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스토리)가상 구단주 되는 돈 되는 취미생활 '판타지 스포츠'
실제 활약하는 선수들로 팀 구성해 성적따라 승패 가리는 게임…도박과 달라
수수료 뗀 나머지 상금으로…하루 단위 게임으로 참여자 늘어
입력 : 2015-08-04 11:31:40 수정 : 2015-08-04 11:31:40
라스베가스 코스모폴리탄 호텔 대연회장에 100여명이 삼삼오오 모였다. 프로미식축구(NFL)를 보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영화 스크린만한 TV 앞에 앉아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축구팀 유니폼까지 갖춰 입은 사람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선수가 실수라도 저지르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반대로 자신의 팀 선수가 골을 넣거나 태클에 성공하기라도 하면 덩실덩실 춤을 췄다.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은 경기 내용에 따라 좌절하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이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경기장으로 달려가지 않고 도박의 도시인 라스베가스에 왔는지 의아할 정도다. 그런데 이들이 판타지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이런 이상한 풍경이 바로 이해된다. 이 사람들은 스포츠를 매개로 한 도박을 제대로 즐기려고 대형 TV 화면과 최첨단 음향을 제공하는 호텔까지 일부러 찾아왔다.
 
◇부담 없는 재미에 쏠쏠한 수입까지
 
판타지 스포츠(Fantasy Sports)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라스베가스 뿐 아니라 미국 각 주와 영국, 캐나다에서도 참여하는 인원이 늘고 있다. 그냥 봐도 재미있는 스포츠 경기에 도박적인 요소와 전략성이 가미되자 참여층이 확대된 것이다. 판타지 스포츠는 다른 도박과 달리 참가자가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단순 도박은 승리 팀이 어디 일지 예측하는 데 그치지만, 판타지 스포츠는 선수 개개인의 컨디션과 체력, 기술 등을 모두 신경 써야 한다. 각기 다른 팀에 소속된 선수들 중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선수를 선발해 가상의 자기 팀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선수들이 낸 성적은 다양한 기준을 통해 산정된다. 축구의 경우 득점 수와 유효 태클 수, 질주 거리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종합해서 반영된다. 이렇게 합한 점수가 다른 참가자의 것을 능가하면 두둑한 상금을 챙길 수 있다. 상금은 게임 참가비가 얼마인지에 따라서 결정된다. ‘입장료’로도 불리는 참가비가 50달러면 중개 사이트 수수료 10%를 제외한 나머지 45달러가 모두 상금으로 책정된다. 참가비와 참여자 수가 많을수록 판돈이 커지는 셈이다. 상금은 한 명이 독식하지 않는다. 여러 명에게 차등·지급되는 구조라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소소하게 나마 돈을 딴다. 지난 1월11일 미국 프로농구(NBA) 경기가 열렸을 당시 참가자 1149명 중 206명이 6.25~500달러의 상금을 챙겼다.
 
배팅 액수가 천차만별인 것 또한 판타지 스포츠의 매력을 높여주고 있다. 판타지 스포츠 웹사이트에는 경기 내용에 따라 참가비가 1~25달러까지 다양하게 나뉘어 있다. 자신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후 배팅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참가비가 5000달러에 이르는 고위험˙고수익 경기도 있다. 이런 경기에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박 전문가들이 주로 참여하지만, 일반인 참가자도 적지 않다. 참가비가 0달러인 경기도 있어 돈 한 푼 없이도 판타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0달러 경기가 많지는 않다. 내 돈 1달러라도 걸어야 경기에 애착이 생기고 재미도 배가되기 때문이다. 헬스클럽이나 수영장에 들어갈 때 돈을 내듯, 참가비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건 돈을 잃어도 상관없고 혹시라도 따게 된다 해도 이를 덤으로 여긴다. 참가자들은 선수를 고르고 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지불한 돈 이상의 재미와 만족감을 느끼기에 돈을 잃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장점들 덕분에 판타지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판타지 스포츠 트레이드협회(FSTA)는 올해 참가자 수가 568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당시의 1260만명에서 큰 폭으로 늘어난 수치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만 4100만명이 판타지 스포츠를 취미로 삼고 있다.
 
◇피츠버그 스틸러스 소속 가드인 데이비드 디카스트로(왼쪽)가 세인트 빈센트 컬리지에서 동료들과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진화하는 판타지 스포츠
 
판타지 스포츠가 처음부터 인기를 끈 것은 아니었다. 지난 1950년 미국의 윌프레드 윈켄바츠가 판타지 스포츠 개념을 골프에 접목시켰을 때만해도 주목하는 이는 드물었다.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탓에 홍보가 되지 않았고 게임 방식도 너무 단순해서 박진감도 떨어졌다. 당시 골프 판타지 스포츠는 누가 가장 낮은 타수로 경기를 끝낼지 알아맞히는 식으로 진행됐는데, 승패를 예측하는 것은 너무 쉬웠다. 선수 개인의 수상 경력과 평균 타수만 확인해도 무난하게 결과를 가늠할 수 있었다. 야구와 미식축구로 종목이 늘어나긴 했지만,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 수는 미비하게 증가했다.
 
