회귀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은 그 반대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금강산관광은 중단되어 현대아산은 치명타를 입었고,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 투자도 금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남북관계와 현대의 대북사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1차 소떼 방북과 2차 소떼 방북 사이인 1998년 8월 북한이 ‘대포동 1호’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해 긴장이 조성됐던 당시에 대한 강인덕 전 장관의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다. 강 전 장관은 “그렇다고 해서 북측에 맞서 긴장상태를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안보와 협력 병진 방침’을 확인하며 현대의 대북 협력사업을 계속 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현대의 대북사업과 정부의 대북정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를 끌어주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는 ‘경제가 정치와 군사를 견인한다’는 점과 남북관계에서는 ‘비선라인’의 활용이 중요하다는 점이 정 회장이 남긴 두 가지 유산이라고 강조하며 박근혜 정부도 주도적으로 남북관계의 기회를 살리지 않으면 “봄이 언제 엄동설한으로 돌변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6월 16일 1차 소떼 방북 당시 자신이 키운 소의 고삐를 잡고 환송 인파를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가 최재영 씨의 2012년 사진전 당시 전시된 작품이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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