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는 인건비가 공정비의 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노동에 지급할 비용을 줄이는 게 공정비를 아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원가절감 차원에서 가장 먼저 행해지는 전통적 방식이기도 하다.
그중의 하나가 톤당 작업단가인 기성비를 줄이는 것이다. 기성비는 하도급 대금의 일종으로, 투입된 인원과 작업시간 등을 계산해 협력사에 지급하는 돈이다. 가령 원청에서 기성비를 절반으로 삭감할 경우 하청업체는 한 달 안에 수행해야 하는 작업을 보름 안에 마쳐야 최소한의 수익이라도 건질 수 있는 구조다. 이는 각종 산업재해 등을 유발하는 직접적 원인이 된다.
현대중공업의 작업 현장 모습. 사진/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현대중공업은 지난 수년간 지속된 손실분을 메우기 위해 하청업체에 살인적인 기성비 인하를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올 들어 공기 지연 등을 이유로 예년과 비교해 적게는 20%, 많게는 50% 가까이 기성비가 삭감됐다며, 이는 당초 합의한 액수보다 턱없이 낮은 금액이라는 게 하청업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 7월에는 현대중공업과 하청업체 46곳이 기성비 규모를 놓고 이견이 발생, 기성비 지급이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11월(11개사)과 올해 2월(15개사)에는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 하청업체들이 기성비 삭감에 반발, 직원들을 강제 퇴근시킨 뒤 다음날 출근시키지 않는 초강수로 이어졌다.
낮은 기성비는 하청업체의 운영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등에 따르면 올 1월 577개에 달했던 현대중공업 사내 하도급 하청업체는 5월 들어 525개로 급감했다. 5개월도 되지 않아 52개 업체가 문을 닫았다. 하청업계와 노동계는 폐업의 원인을 원청인 현대중공업의 무리한 기성비 인하 요구에서 찾고 있다.
폐업이 속출하다 보니 퇴직금은 물론 밀린 임금도 못줘 노동부에 피소된 업체들도 상당하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업체에 대한 임금 체불과 퇴직금에 대한 고소, 진정 건수가 527건에 달한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폐업으로 임금 등을 받지 못한 규모만 110억원 수준이다.
이에 대해 조선업계는 급여 미지급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하청업체 경영진에 있지만, 현대중공업이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입은 대규모 손실을 기성비 감축으로 메우고 있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이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해양플랜트에 대한 저가수주와 기술력 부족으로 인한 잦은 설계 변경, 소위 물량팀과 돌발팀의 사용으로 기성금을 지속적으로 낮추고 있다"면서 "지난친 기성비 단가 인하는 하청업체 폐업은 물론 노동환경까지 악화시켜 산업재해에 노출되는 악순환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이 적자 경영의 책임을 사내 하청업체에 전가시키고, 이 과정에서 최대 피해자는 힘없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된다는 얘기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투입된 인원과 작업시간 등을 고려해 실적(공정률)에 따라 기성비를 정상적으로 지급해 왔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사내 하청업체와 기성비 책정 기준에 대해 입장차가 존재해 왔지만, 이전까지는 회사가 업체 입장을 존중해 지급해왔다"며 "최근 공정률에 따라 지급한다는 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하다 보니 입장차가 생겼던 것이고, 올해는 회사가 정한 원칙대로 기성비 지급이 완료된 상태"라고 해명했다.
김상우 기자 theexo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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