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12일 오전, 검찰 관계자가 긴급히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지난 7일 '다음카카오'가 이메일에 대한 검찰의 감청영장 집행 협조를 거부한 것에 대한 검찰 차원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앞서 12일 한 신문은 '다음카카오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에 대한 이메일 감청영장 집행을 거부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이메일 감청이 벽에 부딪힐 경우, 사실상 감청이 가능한 통신 영역이 없다는 점을 토로했습니다. 그는 현재 감청 가능한 통신 기기가 유선전화, 휴대전화, 이메일, 카카오톡 등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각 통신 기기의 감청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유선전화'의 경우 "사람들이 유선전화를 쓰지 않고, 중요한 대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며 "유선전화 감청 영장은 받아도 수사에 별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건질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휴대전화'에 대해선 "감청할 수 있는 설비가 전혀 안 돼 있다. 그래서 감청 영장 청구 자체가 안 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SNS의 감청과 관련해선 "페이스북·트위터 등 외국 SNS는 할 수 없다. 국내 SNS에선 주로 카카오톡을 (회사) 협조를 구해서 감청을 했는데, 지난 (다음카카오측이 '협조 거부'를 선언한) 지난달 7일 이후는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이메일 감청'에 대해선 "(다른 감청과 달리)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왔다"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번 다음카카오 측의 이메일 감청 영장 집행 협조 거부에 대해 "최초의 사례"라고 칭했습니다.
◇檢 "이메일 마저 못하면, 통신 감청 불가능"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법률상 존재하는 제도인 감청을 현실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며 "국가안보위협, 살인, 납치 등 중대범죄에 한해 법이 허용하고 있고 법이 굉장히 엄격한 요건 하에 발부해주는 감청영장을 집행하지 못하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 그는 지난달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 국정감사에 출석해, 검찰의 감청영장 집행에 대한 협조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News1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감청 영장 집행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방안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해 설명했습니다.
우선, 과거 했던 대로 IT업체들로부터 영장 집행 협조를 받는 방식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이 방식을 "제일 합리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통신비밀보호법에는 업체들의 협조 의무가 규정돼 있다"며 "협조 거부는 시민의 도리가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이 다음카카오 측의 협조 거부 선언 이후 '시민의 도리' 같은 말을 내세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의무 규정은 있지만, 이를 어겼을 경우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제재수단이 없는 현실적 이유 때문입니다. 이 관계자도 긍정했습니다. "단순히 협조를 안 한다고 어떻게 할 수 없다."
두 번째 방식은 김진태 검찰총장이 국정감사장에서 밝혔던 "강제로 문을 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수시기관의 기술력으로 직접 감청 영장을 집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방안의 문제점은 바로 '수사기관의 기술력'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검찰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그는 감청 도중 '셧다운'이 생길 가능성을 우려하며 "강제로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이 밝힌 세 번째 방식은 수사기관이 직접 감청장비를 개발하는 안입니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가 '감청 기술이 없다'고 밝힌 것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그 말은 틀릴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그는 이 방안의 어려움도 인정했습니다. "서버 등의 소스코드를 알아야 그에 맞고, 무리를 주지 않는 장비를 만들 수 있다. 결국 이것도 업체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결국 檢이 원하는 건 '통비법 개정'
앞선 세 방안에 대해 살펴보면, 모두 '현실적으로 여의치않다'는 것을 검찰 관계자가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결국 검찰 관계자가 말하고자 했던 방안은 바로 '네 번째 안', 즉 '입법을 통한 해결'입니다. 검찰 관계자의 설명도 이 '입법 방안'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검찰 관계자가 밝힌 '입법 방안'의 핵심은 통신사업자에게 감청 설비 설치 의무를 부과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때마다 거기에 알맞은 감청 설비를, 통신사업자 스스로 개발해 수사기관의 영장 집행에 협조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현재 수사기관에 '감청 설비 설치'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 것을 '통신사업자'에게 넘기겠다는 것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현행 통비법의 문제는 통신사업자가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할 경우, 시스템을 모르면 감청을 할 수 없다는 점"이라며 "현실과 법의 괴리가 발생한다"고 전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미국·영국·독일의 사례를 들며 "외국은 우리와 달리 협조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제재수단이 있다. 더 나아가 통신사업자에게 감청장비 개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그는 "제일 좋은 것은 법을 보완해서 법과 현실의 괴리를 빨리 없애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만약 다른 나라에서 안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만 하자고 하면 굉장한 반대가 있을 거다. 그러나 선진 외국에서 어떻게 하는지 봐라. 시행이 되고 있다"며 "지구상에 없는 걸 하자는 게 아니다"고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판사의 영장 효력이 발생하지 못하는 건 법치주의의 큰 문제"라고도 덧붙였습니다.
◇현실적으로 통신사업자 협조에 기댈 수밖에
검찰 관계자는 여기에 더해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입법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그동안 했던 대로 통신사업자가 협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사이버 검열 논란 이후 저런 입장 취하는 것은 심히 부적절하다"고 다음카카오 측에 불편한 심기를 재차 드러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나라 법의 보호를 받으며 사업을 하고 이득을 취하면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선진국의 태도다. 그 정도의 의식은 사업자가 자발적으로 갖춰주면 좋겠다"며 "그게 안 된다면 우리도 법으로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경고성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검찰 관계자들이 이 같이 경고성 발언을 잇달아 한 것은 현실적으로 통신사업자의 협조를 이끌어내지 않고는 SNS와 이메일에 대한 감청 영장을 집행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네 번째 '입법을 통한 방안'이 있지 않냐고요? 야당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원하는 식의 '통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통비법 개정이 우호적인 여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국회 선진화법'상 야당의 협조는 필수적입니다. 즉, 네 번째 방안이 앞서 나온 세 안과 비교해서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검찰 관계자는 다음카카오 측에 대해 강한 압박성 발언을 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감청 영장 집행 방식이 문제없다고 강변하며 "대한민국 판사들도 감청이라고 인정하는데 통신사업자들이 감청이 아니라고 하는 건 자기들이 법률을 판단하는 형국"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게 법치주의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다음카카오가 카카오톡 대화에 대해 암호화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만약 수사기관의 적법한 영장 집행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선진국 기준으로는 처벌 대상"이라고 밝혔습니다.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과 감청 영장으로 인해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범죄를 판단하기 위해선 특정 기간 내에 있는 내용을 다 볼 수밖에 없다"면서도 이를 의사의 수술 집도와 비교했습니다. 그는 "의사가 수술을 하는데 사람 몸을 안 볼 수 없다"며 "(마찬가지로) 직업 양심에 따라 (범죄와 관련 없는 부분은) 무시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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