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을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동북아 주요국의 외교장관들이 총출동한 지난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은 냉전시대를 방불케 하는 남북관계를 다시 한 번 보여주며 종료됐다. 지난 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ARF에서는 또 ‘중국 대 미국·일본’의 신경전, 북한과 중국의 묘한 ‘밀고 당기기’ 상황도 재현됐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북한의 리수용 외무상은 ARF 기간 중 악수만 한번 나눴을 뿐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는 양자회담을 갖기도 한 리 외무상은 윤 장관에게는 별도의 회담 제안조차 하지 않았다. 윤 장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윤 장관은 5일 밤 환영만찬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리 외무상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눴다. 두 사람은 지난해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ARF 외교장관회의에서도 조우만 했을 뿐 회동을 하지는 않았다.
노무현 정부 당시 ARF는 차관보급들이 모이는 6자회담에서 풀지 못하는 문제를 장관들이 만나 논의한다거나 남·북의 외교수장들이 일본 문제에 공동 대응하는 무대로도 활용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의 ARF는 남·북간 접촉이 있더라도 입장차만 확인하고 돌아서거나 냉전시대에 있었던 남·북의 대결 외교가 재연되는 무대로 바뀌었다.
한편 중국과 미국·일본은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 중국이 인공섬을 건설하는 문제,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 문제 등을 두고 또 다시 부딪혔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6일 ARF에서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항해와 비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리는 또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당사국들에 대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도발적 활동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는 중국의 인공섬 건설 등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도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을 거론한 데 이어 중국의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에 대해서도 ‘일방적인 개발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올해가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이란 사실을 거론하며 “이런 중요하고 특수한 시기에 각국은 역사적 교훈으로부터 중요한 경험을 흡수하고 신형 국제관계 체계를 적극적으로 구축해야한다”며 반격을 가했다. 왕 부장은 또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 국가들이 주도해 해결한다’는 이른바 ‘아시아 안보관’을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이 미국을 역외국가로 규정함으로써 동아시아는 자신들의 구역임을 주장하는 논리이다.
이번 ARF에서 북·중 양자회담 개최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것도 관심을 끌었다. 이를 두고 양국이 현재 처한 묘한 상황이 ARF에서도 펼쳐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온 북·중 양국은 최근 최고지도자들이 직접 관계를 개선하자는 신호를 보낸 바 있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은 장거리로켓 발사 움직임을 보이며 중국을 곤란하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정치적·경제적 지원이 있다면 발사를 안 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이 중국에 보내는 것으로 본다. ARF 사상 처음으로 북·중 회담이 불발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역시 북한의 ‘밀당 외교’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지난 5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담 환영 만찬에 앞서 각국 외교장관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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