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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현장을 가다)암사동, 가죽공예 '디자인 메카'로 키워야
명품 가죽 제품 제작 노하우 '풍부'..디자인 부족 약점
가죽공예 디자인 교육 시스템 구축해야 장기 발전 가능
2015-01-23 06:00:00 2015-01-23 06:00:00
[뉴스토마토 김현우기자] 암사1동 골목을 들어가면 공사 현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주택을 허물고 ‘도시형 생활주택’을 짓는 곳들이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이명박 정부 때 값 싼 주택을 공급한다는 취지로 건축 규제를 완화해준 다세대 주택이다. 최근 의정부 화재 참사로 화재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서울 25개 자치구에 10만 세대가 계획됐다. 그 중 강동구에 5000세대가 있고 암사1동에만 500세대가 몰려있다.
 
‘도시형 생활주택’이 많다는 것은 화재 위험이 높다는 우려만 있는 게 아니다. 주택을 철거하고 새로 지은 다세대 주택은 임대 사업에 쓰인다. 암사1동에 오래 살던 사람은 떠나고 외부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셈이다. 암사1동 관계자는 “새로 지은 빌라들이 많아지면서 외형적으로 좋아지지만, 오래 살던 사람들이 나가면서 공동체가 약해졌다”고 걱정했다.
 
◇암사1동 골목길 전경, 주택을 허물고 도시형 생활주택들을 짓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가죽산업 사향길..떠나는 주민들
 
암사동은 천호동과 함께 서울 가죽산업의 중심이었다. 이 지역 덕분에 강동구는 전국 가죽제품의 약 27%를 점유하던 호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가죽제품 생산공장 등이 인건비가 싼 중국 등으로 이동하면서 강동구 가죽산업도 사향길로 접어들었다. 현재는 등록 가죽업체가 약 300곳으로 줄었다.
 
중심 산업이 쇠퇴하고 주거 환경이 노후화 되면서 지역을 떠나는 주민들도 늘어났다. 암사1동 인구는 지난 2011년 이후 계속 감소 추세다.
 
강동구는 암사1동의 가죽 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도시재생사업에서 가죽산업 창업지원센터를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암사동의 가죽 장인들은 구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해경 암사1동장은 “지역 가죽 장인들의 실력은 최고 수준이다. 지금도 명품 제품들이 암사동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며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장인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제안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외형적 지원보다 가죽산업 미래 투자해야"
 
구에서 가죽사업을 키우려는 움직임을 반기면서도 실효성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들은 지원이 외형적인 결과를 내는 것에 머무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창업지원센터, 공동전시장은 눈에 보이는 건물들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고 도시재생사업의 결과로 선전하기 쉽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암사동 가죽제품이 경쟁력을 얻고 가죽산업이 부활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홍창욱 홍스공방 대표는 "프라다 가죽 제품은 지금도 암사동 지역에서 만들고 있다. 예전 루이뷔똥 가죽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려고 했을 때 중국에 기술을 가르치러 간 장인들도 암사동 장인들이었다. 그러나 명품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있다고 해서 모두 명품을 만들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암사동에서는 명품 회사에서 디자인과 필요한 재료들을 보내주면, 장인들이 그대로 만드는 하청 작업이 이뤄졌다. 이를 통해 장인들은 제품을 만드는 기술적 노하우는 축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디자인 노하우 등은 얻지 못했다.
 
장인들이 명품 제품을 똑같이 만들거나 일부만 고쳐서 판매·전시를 하는 것은 특허관련법 위반으로 범죄 행위다.
 
장인들이 우수한 기술은 가지고 있지만 대중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을 만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들여 만든 제품들이 디자인이 나쁘다는 이유로 대중들에게 외면받게 되면 암사동 장인들에게 더 큰 상처만 남길 수 있다.
 
홍 대표는 구가 창업·전시 공간을 지원하는 것보다 장인들이 디자이너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장인들이 디자이너들과 소통하면 대중들이 선호하는 제품 디자인에 대해서도 알게되고 새로운 기술들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설명했다. 
 
도시재생사업에서 암사동 가죽 장인들의 기술 노하우를 젊은사람에게 전수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김준영 디자인랩 이사는 "가죽 제품 관련 업종은 소득이 높다. 가죽 백팩 도안을 하루에 만들면 20만~30만원을 받을 수 있고, 의류 업체 가죽 도안 담당자는 연봉 5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가죽공예에 관심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많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적다"고 말했다.
 
암사동 가죽장인들은 대부분 노년층이다. 때문에 이들이 은퇴하고 명품 가죽제품을 만들던 기술 노하우가 끊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그러나 과거 도제 방식으로는 기술을 전수받을 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김 이사는 "도시재생사업으로 커뮤니티공간이 생기고, 그 곳에서 장인들이 지역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가죽공예 기술을 전수한다면 지역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암사1동에 위치한 디자인랩. 대부분 가죽제품 공방이 지하에 있는 것과 달리 디자인랩은 고객들이 편하게 방문할 수 있도록 1층에 사무실을 뒀다.(사진=뉴스토마토)
 
◇주민들 도시재생사업 기대 커..아이디어 속출 
 
지하철 8호선 암사역을 나와 올림픽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암사동 선사 유적지가 나온다. 선사 유적지는 강동구가 자랑하는 문화 유산이지만, 지하철역에서 유적지까지 가는 길은 서울의 평범한 길과 다르지 않았다. 이 때 지나가는 올림픽로는 암사1동에 속한다.
 
그래서 암사1동에서 도시재생사업 관련 주민 의견을 모았을 때 암사 유적지까지 가는 길을 분위기 있게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해경 동장은 "주민들이 도시재생사업에 관심이 많다. 암사 유적지 길 꾸미기 등 재미있는 의견들이 많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또 암사1동은 주민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공원시설은 3곳 뿐이며 1인당 공원 면적은 0.12㎡에 불과하다. 이 동장은 "김장 봉사 등 주민들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자는 요구도 많았다"고 전했다.
 
암사1동의 10년 이상 남아있는 폐병원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구 성모병원은 지난 2003년 폐업한 후 그대로 남아있다. 정문에는 '다시 병원 영업을 할 건물'이라는 설명문이 붙어있다.
 
구 성모병원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주경영(가명)씨는 "밤이 되면 저 건물 때문에 무섭다. 도시재생사업에서 병원 건물도 해결할 수 있느냐"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암사1동 올림픽대로 전경. 선사유적지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교통 표지판 뿐이다.(사진=뉴스토마토)
  
◇강동구 "도시재생사업 모범 만들겠다"
 
강동구는 암사1동 도시재생사업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선사시대 역사성과 결부시켜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에 공모했다"며 "암사지역을 도시재생사업의 훌륭한 모델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강동구가 서울시에 제출한 안에는 암사동 유적지와 암사종합시장을 관광 벨트로 묶어 매년 4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계획이 들어있다. 암사1동에 가죽산업 창업지원센터를 운영하고, 매년 사회적 경제기업을 3개씩 만들겠다는 방안도 들어있다.
 
이해식 구청장은 강동구에서 만들고 있는 도시농업 친환경 로컬푸드 센터도 1곳 조성할 것을 약속했다. 또 마을공동체를 육성하고 주민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큰 방향을 제시했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아직 사업 초기이기 떄문에 세부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며 "주민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세부계획을 만들고 도시재생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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