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아직도 부동산 계약이 제일 무서워요"
한국에만 있는 보증금 제도, 외국인 거주 발목 잡아
"대도시 집값 비싼 건 마찬가지"…전월세 상한제가 버팀목
2015-07-08 16:28:27 2015-07-08 16:28:27
국내 거주 외국인이 174만명을 돌파하며 전체 주민등록 인구 가운데 약 3.4%를 차지하고 있다. 외형도, 살던 나라도, 한국에서 산 기간은 다르지만 한국말을 하고 한국인처럼 생각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열려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특히 서양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 중 하나는 그들이 많은 동경과 혜택을 받고 있으며 때문에 살기도 편할 것이라는 것.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외국인 예능 프로그램의 역할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비정상회담' 출연 외국인들은 수려한 외모와 언변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프로그램 하차 이후에도 팬미팅 자리를 가질 정도로 소위 아이돌급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 온 지 각각 3년, 4년차에 접어든 로빈 데이아나(프랑스)와 블레어 윌리엄스(호주)는 아직도 살 집을 계약하러 중개업소에 가는 것이 두렵다. 한국 생활 12년차 일리야 벨랴코프(러시아)는 이제 그런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도가 텄지만 여전히 한국 사람들과의 생각 차이가 아쉽다. 10년차 줄리안 퀸타르트(벨기에) 역시 처음 한국에 와서 좁은 고시원에 살 때를 떠올리면 아찔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다이내믹 코리아, 항상 새로운 도전과 계획으로 가득 찬 한국이 너무 좋아 다른 나라에 가더라도 고국이 아닌 한국이 그립다고 할 정도로 이제는 한국을 집으로 여기고 있다.
 
방송이면 방송, 회사면 회사 다방면에서 한국 사람보다도 바쁘게 살고 있는 이들을 만나 한국에서의 주거 생활 이모저모를 들어봤다.
 
좌측부터 일리야 벨랴코프(러시아), 로빈 데이아나(프랑스), 블레어 윌리엄스(호주), 줄리안 퀸타르트(벨기에)
 
-요즘 우리 청년들의 주거난이 심각하다. 낯선 땅에 온 여러분들은 더했을 것으로 보는데.
▲블레어=한국은 보증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높다. 호주의 경우 보증금이라는 개념이 없고 월세만 내고 살면 된다. 처음에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와서 기숙사에 살았지만 그 다음엔 하숙집과 오피스텔을 거쳐 이제야 집이라고 부를 만한 주택에 살게 됐다. 지금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 80만원을 내고 사는데 월세만 보면 높아 보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비슷한 집이면 월세를 적게 내는 대신 보증금을 수 천만원씩 내고 살더라. 그런 큰돈은 외국인으로서 당장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월세를 더 많이 내는 것이다.
▲줄리안=우리를 비롯한 많은 외국인들이 해방촌에 사는 이유가 투룸이어도 보증금이 200만원 정도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한국에 온 외국인들은 해방촌에 이렇게 저렴한 방이 많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나도 그랬다. 그래서 처음엔 보증금 낼 돈이 없어서 비좁은 고시원에서 살았다.
▲로빈=프랑스 사람들끼리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SNS 페이지가 있는데 다들 보증금 때문에 한국에 못 온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대한 기숙사를 이용하기 위해 공부를 오래하지만 그 마저도 졸업하게 되면 그냥 떠나야 한다. 사실 기숙사에서도 보증금을 냈어야 했기 때문에 부담이 없는 게 아니었다.
▲일리야=러시아에서도 보증금이라는 시스템이 없고 그냥 월세만 있다. 다만 보증금이 목돈을 맡기고 거주할 수 있는 능력을 금전으로 표현한 방식이라면 러시아는 물론, 다른 나라도 돈으로 보증금을 내지 않는 것이다 뿐이지 개념 자체는 통할 것으로 본다. 비단 외국인 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큰 액수의 보증금이 없다면 좋은 동네, 좋은 아파트에 살 수 없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
 
블레어 윌리엄스(호주). 사진/비앤비엔터테인먼트
 
-여러분의 나라에서도 주거비 부담이 그렇게 높은가.
▲일리야=러시아에 비하면 한국 월세는 비싼 편이 아니다. 모스크바 중심부 아파트 월세는 한국 돈으로 500만원부터 시작한다.
▲블레어=우리도 시드니나 멜버른, 브리즈번 같은 도시의 집값이 엄청 비싸서 한창 문제가 되고 있다. 시드니에서 집을 사려면 평균 10억원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같은 청년들은 엄청 큰돈을 대출받거나 계속 렌트해서 살지 않는 이상 보통의 집도 들어가기 힘든 상황이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기 전에는 엄두도 못 낸다.
▲줄리안=갈수록 집값이 높아지다 보니 집을 나눠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아예 집 안, 방 하나를 나눠 살기도 한다. 특히 프랑스 집값이 비싸서 벨기에로 와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열차를 타면 벨기에에서 한 시간이면 파리로 갈 수 있고, 똑같은 월세면 파리보다 두 세배는 더 큰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
▲로빈=파리의 문제는 비싼 것도 있지만 너무 오래된 집이 많다. 그리고 예전에는 집안 맨 위층에 가정부들이 살았는데 요즘은 젊은이들이 그곳에 들어가서 살 수밖에 없다. 한국으로 치면 옥탑방 같은 거다. 그런데 파리를 벗어나 인구 10만명 정도의 도시만 가더라도 3억원 정도면 으리으리한 성 같은 집을 살 수 있어 격차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로빈 데이아나(프랑스). 사진/비앤비엔터테인먼트
 
