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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사법부독립성'이 82위인 이유
2015-05-12 06:00:00 2015-06-11 12:09:22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
신영철 대법관이 퇴임하고, 후임 박상옥 대법관이 5월8일에 취임했다. 박 대법관은 "정의의 실현과 법의 지배를 나침반 삼아 법조인의 항해를 시작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2009년 2월에 취임했던 신 대법관도 “시대가 변하더라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원칙을 지키겠다”고 했었다.
 
사상 초유의 여당 단독 의결을 통해 임명 동의를 받은 ‘반쪽 대법관’은 사상 최초로 징계 대상에 올랐던 ‘간섭 대법관’의 뒤를 이으며 ‘정의’와 ‘초심’을 말했고, 며칠 전까지도 자진 사퇴를 촉구했던 안팎의 목소리는 식장에 도열한 사법부 구성원의 무심한 박수소리에 또 그렇게 묻히고 말았다.
 
대법관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니 미국 연방대법관은 판사(Judge)와는 달리 ‘Justice'라는 지극히 영예로운 호칭을 얻는다. 존재 자체로 정의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신영철은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었다. ‘촛불사건’을 특정한 재판부에 몰아주기 식으로 배당했고, 이에 반발하는 형사단독 판사들을 모아 입단속을 시키기도 했다.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법원은 일사분란한 기관이 아니니 (위헌 결정을 볼 것 없이) 현행법에 따라 판결을 하라”고 재촉하며 대법원장을 팔았다. 애꿎은 ‘일사불란(一絲不亂)’은 졸지에 ‘일사분란’이 되어 지면을 장식했다. 그는 “대법원 헌재 포함 여러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라며 주관적 일탈을 객관적 원칙으로 가장하기도 했다.
 
이런 행실은 그가 대법관이 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세상에 드러났다. 진상조사를 거쳐 윤리위원회에 회부됐지만, 그는 버텼다. 대법원장이 ‘엄중 경고’를 하고 500명의 판사들이 재판권 독립을 침해했다는 의견을 내놓았어도, 끈질기게 버텼다. 법관과 사법부의 생명과 같은 ‘독립성’을 정한 대한민국헌법 제103조를 명백히 어기고도, 그는 1층 현관을 피해 지하 주차장으로 출근하면서까지 끝내 자리를 지키려 버틴 것이다. 퇴임하는 자리에서 “사법부의 독립은 국민의 신뢰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던 바로 그 사람이 보인 모습이다.
 
그렇게 버틴 결과 6년의 임기를 온전히 채우고 퇴임하며, 그는 “국민이 법관에게 재판을 맡긴 것은 단순히 법률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법관은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은 물론 고매한 인격을 갖추고 있어서 다른 사람의 일을 재단할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며 법관의 자세를 강조했다.
 
대법관이 되고자 했던 신영철은, 2006년부터 기자에게 “대법관 후보 물망 기사에 내 이름 하나 못 올려주느냐”며 불만을 토로했고, 같은 해 8월 헌법재판관 인선을 앞두고도 “인선 기사 쓸 때 제 이름 넣어주셔야 됩니다. 지난번에 말했던 (중부권 출신 대표주자라는) 그런 측면에서”라고 했다는 일화가 알려졌다.
 
대법관의 직을 떠난 신영철은 최근 한 일간지와의 퇴임기념 인터뷰에서 촛불재판 당시의 소신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 때로 돌아간다면 똑같이 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2009년 5월13일 법원 내부게시판에 스스로 올린 글에서는 “재판 신뢰에 손상을 초래해 후회와 자책을 금할 수 없다”고 했던 바로 그 사람의 말이다.
 
지난 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사법부 독립성’ 평가에서 우리의 서열은 82위(3.5점)에 불과해 60위 중국(4.0점)은 물론 80위 세네갈보다도 낮았다. 분명한 것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던 대법관이 있던 자리를 ‘막내로서 오로지 지시에 따라 수사해서 고문 축소 은폐를 몰랐다고 주장한’ 검사 출신 대법관이 메꾼다는 현실이다. 무슨 잘못을 했더라도, 어떤 부끄러움이 있더라도 줄을 잘 선 다음 무조건 끈질기게 버티면 대법관도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이 “시대가 변하더라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원칙”이 될까 두렵다.
 
신영철은 퇴임사에서 “법원이 소수자와 경제적 약자를 더 배려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박상옥도 취임사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분열과 갈등을 통합하는 길을 찾는 데 결코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참 좋은 말이다. 이제 “정의를 실현한다는 초심”은 또 어떤 ‘유체이탈’ 판결로 드러날지 두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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