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맛지도]작은 고추는 이제 맵지 않다
대학가
2015-03-11 08:40:00 2015-03-11 10:07:23
대.동.맛지도 (대학생의 마음을 동하게 한 맛집 지도)
 
혼자 사는 자취생의 저녁은 적막하다.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는 데 익숙할뿐더러, 혼자 있는 걸 좋아하기도 하는 터라 대개는 그 적막함 속에서 홀로 저녁을 지어 먹곤 한다. 며칠 전에도 그렇게 별생각 없이 냉장고에서 양배추를 꺼내 썰고 밥을 짓고 있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산적을 굽고자 창문을 열었더니, 눅눅하고 달달한 밤 내음이 방을 한가득 메웠다.
 
입춘이 지난 덕일까, 거침없던 동(冬)장군의 호령이 가냘파져 밤공기가 선선했다. 창밖을 보니 외투 깃을 추켜세우게 하는 바람이 무서워 꽁꽁 숨어있던 사람들이 좋은 날씨 덕에 방에서 나와 이리저리 걷고 있었다.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밤공기에 설렌 탓에 나는 괜스레 걷고 싶어졌다. 저녁도 밖에서 먹어야겠다 싶어 지갑을 들고 집을 나섰다.
 
30분쯤 걸었나, 갑작스레 가느다란 빗방울이 하나둘 지향 없이 흩날렸다. 비 섞인 바람은 아스팔트길을 휘휘 저으며 그 위에 빗방울을 통통 뱉어냈다. 빛이 여기저기 퍼져나가는 등불들, 거리의 번쩍이는 네온사인들, 손님을 유혹하고자 내붙어있는 간판들. 그것들은 쾡 한 눈으로 비바람이 뱉어내는 빗방울을 바라봤고, 흩어진 빗방울은 그것들의 눈빛이 반사되어 다양다색으로 빛났다.
 
공복이라 배고팠는데,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이슬비를 맞으니 술 한 잔이 간절해졌다. 누군가 불러 만나긴 귀찮았고, 그래서 혼자 곱창을 먹으러 가기로 결정했다. 학교 근처엔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곱창 맛집이 있는데, 평상시에도 친구들과 매우 자주 가는 곳이라 혼자임에도 거리낌 없이 찾아갈 수 있었다.
 
◇사진=바람아시아
 
가게 이름은 ‘땡초 곱창’이다. 후미진 골목에 자리 잡은 허름해 보이는 가게임에도 사람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그 끊을 수 없는 맛에 ‘마약 곱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겉으로 보면 중년의 아저씨들이나 올 곳처럼 보이지만 대다수 손님은 대학생이다. 나는 ‘곱창’이라고 쓰인 유리문을 힘들여 열고 들어가 TV 앞에 놓인 원 테이블에 앉았다.
 
주말에다가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그런데 역시나, 야채곱창 1인분과 소주 한 병을 시키고 기다리는 동안 어느새 가게는 대학생들로 가득 찼다. 물통과 컵, 나무젓가락과 접시, 마늘?파와 특제양념, 상추와 소주가 준비된 뒤에 곧 야채곱창이 나왔다. 허기진 나는 곱창을 양념에 찍고는 마늘과 함께 상추에 싸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사진=바람아시아
  
여길 알게 된 건 2년 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4년 동안 여길 몰랐나 싶다. 남자 4명이 3인분을 시켰는데 다 먹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이곳 단골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을 가진 맛, 게다가 어마어마하게 풍부한 양까지. 아주머니도 친절하신 데다 양을 더 얹어주시기도 했다. 맛과 양, 친절함을 모두 갖춘 집이다. 그러다 보니 단골손님이 많으며 당연히 나도 그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게걸스럽게 곱창과 소주를 반쯤 비우니 슬슬 배가 불러왔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공연스레 신경이 다른 쪽에 쏠렸다. 평상시에 풍경이나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터라 주위를 잠시 둘러보았고, 그러자 옆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귓속으로 술술 흘러들어왔다.
 
한 테이블에는 두 명의 남자 대학생, 다른 한 테이블에는 두 명의 여자 대학생이 앉아있었다. 자세하겐 듣지 않았지만, 네 명의 대학생은 모두 이성 관계를 안주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진지했다. 여기는 그런 점에서 마력을 가진 공간이다. 나도 평상시에 이 곱창집에만 오면 속에 담아둔 깊은 이야기나 진지한 대화를 스스럼없이 하곤 한다.
 
