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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한화, 화학업계 1위 물밑 신경전
매출액 산정·계열사 포함 여부 놓고 다른 계산법
2015-05-19 16:11:56 2015-05-19 16:11:56
한화그룹이 지난 4월 삼성 화학 계열사 인수를 마무리 지으면서 국내 화학업계 1위 자리를 두고 LG와 한화의 물밑 신경전이 치열하다. 그동안 업계 부동의 1위는 LG화학이 지켜왔다. 석유화학 제품의 출발점인 나프타분해센터(NCC) 규모에서 제품군의 수, 수익 구조 등에서 경쟁 업체를 압도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존 시장 구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화그룹이 한화토탈과 한화종합화학을 품으며 단숨에 업계 선두 자리를 넘보게 된 것. 신경전의 발단은 한화그룹이 삼성토탈과 삼성종합화학의 인수를 계기로 "국내 1위 석유화학 기업으로 도약했다"고 선언하면서 부터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11월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 등 삼성그룹 계열사 인수를 추진한다"면서 "이를 통해 방위사업과 석유화학사업 부문에서 국내 1위로 도약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화학 계열사 인수를 마무리 한 후에도 '한화그룹, 석유화학 사업 국내 1위로 새 출발'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한화종합화학과 한화토탈의 합류로 국내 1위로 도약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화케미칼과 한화첨단소재, 한화화인케미칼, 여천NCC, 한화토탈, 한화종합화학 등 한화그룹 내 6개 회사의 지난해 총 매출액이 19조3087억원이라고 밝혔다. 1위 약진의 근거로 관련 회사의 매출 총액을 제시한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매출액 산정의 기준이다. 여천NCC와 한화토탈은 한화그룹이 지분의 50%만 보유한 합작사인데, 매출액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됐다. 대림산업과 한화그룹의 합작사인 여천NCC는 매출액의 절반을 한화그룹의 몫으로 편입시킨 반면, 프랑스 토탈과 합작사인 한화토탈은 매출액 전체를 반영하면서 기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진 것.
 
LG화학 측은 "여천NCC는 지분율이 절반인 점을 감안해 지난해 전체 매출액의 50%인 3조5694억원을 반영했지만, 같은 지분율의 한화토탈의 경우 전체 매출액(8조7910억원)을 모두 편입시켰다"면서 "매출액 산정이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화종합화학이 한화토탈의 지분의 절반을 보유했음에도 감사보고서에서 종속회사로 간주하지 않은 것은 결국 지배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분율 만큼만 매출액을 반영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한화그룹 측은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한화그룹 측은 "한화토탈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준에 따라 한화그룹의 계열사"라면서 "계열사의 보유 지분을 근거로 매출의 50%만 적용해야 한다면, 다른 기업의 매출액 역시 같은 기준으로 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한화토탈은 삼성그룹 계열사 시절에도 모든 대외 자료에 매출액 100%를 적용시켜 발표했다"면서 "여천NCC의 경우 외환위기 당시 정부주도 빅딜 과정에서 설립된 특수성 때문에 한화그룹 계열사로 편입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화첨단소재를 석유화학 기업으로 포함시키는 부분에 대해서도 양측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한화 측은 한화첨단소재가 자동차 경량화 부품과 전자 제품 소재 등을 만드는 가공사업이 주력이지만, 한화케미칼로부터 원료를 공급받아 태양광용 시트도 만들기 때문에 화학사업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LG화학은 한화첨단소재가 생산하는 자동차용 내·외장재와 연성동박적층판(FCCL)·인듐주석산화물(ITO) 등의 전자소재, 태양광 소재인 에틸렌 비닐아세테이트(EVA)시트 등은 자사의 정보전자소재 사업부와 계열사인 LG하우시스와 사업영역이 겹치기 때문에 석유화학 사업 분야의 매출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한화토탈의 매출액 절반인 4조3955억원과 한화첨단소재 매출액 9644억원을 제외한 13조9488억원을 한화그룹 화학계열사의 매출액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LG화학의 기초소재사업부문 매출액 17조2645억원 대비 약 3조3000억원 적은 규모다.
 
업계 안팎에서는 매출액 규모뿐만 아니라 사업 포트폴리오 등 질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LG화학이 아직은 한수 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석유화학사업 부문을 보유한 정유사의 한 관계자는 "회사의 덩치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수익성 아니겠냐"면서 "LG화학은 범용에서 프리미엄 제품까지 사업포트폴리오가 탄탄하게 구축돼 있기 때문에 수익성이 낮은 정유사의 입장에서는 석유화학 사업 부문의 벤치마킹 모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업계의 고위 관계자 역시 "매출액보다 NCC설비 규모를 놓고 봤을 때 명실상부한 국내 1위는 LG화학"이라라고 평가했다. 석유화학 사업의 심장에 해당하는 NCC 부문에서 LG화학은 대산과 여수공장을 합쳐 총 220만톤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는 여천NCC과 한화토탈에 각각 191만톤, 100만톤을 보유하게 됐지만, 해당 회사의 지분율이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에 단일 회사의 생산설비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매출액보다 NCC의 생산능력에 따라 회사의 순위를 매기는 석유화학 업계 내의 정서법도 무시 못한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한화그룹이 빅딜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헤프닝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2조원대의 빅딜을 성사시키면서 화려하게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화학·방산 계열사 1위 도약 선언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동시에 김 회장 경영복귀에 대한 긍정적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김 회장의 경영복귀 시점과 맞물려 있다보니 빅딜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업계 1위라는 표현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화 화학계열사의 새 출발을 계기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질적 성장을 모색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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