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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용 행사, 기업은 들러리"
등 떠밀린 기업, 실적 압박까지…립 서비스로 홍보 치중
2015-06-02 16:00:00 2015-06-02 16:00:00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이끌어가야 할 기업들의 속내가 도무지 편치 않다. 청와대에서 의사를 타진할 때부터 참여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였다. 자의반 타의반 서둘러 참여를 결정했다. 총수 리스크가 있는 경우 기대감을 안고 적극적 반응을 보인 곳도 있다. 다만 이마저도 립 서비스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익명을 요구한 A그룹 관계자는 “정부에서 찍어서 내려온 이상 밉보이기 싫으면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소식 보도자료 하나도 우리가 내지 못했다. 미래부에서 주도하고, 우리는 그저 풀어쓰기 쉽게 기자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수준”이라며 “VIP(대통령)를 위한 행사로, 우리는 들러리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녹색성장 봤지 않느냐”며 오히려 반문한 뒤 “기업들이 바보인가. 남은 임기만 대충 버티면 흐지부지 끝날 것이란 걸 경험상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투자와 육성 등 중장기 계획이 지켜질 리 없다.
 
총수 리스크를 안고 있는 B그룹 관계자는 “솔직히 우리가 끼일 덩치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회장님 문제가 있다 보니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기왕 하는 것, 정부 지침대로 포장이라도 잘해 (총수) 문제를 잘 풀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위에서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참여를 결정한 17곳의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어느 곳이 장사를 잘 했느니, 어느 곳이 불만이 제일 높다느니 하는 등의 말들도 오가고 있다. ‘창조경제’는 어느새 서로의 숨은 의도와 홍보가 판치는 ‘장사판’이 돼 있었다.
 
기업들 속내가 정부 의도와 엇갈리면서 현장에서는 언론 취재를 꺼려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충청권 한 센터에 파견된 담당기업 관계자는 취재팀을 보자 상의에 부착된 그룹사 배지를 숨기고, 사진촬영까지 막아섰다. 이 관계자는 전국 센터장 회의 취재차 찾았다고 항의하자 “잘 안 되고 있는 모습이 외부로 나가면 안 된다는 지침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같은 시간 해당 기업은 행사 보도자료를 언론에 뿌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홍보용, 전시용, 성과용으로 변질되면서 기존에 하던 프로그램과 유사한 성격의 사업이 추진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네이버는 이미 미래부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를 통해 지원에 나선 상태였으며, 삼성과 SK 등도 인력양성 등의 유사 프로그램을 운영 중에 있다. 게다가 각 기업들은 기존 협력사를 센터 입주사로 선정, 유치 실적 늘리기에 바빴으며 센터의 빈 공간은 자사 제품들로 가득 메웠다.
 
이 와중에 센터들은 매일 창조경제추진단에 성과를 보고해야 하는 등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포장으로라도 성과를 부풀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C 지역 센터장은 “박근혜 정부 남은 임기 동안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벤처 육성은 긴 안목으로 접근하는 장기적 사업인데, 정부는 임기 내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돼 있고 이는 기업에게 압박”이라고 말했다.
 
김기성·김동훈·이충희 기자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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