허름한 분위기와 푸짐하고 맛있는 곱창, 어머니 같은 아주머니. 이곳에는 매일 많은 학생이 찾아와 곱창을 먹거나 술을 함께 곁들이며 자신과 남의 삶을 안주 삼아 대화를 나눈다. 이곳에만 찾아오면 무의식적으로 신체를 향해 스며드는 묵직하고도 편안한 분위기에 경계를 풀게 된다. 아마 이런 분위기 또한 이곳을 대학생이 사랑하는 맛집으로 만든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땡초 곱창’은 많은 대학생이 찾아와 진지하게 그네들의 삶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공간이다. 그러면 대학생들은 주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잠시 타인의 이야길 엿듣던 나는 이런 궁금증이 일었다. 내 경험으론 ‘연애’가 이곳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대화의 주제였고, 친구들과 왔을 때도 이성 관계는 늘 주요한 화젯거리였다. 강한 호기심이 일었기에 나는 아주머니에게도 여쭤보기로 마음먹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이곳을 10여 년 동안 운영해오셨다. 대학생들이 자식과 나이 또래가 비슷하다 보니, 먼저 말을 걸기도 해서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고, 잘 먹는 사람이 오면 더 얹어주게 되었다는 것. 주로 자취생들이 많이 오는데, 그런 아주머니의 모습에 학생들이 고마워해서 명절에는 각종 선물을 들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졸업할 때 먼 곳으로 떠나는데 생각날 것 같다며 인사하고 간 학생도 있었고, 남자친구와 헤어지고는 홀로 찾아와 아주머니와 수다를 떨었던 여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은 취직 이야기, 군대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곤 했으며, 그중에서도 연애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지 않았느냐는 나의 질문에 아주머니도 공감을 표하셨다. 가게의 인기 비결을 여쭙자, 맛과 양도 중요하겠지만 아마 친근하고도 편안한 분위기 덕에 학생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 같다며 웃음을 지으셨다.
 
◇사진=바람아시아
 
사실 이 호기심은 이곳이 젊은 대학생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겠단 생각에서 기인했다. 편안하게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고 가는 공간, 이 공간 속에서 대학생들은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할까? 아마 ‘연애’가 아닐까? 그리고 그런 사실은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이런 일련의 추측들이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조금은 명확해졌고, 다음과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볼 수 있었다.
 
현재 20대는 정치와 경제, 어느 곳에서도 주인공이 되지 못한 삶을 사는 것 같다. 젊은이들은 ‘대의’가 상실된 대의제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통치하기보단 통치받고 있다. 20대가 경제적으로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자신을 어떻게 하면 팔릴 수 있는 값비싼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며 스펙 페인트칠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
 
그러다 보니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연애’에서 자신의 마음을 불태우며 진실 된 감정을 찾고자 하는 것 같다.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공간인 이성 관계 속에서 말이다. 과거엔 정치적으로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문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의 현실은 고통스럽고 억압적이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은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과거의 청년들이 했던 고민과 관심사는 현재의 청년들에겐 효율적이지 않고 취업에 도움되는 게 아니므로 고려 대상이 아니어야 한다. 어느 곳에서도 주인공이 되지 못한 삶, 그 삶을 보여주는 것이 그토록 젊은이들이 많이 이야기하곤 하는 ‘연애’ 이야기다. ‘연애’는 현재 20대가 처해있는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요 젊은이들의 공통된 관심사다. 어느 곳에서나 시작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 술자리에서 분위기가 농익어 갈 때 즈음 빼놓지 않고 등장하며, 각자의 진실한 감정을 토로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 ‘연애’ 속에서 젊은이는 영웅 서사의 주인공이 되어 타인에게서 동경의 시선을 받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난관이 형성된다. 연애에서조차 자신의 뜨거운 감정을 쏟아낼 수 없다면? ‘연애’가 유일한 통로로 주어진 것도 문제인데, 그게 불가능해진다면? 빠져나갈 수 없는 꽉 막힌 삶, 그곳에는 절망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아포리아에 빠져 있는 게 지금의 20대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엔 여러 곳에서 ‘포기’란 말이 나오고 있는데, 연애도 그중 하나라는 사실은 이제 익숙해졌다. 먹고 살고자 스펙으로 치장해도 부족할 판에 연애는 이제 돈을 축내는 사치다.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 취직 뒤에는 집 살 준비, 지금의 젊은이에겐 이성에게 눈길 줄 여유도 없는 것 같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다. 겉보기완 다르게 작은 것이라도 큰 것보다 더욱 뛰어날 수 있다는 말인데, 적어도 예전엔 젊은이들을 두고 ‘작은 고추’라고 말할 수 있었다. 살아온 인생은 짧았어도 그들에겐 뜨거움?열정과 함께 주인공이 될 가능성도 있었고, 그래서 ‘맵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닌 것 같다. 그저 주어진 좁은 문틈을 통과하고자 치고받고 싸워야 하는 현실이라니, 주인공도 아닐 삶을. 이전투구(泥田鬪狗) 뒤에 남겨진 것은 타인을 향한 감수성의 부재, 인간적 가치의 상실에서 오는 상처뿐이다.
 
곱창집에서 보았던 젊은이들, 아이러니하게도 땡초 곱창을 먹는 작은 고추들은 더는 맵지 않아 보였다. 마치 매워지고자 ‘땡초’ 곱창을 먹는 것처럼, 거기에서 위로받으려는 것처럼…. 이런 공간 속에서 나는 어떤 삶을 꿈꾸며 살 수 있을까? 마지막 잔 소주가 괜스레 더 씁쓸하게 느껴졌다.
 
송윤아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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