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기자)SF영화를 읽는 철학자의 시선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마크 롤랜즈 지음 | 책세상 펴냄
2014-12-08 10:03:18 2014-12-08 10:03:30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는 철학자의 시선에서 '공상과학(SF)영화 재관람'을 돕는 책이다. <프랑켄슈타인>, <매트릭스>, <터미네이터>, <반지의 제왕> 등 할리우드 영화 속 철학적 주제를 사유한다.  저자가 SF영화에서 철학적 사유를 시도한 이유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괴물, 로봇, 외계인 등 타자와 그것을 보는 시선을 통해 자신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국내에선 <철학자와 늑대>로 유명한 미국 마이애미대 철학과 교수 마크 롤랜즈가 썼다.
 
책은 영화 <프랑켄슈타인>로 포문을 열고, 부조리 개념과 삶의 의미를 특유의 발랄한 문체로 논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우리 역시 그 괴물처럼 배려 없는 냉혹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져서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당신을 괴물처럼 쳐다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다면 만장하신 가톨릭교도 앞에서 몽정을 해보라."
 
이어서 <매트릭스> 편에서는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인식론을 통해 "우리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풀을 녹색으로 보는 이유를 논증할 때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아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풀은 녹색으로 보이지만, 밤에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녹색이 아닌가? 풀은 원자나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원자나 분자는 녹색을 띨 수 있는 게 아니다. 풀이 전자기 스펙트럼 일부를 반사할 때 녹색에 대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뇌가 그렇게 보기 때문일까? 뇌는 녹색이 아니다. 관념론자들은 이에 대해 모든 실재는 정신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래서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나.
 
<스타워즈> 편에선 '선과 악'을 다뤘다. 플라톤의 시각에서 보면 은하계를 정복하려는 다스 베이더는 "실재성이 결여된 불안정한 상태"이지만, 니체가 볼 때는 "잠재력 있는 초인"이다. 또 <터미네이터> 편에선 마음과 몸의 관계를 다룬 이원론을 고찰하고, <토탈 리콜> 편에서는 "기억이 곧 사람"이라며 '인격동일성의 문제'를,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통해서는 '자유의지'를 설명한다.
 
사실 이 책은 지난 2005년 <SF철학>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새롭게 번역한 신상규·석기용 교수는 '굳이 다시 번역한 이유'로 "강의 교재로 이 책을 쓰려고 했으나, 기존 번역서가 절판돼 시중에서 찾을 수 없었다"며 "경쾌한 글솜씨가 특징인 저자의 철학 논의를 기존 번역서보다 더 정확하게 번역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책은 과거와 달리 <반지의 제왕> 편이 추가됐다. 발랄한 문체 덕에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많으나, 논증이 지나치게 긴 대목도 있다. 대부분 철학서가 그렇듯 쉽지는 않다. 가벼운 척 묵직한 책이다.
 
▶ 전문성 : 저자는 11년간 함께 산 늑대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철학자와 늑대>라는 대중적인 철학서를 내놓으며 널리 알려졌다.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팬이자 영화광이기도 한 저자의 생각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 대중성 : SF영화를 즐기는 독자가 아니라면 다른 철학서와 다르지 않게 보일 수 있다. 책이 다루는 영화는 ▲프랑켄슈타인 ▲매트릭스 ▲터미네이터 ▲토탈 리콜 ▲6번째 날 ▲마이너리티 리포트 ▲할로우 맨 ▲인디펜던스데이 ▲에일리언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블레이드 러너 등 12편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영화를 보는 것이 좋겠다.
 
▶ 참신성 : 저자가 소개하는 영화 중 최신 사례가 무려 10년 전이다. 오래전 번역 출간된 책을 재번역했기 때문이다. 최신 인기 영화 <인터스텔라>를 저자가 어떻게 봤을지 궁금하다.
 
요약
 
책은 SF영화를 통해 삶의 의미부터 죽음에 이르는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를 다뤘다. <프랑켄슈타인>에서는 부조리와 삶의 의미를, <매트릭스>에선 '우리는 무엇을 확신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터미네이터>에서는 마음과 육체를 바라보는 이원론과 유물론, <토탈 리콜>과 <6번째 날>에서는 기억과 인격 동일성의 문제를 고찰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을 통해 자유의지를 사유하고, <할로우 맨>과 <인디펜던스데이>, <에일리언>, <반지의 제왕>에선 도덕을 논했다. <스타워즈> 편은 선과 악을, <블레이드 러너>에 이르러선 죽음을 얘기한다.
 
책은 SF영화와 철학자의 사상을 연계해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찾은 질문을 시작으로 철학적 물음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저자가 "이 책에서 발견한 논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것을 멋지게 박살 낼 방안을 궁리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비로소 철학자가 되는 것"이라고 썼으나, 박살 내기는커녕 저자의 상당히 긴 논증을 따라가다 보면 지칠 수도 있겠다. 영화를 소재로 한 책인지 까맣게 잊을 만큼. '길을 못 찾겠다고 느낄 때' 삶과 죽음을 논하는 이 책을 통해 삶의 의미를 고찰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을 이유 중 하나다.
 
■책 속 밑줄 긋기
 
"일평생 학생으로 남는 것은 스승에 대한 졸렬한 보답이다."
 
"우리는 자신에 관해 말하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이해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대로, 그런 이야기들이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길을 못 찾겠다고 느끼게 된다. 철학함이란 숲 속에서 길을 잃는 것과 같다. 철학자의 과제는 빠져나갈 길을 찾는 것이다."
 
"소용돌이를 소용돌이로 결정짓는 것은 바로 강물의 흐름이다. 우리를 둘러싼 역사의 조류가 우리를 만들어낸다."
 
"공포는 등골 휘는 중노동이 아니라, 그 노동의 완전한 공허함에서 나온다."
 
"우리의 삶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바로 그것을 성취하는 데 실패하거나, 아직 성취하지 않은
상태일 때에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 자신의 것이라 할 수 없는 시시한 목표들을 성취하려는 시도가 이런 삶을 지배하게되는데,
실은 이런 목표들은 단지 우리에 의해서건 우리 자식들에 의해서건 그 자체를 반복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것들만을 겨냥할 뿐이다."
 
"데카르트는 당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상 당신이 있다는 것을 자동으로 보장해준다고 보았다."
 
"오늘의 당신과 내일의 당신을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당신의 기억이다."
 
"당신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헤라클레이토스"
 
"나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의 경우에, 우리가 밖에서 보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것을 안에서는 갖고 싶어 하며 또 실제 가졌다고 간주하는 상황이라고 확신한다."
 
"신에게 호소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도덕적 이유를 타산적 이유로 바꿔놓는다. 나는 그것이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할 유일한 이유라고 믿는 사람들이 정말로 무섭다. 만약, 신이 없다면 우리는 이런 식으로 도덕적 이유를 타산적 이유로 만들 수 없게 된다. 이 의문에 답하는 한 가지 방법은 기본적으로 그 신을 사회로 대체하는 것이다."
 
"에일리언들이 우리보다 더 나쁜가? 내 생각엔 정반대다. 만일 우리가 에일리언들을 비뚤어진 사악한 생명체로 생각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거울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SF영화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별점 ★★★★
 
■연관 책 추천
 
<철학자와 늑대> 마크 롤랜즈 | 추수밭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 |  엘도라도
 
 
김동훈 문화체육부 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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