판타지 스포츠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80년대에 와서다. ‘프랑스 식당 이름을 딴 ‘로티쇠르 야구 리그’에 선수 선발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판타지 스포츠는 비로소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팀이 아닌 선수 개개인을 선발하면서 변수가 많아지고 고려해야 할 요소 또한 엄청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선수의 몸 상태와 경기 시간, 날씨, 팀워크 등을 일일이 분석하며 색다른 재미를 발견했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참가자들은 자기 팀의 수석 코치로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뒤쫓았다. 자연히 그냥 경기를 시청했을 때보다 경기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됐다. 결과가 좋으면 상금까지 주어지니 일석이조였다. 1990년대 들어서는 인터넷이 판타지 스포츠에 날개를 달아 줬다. 이전까지 신문이나 매거진에 실리던 판타지 스포츠 정보가 인터넷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놀이판이 커졌다. 국가나 지방 단위로 이뤄지던 게임이 전 세계로 확대된 것이다. 2000년대 초 미국의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주춤하긴 했지만, 판타지 스포츠는 꾸준한 인기를 구가했다.
 
사업성이 생긴 것은 2006년 들어서다.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정보 처리 속도에 가속도가 붙자 게임을 하루 단위로 운영할 수 있는 기술력이 생겼다. 이전에는 시즌 단위로 게임이 진행돼 결과를 알려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기에 지루했다. 내가 지목한 선수들이 시즌 초반부터 죽을 쑤면 경기에 대한 흥미도 떨어졌다. 이런 경험을 한 참가자는 판타지 스포츠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도 했다. 그러던 중 초고속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데일리 판타지 스포츠(daily Fantasy Sports’가 생겨났고 하루 단위 게임이 가능해졌다. 아침 출근 전에 배팅 해놓으면 퇴근하고 결과를 확인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변화였다. 투자로 따지면, 장기 투자만 존재하던 금융시장에 단기 투자 기법이 도입된 것과 같다.
 
의도치 않은 운도 따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기인 2006년 당시 불법 인터넷 도박처벌법(UIGEA)이 제정됐고 이에 따라 온라인 도박업체들이 일제히 영업을 중단됐다. 그런데 판타지 스포츠는 거기서 제외됐다. 미 연방정부가 판타지 스포츠를 확률 게임이 아닌 기술이 필요한 놀이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복권과 경마도 판타지 게임과 함께 법 규제를 피해갔다.
 
◇늘어가는 인기에 하루 상금 11억원으로 점프
 
판타지 스포츠는 연방 정부의 법망에서 자유로워진 것을 계기로 더 확대됐다. 초고속 인터넷에 기반한 판타지 스포츠 업체들도 이 시기에 생겨났다.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했지만, 그중에서도 판듀엘(Panduel)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지난 2009년 판듀엘은 스코틀랜드에 본사를 세우고 하루 단위 게임을 중심으로 한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판듀엘은 게임 수를 늘린다는 전략을 세우고, 오픈 리그를 지속해서 늘렸다. 스포츠 외에도 정치, 판매, 유명인사 가십, 영화, 리얼TV와 관련한 게임도 마련했다. 그 결과 현재 판듀엘이 운영하는 오픈 리그 수는 1만2000개로 급증했다. 하루 상금이 100만달러(11억6000만원)에 이를 정도로 판도 커졌다. 게임 참가자가 많아지면 상금 액수가 올라가는 동시에 중개하는 업체의 수익도 커지기 마련이다. 판듀엘은 올해 수수료로만 1억달러(1167억원)를 벌어들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판듀엘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덩치를 더 키울 생각이다. 지난달 판듀엘은 글래스고에 새 사무실을 개설하고 200명의 해외 시스템 개발인력을 증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판듀엘은 현재 미국과 영국에 23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직원을 늘리는 이유는 드래프트킹스(DraftKings) 같은 경쟁사를 견제하기 위함이다. 지금은 업계 1위지만, 이런 구도가 언제 뒤집힐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드래프트킹스는 최근 폭스 스포츠와 메디슨스퀘어가든 등으로부터 3억달러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판듀엘이 이달 초 NBC스포츠와 타임워너 등 투자자들로부터 얻은 2억7500만달러 보다 많은 규모다.
 
다양한 업체 간 경쟁 구도 아래서도 판타지 스포츠의 영향력은 날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판타지 스포츠가 스포츠 산업에 연간 30~40억달러의 경제 효과를 유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여전히 규제의 위협이 남아있다.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아이오와주 등 5개 주에서 판타지 스포츠를 도박으로 분류하고 상금 지급을 중단했다. 중독성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다. 팀 보다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풍조를 낳을 것이란 비난의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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