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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 과학 더한 '한국제' 다시 나온다
2015-03-22 13:29:11 2015-03-22 13:32:22
◇에이치엔디의 야구공 제작의 초반 3단계(권사·모사·도포)에 쓰이는 자동화 시설. (사진=이준혁 기자)
 
[파주·부산=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야구공을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만든다?
 
21세기 들어 '한국회사 야구공'은 중국 등지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인의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판매가를 예전처럼 저렴하게 형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급격히 발전하던 시기에 일본 회사의 야구공을 한국이 만들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 야구공을 한국에서 제작하는 한국 회사가 생겼다. 자동화 설비로 처리가 가능한 공정은 자동화 설비를 갖춰 해결하고 반드시 사람의 손이 필요한 공정은 개성공단 북한 인력에 맡기며 비싼 인건비를 절감하는 제조 방식을 취했다. 결국 중국에서 만든 한국 야구공과 가격 차이가 없을 정도로 단가를 맞췄고 공의 품질은 높였다.
 
프로야구단 롯데 자이언츠에 야구공과 방망이를 납품하던 회사인 하드스포츠는 지난해 하반기에 야구공을 제조하는 자회사 'H&D(에이치 엔 디)'를 차렸다. 
 
단순하게 야구공 제조 사업을 분사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하드스포츠가 중국의 기업에 제조를 맡긴 야구공을 한국에서 파는 역할을 했다면, 에이치엔디는 한국에서 직접 제조한다. '유통'을 너머서 '제조'에 진출한 것이다.
 
한동범 H&D 대표는 "그간 중국 기업에 맡겼지만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야구공을 만들지 못한 것은 물론 불량품도 있어 고민이 많았다"면서 "한국을 대표할 '최고'의 공을 만들고 싶었고 결국 제조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순탄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후발 주자라는 점은 극복이 된다고 해도 한국에서 공을 제조하는 데에는 중국에 비해 비용이 추가로 필요했다.
 
끝내 H&D는 비용 절감의 방법을 찾았다. 개성공단 일부 제조와 자동화 설비 구축이다. H&D는 하드스포츠 외에도 회사 본거지인 부산 지역 중견 기업 오너들이 일부 투자한 기업으로, 투자자 중에 개성공단 투자 기업의 오너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 도움을 받았다. 자동화 설비는 초기 투자는 크지만 이후 인건비 절감이 기대됐다.
 
야구공 제조는 코어를 초기 야구공 형태가 되도록 하는 3단계(권사·모사·도포), 표면 가죽을 씌우는 봉합, 공이 고유 역할을 잘 하는지 다시 보는 검수(정밀중량측정·적외선원주측정·반발력테스트)로 나뉜다. H&D는 전반의 세 단계는 기계로, 봉합은 개성에 맡겨서, 비용을 줄였다.
 
◇H&D의 김대훈 매니저가 반발력 테스트기에 자사의 야구공을 넣고 있다. 반발력 테스트기는 제조한 야구공의 반발력을 원하는 속도별로 나눠 측정이 가능하며, 측정된 결과는 곧바로 기계와 연결된 컴퓨터로 전송돼 손쉬운 확인이 가능하다. (사진=이준혁 기자)
 
H&D는 줄어든 인건비를 공을 대한민국 최고 수준으로 높이는 데에 쓰려 했다.
 
우선 설비를 최첨단으로 들였다. 본래 한국에서 설비를 제작하려 여러 기업을 찾았지만 H&D가 희망하는 수준의 높은 정밀도에 한국 기업들이 모두 포기하자 일본 기업을 다녀 끝내 원하는 정밀도의 설비를 제작했다. 고도의 최첨단 설비를 들이는 가격에만 1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또한 야구공 표면 가죽을 일본 회사에게 들여왔다. 일본 유명 야구공 제조사인 M사가 비용의 절감을 위해서 그동안 가죽을 납품하던 히메지 일대 가죽 제조 장인들의 납품 물량을 줄이자 H&D는 그들과 계약을 맺고 야구공에 쓰일 표면 가죽을 받기로 했다. 선수 손에서 직접 느껴질 공의 질감이 올라갔다.
 
더불어 국내 야구공 제조의 대가인 윤재성 씨를 이사로 영입했다. 윤 이사는 일본에서 야구공 제조 기술을 배워와서 한국에 쓰이던 야구공 다수를 만들던 인물로, 인건비 상승으로 끝내 회사를 폐업했다. 40년 가량 야구공을 만들던 장인인 윤 이사가 H&D에 합류하며 공의 제조·검수 수준이 높아졌다.
 
한 대표는 삼성 라이온즈와 KT 위즈의 전지훈련 장소인 괌과 가고시마로 가서 야구공 시제품의 평가를 부탁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작년에 봤던 롯데의 공이 아니다"라고 호평했고, 올해 공을 타사로 바꾼 KT는 조범현 감독이 직접 담당 프런트를 불러 "올해 공을 왜 바꿨느냐"고 물었다는 후문이다. 
 
H&D는 공장이 개장한 지난해 12월 이후 석달간 공 제조가 서서히 안정화되자 개성공단의 공정을 한국서 할 방법을 찾고 있다. 개성공단이란 '리스크'를 줄일 수도 있고, 일자리 창출을 통해 국내 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용도 크게 늘지 않을 방법을 찾았다.
 
◇윤재성 H&D 이사가 기계로 도포를 마친 야구공 본체에 표면 가죽을 씌우는 봉합 작업의 시연을 보이고 있다. (봉합은 기계가 하지 못하며 사람이 해야만 한다) H&D에서 야구공 제조 기술과 관련된 모든 일을 맡고 있는 윤 이사는 최근에는 후임자 양성과 봉합 작업을 한국에서 담당할 주부 부업자 교육도 진행한다. H&D는 늘어나는 물량을 북한 개성공단이 아닌 한국의 주부에게 맡겨 북한서의 제조에 따른 위험성도 줄이고 국내 일자리 창출에도 나설 예정이다. (사진=이준혁 기자)
  
한 대표의 제안에 따라 H&D에 개인 주주로 투자한 정수범 화인인터내셔날 사장은 "한 대표가 세계 최고의 야구공을 만들겠다는 이야기에 감명해 평소 한 대표의 열정을 알던 사람으로 법인 설립에 쾌척했다"면서 "H&D가 세계 수준의 공을 만드는 회사가 되면 그동안 개인 자격으로 투자한 돈을 날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앞으로 연구와 개발에 추가 비용이 필요할 지라도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어디에다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한국의 야구공'을 만들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한 대표는 "한국이 스포츠 용품 분야에서 일본이나 미국보다 뒤질 이유가 없다. 지금이라도 세계에 당당히 내세울 '명품 공'을 한국도 보유할 시가가 됐다"며 "제조 기술, 자본, 검수 장비, 열정, 좋은 야구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췄다. 세계 야구인이 H&D가 만든 야구공을 쓰는 날까지 이름을 걸고 뛰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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