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성원기자] '봉이 김선달'도 울고갈 만한 획기적인 시장이 있다. '굴뚝'이 만들어낸 탄소배출권 시장이다.
봉이가 팔아먹은 대동강과 탄소배출권은 닮은 구석이 있다. 수요와 공급이 끊임 없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한반도에 사람이 사는 한 물에 대한 수요는 영원하고,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이상 대동강은 마르지 않는다.
탄소배출권도 마찬가지다. 온실가스 감축협약이 파기되지 않는 한 탄소배출권에 대한 수급은 영속적이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에는 시장이 생겨난다. 그리고 누군가는 돈을 번다. 최근 탄소배출권 시장 개설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정부 역시 이같은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 정부 "탄소배출권 시장으로 녹색금융 육성"
"아시아 최대 규모의 탄소금융시장을 만들겠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3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녹색금융컨퍼런스'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녹색성장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녹색성장을 뒷받침하는 녹색금융. 그중에서도 정부는 탄소배출권(CERs, Certified Emission Reductions)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탄소배출권 시장은 주로 '탄소배출권 거래제(ETS, Emission Trading Scheme)'에 따라 운영된다.
이 제도는 국가나 기업들이 국제적 합의에 따라 할당받은 온실가스 배출량 허용치를 지키지 못하거나 목표를 초과달성할 경우 미달분이나 초과분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할당량을 넘어섰다면, 온실가스를 할당량보다 적게 배출하는 데 성공한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배출권을 사들여야 한다. 물론 사는 쪽은 돈을 내고 파는 쪽은 돈을 받는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온실가스에 대한 고민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것이다.
◇ 유럽을 뛰어넘어라.."성장 가능성 무궁무진"
현재 탄소배출권 시장이 가장 활성화된 지역은 유럽이다. 영국 런던의 유럽기후거래소(ECX, european climate exchange)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탄소배출권과 함께 여기에서 파생된 각종 탄소파생상품이 거래되고 있다. 전 세계 탄소배출권 거래의 80%가량이 유럽에서 이뤄진다.
반면 아시아에는 아직 국제적인 탄소배출권 시장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배출권 시장이 만들어진 곳은 유럽연합(EU) 27개국과 노르웨이, 스위스 등 모두 29개 나라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시장 개설일정을 확정한 상태다.
아시아에서는 그나마 일본과 홍콩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여기에 한국이 뛰어든 것이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탄소배출권 시장을 운영하면 수수료 수익을 챙기게 된다. 국내 산업이 자연스럽게 '저탄소성장'에 한발짝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지난 2005년 108억달러였던 탄소배출권 시장 규모는 2006년 300억달러, 2007년 640억달러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1176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급격히 커지고 있다. 2010년에는 시장규모가 15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탄소배출권 시장은 선점효과가 크다"며 "앞으로 시장이 무궁무진하게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설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병률 한국거래소 신사업팀장 역시 "탄소배출권 시장의 최대 장점은 전 세계 거래소에서 오고가는 상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며 "표준화된 상품이 동시다발적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시장간 연계가 수월하고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시장개설까지 첩첩산중..배출권 보는 시각도 제각각
현재 한국은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에서 제외돼있다. 탄소배출량은 세계 9위 수준이지만, 교토의정서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압박이 덜하다.
그러나 올 연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제15차 총회에서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일단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만 놓고보면 탄소배출권 시장이 조만간 개설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갈 길이 멀다. 아직 관련 법제조차 정비되지 않았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통과돼야 한다. 이 법안이 통과돼도 탄소배출권 시장에 대한 별도의 법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밥그릇' 싸움까지 벌어지고 있다. 탄소배출권 시장을 어느 기관에 설치할 것인지를 놓고 한국거래소와 전력거래소가 팽팽히 맞서는 상황. 한국거래소측은 증권이나 파생상품을 다뤄왔던 기관이 탄소배출권 시장을 운영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전력거래소는 실질적인 배출량 측정이 가능한 기관이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탄소배출권'이라는 상품의 성격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금융위원회 등 금융 유관기관들은 금융상품으로 접근하지만 지식경제부는 일반상품쪽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관련 법제나 구체적인 운영방안을 마련하는 데 좀더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탄소배출권을 일반상품으로 분류하면 세금과 관련된 문제가 복잡해진다"며 "일단 준비작업은 공동으로 진행하되, 거래소가 출범하면 금융상품으로 정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지경부 관계자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탄소배출권을 금융상품으로 보는 곳은 없다"고 강조했다.
◇ 선점하면 기대효과 크다.."급할수록 천천히 가야"
하지만 이같은 문제가 정리된 뒤 탄소배출권 시장이 공식적으로 출범하면 향후 상당한 파급효과가 기대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특히 탄소배출권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 시장의 매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포스트 교토체제가 파기되거나, 모든 국가가 저탄소성장을 구현할 수 있을 정도의 획기적인 신기술이 개발되지 않는 한 거래는 끊임 없이 이뤄진다. 할당량을 초과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국가나 기업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나 기업이 기술개발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기술 이전을 위한 절차가 남아있는 만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해가 지지 않는 시장'이라는 얘기다.
아시아 국가의 거래 수요를 흡수한다는 정부의 청사진도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비교적 표준화된 상품이 거래되겠지만, 각 지역별로 시장 참여자의 특성과 실제로 거래되는 배출권의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며 "이같은 특성을 감안할 때 일부 거래소가 전 세계 탄소배출권 거래를 독과점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이 탄소배출권 시장을 선점한다면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의 수요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장을 개설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 이후도 생각해야 한다. 탄소배출권 시장을 출범시킨다 할지라도 다른 나라 시장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보다 적은 수수료를 내면서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때문에 탄소배출권 시장이 본 궤도에 오른 뒤에는 각국이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수요자들이 유럽이 아닌 한국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적정 수준의 수수료를 책정하는 등 시장의 매력도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부가 체계적인 준비 없이 너무 성급하게 일을 추진한다는 비판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핵심 관계자는 "저탄소성장을 구현하고 배출권 시장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운다는 정부의 계획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면서도 "기본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정부가 탄소배출권 시장에만 주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국내에서 탄소배출권 시장 도입은 아직 걸음마 수준인 만큼, 정책홍보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국내 기업들의 '탄소 인벤토리(온실가스 배출량 목록)'부터 마련하는 등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한다"고 지적했다.
뉴스토마토 박성원 기자 want@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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