-대신 주거 복지가 잘 돼있다고 들었다.
▲로빈=재계약 할 때 집주인 마음대로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릴 수 없고 상한 비율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세입자가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함부로 나가게 할 수도 없다.
▲줄리안=확실히 세입자 위주로 법이 정비돼 있다. 계약기간에 따라서 보호해주는 제도도 다른데 단기임대일수록 보호법이 더 강하다. 집주인이 계약을 먼저 파기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직접 거주하거나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 아닌 이상 세입자를 쫓아낼 수 없고 굉장히 절차도 복잡하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나라에서는 꼭 집을 사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한국은 정책적으로 세입자 보호 대신 대출 규제 완화 등의 카드로 집을 사라고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데.
▲줄리안=벨기에에서는 주택 구매자에 대해서도 제도가 잘 돼 있다. 집값의 120%까지 굉장히 낮은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어 집을 사게끔 만든다. 물론 그런 대출을 상환할 수 있는지 여부도 엄격하게 따진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유럽에서는 세금을 많이 낸다고 알고 있는데 벨기에 같은 경우 월급에서 나가는 세금은 크지만 종합부동산세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일리야=러시아는 한국 사람들과 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완전 다르다. 한국 와서 놀란 점은 집을 살 때 집 자체가 우선이 아닌 직주근접성이나 학군 같은 요소 때문에 집을 계약하고 또 쉽게 옮긴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그런 사람들보고 “너 귀뚜라미처럼 뛸래?”라는 말을 할 정도로 집은 평생 살 곳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집 자체만 우선으로 놓는 편이다.
 
줄리안 퀸타르트(벨기에). 사진/비앤비엔터테인먼트
 
-그렇게 부동산 제도가 잘 돼 있는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 온 만큼 주거 관련 문제도 많이 겪었을 것 같은데.
▲로빈=한국에서 겪은 제일 큰 문제는 부동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계약할 때 보증금은 두 배, 월세도 80만원에서 90만원 이상으로 올린 집주인도 있었고, 부동산 때문에 사기 당한 적도 있다. 그래서 중개업소 갈 때마다 예전 기억 때문에 무섭고 싫을 때가 있다. 한국 친구나 한국을 잘 아는 사람이랑 계속 같이 다녀야 한다.
▲블레어=나도 부동산 계약이 아직 무섭다. 한국인 친구가 꼭 필요하다. 나와 동행한 친구는 중개업소 사장님이랑 싸운 적도 있다. 계약서를 쓸 때 계속 말을 바꾸더라. 나 혼자 갔으면 아마 손해를 엄청 봤을 것 같다.
▲줄리안=특히 보증금 시스템에 대해서는 외국인들이 정말 많이 모른다. 내 친구는 보증금을 날린 적도 있다. 계약할 때 집주인의 빚이 얼마나 있는지 몰랐던 거다. 그렇게 융자 많은 집에 세입자로 들어갈 때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외국인들의 주거 문제를 해소할 장치인 외국인 임대주택이나 외국인들의 부동산 거래를 전담하는 글로벌 중개업소 등의 혜택을 받은 적이 있는지.
▲일리야=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한국말로 받는 정보와 영어로 받는 정보가 굉장히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집이고 똑같은 방인데 한국말로 매물을 소개하는 보통 중개업소에서는 100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영어로 할 때는 500만원 이라고 한다. 한국말을 안 쓴다는 핑계로 바가지를 씌우는 격이다. 외국인 전용 중개업소를 선정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관리 측면에서 정부가 신경을 써야한다. 지금도 외국인들을 너무 많이 속인다.
▲줄리안=외국인 임대주택은 돈이 많은 외국인들을 위한 제도인 것 같다. 자신이 소속된 곳에서 월세를 지원받거나 한꺼번에 많은 금액의 월세를 지불할 수 있는 외국계 기업 종사자, 미군들만 혜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 거주 외국인들을 위해 개선될 점이 있다면.
▲줄리안=경리단길을 사이에 두고 해방촌은 진짜 집값이 싼데, 경리단길 뒤쪽은 너무 비싸다. 하지만 많은 외국인들이 해방촌 집값이 저렴하다는 것도 많이들 모르고 있더라. 이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현재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부동산 제도 자체가 월세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기업체나 돈이 많은 외국인들 위주로 마련된 것 같다. 우리처럼 한국이 좋아서 왔거나 회사에 다니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정책들이 많이 필요하다.
▲블레어=서울 글로벌센터에 가면 부동산을 비롯해 많은 정보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이곳의 존재를 많이 모른다. 나도 처음엔 몰랐다. 그리고 물론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택시 승차거부를 당할 때가 있다. 우리가 한국 와서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외형만 보고 그렇게 피하지 말아달라.
▲로빈=오늘 이야기에서 나온 글로벌 중개업소, 글로벌센터 모두 처음 듣는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들을 알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면 예전에 한국에 살았던 외국인이 블로그에 남긴 것밖에 없다.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널리 알려줬으면 한다.
▲일리야=이제 한국 온지도 오래됐고 일상생활에서는 불편한 게 거의 없지만 역시 부동산 문제는 좀 다르다.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고, 그 상황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집주인의 융자가 얼마인지, 계약할 때는 누구랑 해야 하는지, 어떤 서류를 봐야 하는지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게 됐다. 다만 그런 것들은 형식적인 것이지, 근본적인 문화의 차이는 해소하기 힘든 것 같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과 외국인으로 사는 것은 아무리 한국말로 말을 하고 한국인처럼 생각해도 다를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요즘 페리스코프(모바일 생중계)를 통해 주제를 정해서 사연도 받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런 간극을 좁히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일리야 벨랴코프(러시아). 사진/ 비앤비엔터테인먼트
 
방서후 기자 zooc604@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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