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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뷰티 인사이드' 백종열 감독 "한효주 선택은 신의 한 수"
2015-08-19 22:23:57 2015-08-19 22:23:57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이력이 굉장히 특이한 영화감독이 나타났다. 그래픽 디자이너, CF 감독, 뮤직비디오 감독, 안경·문구 등 브랜드 운영자, 서체 디자이너, 게다가 영화감독까지,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연출한 백종열 감독의 이력은 이렇듯 무수히 많다. 단순히 일만 벌린 게 아니다. 각 분야에서 꽤나 성공적인 위치에 서 있다. 그간의 모든 경력을 제쳐두고 신인으로 나선 영화감독 역할도 훌륭히 해냈다.
 
백 감독의 수많은 이력은 <뷰티 인사이드>의 주인공 우진의 수많은 얼굴을 연상시킨다. 총 123명, 주요 배우만 21명이 우진을 연기했다. 영화는 그런 우진을 사랑하는 한 여인 이수(한효주 분)의 이야기를 담는다. 워낙 독특한 설정 때문에 개봉 전부터 '실험적인 영화'로 불렸다.
 
실험적인 설정 아래 영화라는 낯선 분야를 모험한 백종열 감독을 최근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15초에서 30초짜리 영상으로 소비자의 심리를 꿰뚫어야 했던 그가 이번에는 2시간의 긴 호흡의 이야기로 관객과 마주한다. 그것도 충무로 최대 대목인 한여름에, 가을이나 겨울에 더 어울릴 법한 멜로물로 나선다. '멜로=겨울'이라는 공식을 무시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다.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도전자 백 감독은 “영화 또 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백종열 감독은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연출했다. 사진/NEW
 
다음은 백 감독과의 일문일답.
 
-몇몇 영화의 오프닝을 제작한 경력이 있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영화감독으로 나선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어떻게 영화 제작에 나서게 됐나.
 
▲많이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40분짜리 광고를 기반으로 한 영화다. 이 영화의 제작사 용필름의 임승용 대표와 친분이 깊다. 그래서 이걸 영화로 만들어보라며 추천을 했었다. 광고를 보고 받은 충격이 대단했으니까.
 
제작사도 마음에 들었는지 영화화를 위한 기본 작업을 했다. 판권을 사고 저작권도 알아봤다. 그런 부분에서 나와 협의도 했다. 그러던 중에 나에게 직접 만들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더라.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영화를 만드냐'면서 거절했다.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제안을 하더라. 반복되는 제안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출발했다.
 
-원래 영화감독을 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나.
 
▲없었다. 영화 스태프로 간혹 참여하긴 했지만, 대부분 관객의 입장이었다. 그냥 영화를 좋아하는 수준이었다. 늘 이 정도까지가 내 몫이라 생각하며 지내왔다.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내가 영화를 제작하거나 투자하는 입장이라면 나에게 이걸 맡길 수 있을까. 정말 용기가 대단한 사람들이다.
 
-다른 인터뷰에서 디자인은 '절제의 미학'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고 말했더라. 영화도 같은 태도를 갖고 만들었는가.
 
▲디자인은 불필요한 것들을 빼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작업이다. 군더더기 없이, 몇 가지 단어만 갖고 면과 공간을 채워야 한다. 영화는 내가 해석하는 바에 의하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끌고 나가느냐의 싸움이다. 광고는 생략과 요약, 압축, 함축의 형태라면 영화는 이야기를 몰입도 있게 끌고 가야 한다. 아무래도 차이가 있었다.
 
백종열 감독. 사진/NEW
 
-시나리오도 직접 썼나?
 
▲아니다. 작가 두 분이 계셨다. 나는 각색에 참여하는 정도였다. 배우들이 알아서 말 어미를 바꾸기도 했다. 특히 배우 이동휘가 대사를 많이 준비해왔다. 큰 도움이 됐다.
 
-설정은 굉장히 독특하지만 이야기는 평범하다.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지극히 현실적인, 조금은 진부하다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든 이유가 있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미안한 느낌을 받길 원했다.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 혹은 만났던 사람을 떠올리며 '나도 저런 일이 있었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드는 미안함이다. 설정은 독특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다. 그 공감대에서 오는 감동을 주고 싶었다.
 
-우진을 연기한 총 배우가 123명이고 주요배우만 21명이다. 캐스팅 과정도 어려웠을 것 같다.
 
▲회의를 거듭하긴 했다. 물론 고사를 한 배우들도 있었다. 최대한 차선에서 찾아냈다. 다행히도 참여한 모든 배우들이 훌륭했다.
 
-영화의 장점 중 하나가 21명 배우들의 배치였다고 생각한다. 각 배우들의 이미지를 정확히 분석한 느낌이다. 완벽한 배치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캐스팅 전에 표를 만들고 우진 신을 나열하고 하나씩 배치했다. 어떤 배우들의 얼굴이 우진의 다양한 상황 속 얼굴과 적합한지 고민이 컸다. 연기력에서는 이미 검증이 끝난 배우들이었다. 배우들이 가진 이미지에 맞게 배치했다. 다행히도 캐스팅에서 배치까지 큰 변수가 없었다. 두 번 위치 변동이 있었다. 천우희와 고아성을 바꿨고, 박서준과 이진욱을 바꿨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영화의 또 하나의 장점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는 우진이 오롯이 한 사람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어떤 노력이 있었나.
 
▲이 여러 명의 우진들을 한 명으로 보이게끔 한다는 건 우리에게 어려운 숙제였다. 원작보다도 더 많은 우진이 등장하니까.
 
우진의 성격부터 시작했다. 이 사람은 10대 후반부터 혼자였을 것이고,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을 했을 것이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사람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게 절제할 것이며, 정체가 들통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돌출행동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감정 컨트롤도 잘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술을 먹어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성격을 배우들에게 이해시키고 유도했다. 고아성과 유연석 말고는 감정이 묻어나오지 않는다. 늘 차분하게 대응한다. 배우들의 이해력이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내레이션은 유연석이 맡는다. 어떻게 결정된 건가.
 
▲누가 해도 충분히 잘했을 거다. 개인적으로 내레이션은 마지막 배우가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배우는 유연석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유연석은 아주 훌륭히 잘 생겼다기보다는 인간적인 매력을 갖추고 있다. 편안한 감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결정했다.
 
<뷰티 인사이드>를 연출한 백종열 감독(왼쪽)과 여주인공 한효주(오른쪽). 사진/NEW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은 한효주다. 왜 한효주였나.
 
▲이 영화를 하기 전에 한효주와 광고 촬영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느낌이 이수하고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밝고 적극적이고 예쁘지 않나. 개인적으로 대단한 배우였다고 생각한다. 여태 출연한 작품 중 가장 외로웠을텐데 감정 조율을 정확히 하고 이수의 입장을 정확히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한효주를 캐스팅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수에 몰입해 있었다. 쉬는 날에도 이수를 고민했고, 대사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이수에서 안 빠져 나왔다. 한효주 덕분에 영화가 더 완성도 있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한효주에게 특별히 주문한 것이 있다면?
 
▲나도 영화를 처음하는 데다 다양한 배우들을 계속해서 만나는 것에서 낯선 느낌을 받았다. 한효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분명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이다. 한효주가 받는 스트레스가 이수에게서 드러났으면 했다. 그 스트레스를 없애려고 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했다. 늘 새로운 남자가 나타났을 때 망설이는 듯한 눈빛을 갖고 있었으면 했다. 이수도 그랬을 것 같기 때문에.
 
-한효주가 예쁘게 나온다. CF 감독 출신의 역량이 빛을 발한 것인가.
 
▲시쳇말로 생긴 대로 찍히는 거다. 컨디션에 따라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한효주가 예뻤기 때문에 예쁘게 나온 거다.
 
-몇몇 베테랑 감독들의 말에 의하면, 영화를 찍다보면 한 두 번쯤은 멘탈이 붕괴되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워낙 많은 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가 머리가 백지가 되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그런 경험은 없었나.
 
▲운이 좋았나 보다. 판단과 결정을 하는데 장애를 준 경험이 없었다. 대체적으로 순조로웠다.
 
<뷰티 인사이드> 촬영 현장에서 백종열 감독(오른쪽)이 배우 박서준(왼쪽)에게 연기 주문을 하고 있다. 사진/NEW
 
-영화가 개봉하고 나면 호평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러브콜이 있을 것 같다. 영화 또 할 생각이 있나.
 
▲이번 기회를 통해 영화의 재미를 알았다. 또 할 거다. 기회가 된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 아직 차기작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온 얘기는 없다.
 
-영화가 좋은가 CF가 좋은가.
 
▲이 질문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에 해당하는 질문이다. 양쪽 다 매력이 있다. 한쪽은 굉장히 스피디하고 완벽하게 조립되는 맛이 있으면, 영화는 꾸준하게 쭉 장시간 동안 일궈나가는 재미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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