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연극 '가족의 왈츠'
2014-08-22 08:32:08 2014-08-22 08:36:25
<여가시간, 다들 어떻게 보내시나요? 집에서 TV 리모컨 돌리는 것도 하루이틀이면 어느새 지겹습니다. 취미란에 고민 없이 독서라고 적는 분들, 막상 손에 책 한 번 잡기란 얼마나 어려운지요. 집 밖으로 나와 영화관에나 갈까 싶지만 상영 중인 영화는 어느새 다 봐버렸네요. 뭔가 색다른 게 없을까 고민하시는 분들, 놀 거리에 대한 아이디어가 궁색한 분들을 위해 뉴스토마토에서 ‘공연+’를 준비했습니다. ‘공연+’는 연극, 뮤지컬, 발레,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 중 재미있는 공연, 꼭 알아야 할 공연을 엄선해 추천해드리는 코너인데요. 마법처럼 순식간에 펼쳐졌다 사라지는 공연만의 매력, 한 번 빠지시면 헤어나오기 어려우실 겁니다. 내 삶에 플러스(+)가 되는 공연의 세계로 지금부터 한번 들어가 보실까요?>
 
‘공연+’에서 첫번째 소개해드릴 공연은 연극 <가족의 왈츠>입니다. <가족의 왈츠>를 선정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화 <해무> 아시죠? 하반기 상영하는 대작 한국영화 중 작품성 면에서 가장 인정받고 있는 작품인데요. 이 <해무>의 원작이 연극 <해무>이고, <가족의 왈츠>는 바로 <해무> 희곡를 쓴 김민정 작가의 초기작입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이 연극 <날 보러와요>였고, 영화 <왕의 남자> 원작이 연극 <이>였던 것, 기억하실 겁니다. 연극 <해무>가 이미 무대에서 탄탄한 작품으로 인정 받았기에 영화 <해무> 또한 기대작으로 꼽힐 수 있었던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토리가 탄탄하다는 것은 그만큼 기초가 탄탄하다는 얘기니까요. 김민정 작가의 작품이라면 여러분께 믿고 소개해드려도 좋을 것 같아 자신 있게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자료제공=한강아트컴퍼니)
 
◇완벽한 숫자, 3
 
<가족의 왈츠>의 원래 제목은 <가족 왈츠>였어요. 이 작품은 2004 국립극장 신작희곡페스티벌 당선작이기도 합니다.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면서 제목이 <가족의 왈츠>로 살짝 바뀌었네요.
 
어쨌든, 이 작품에는 ‘왈츠’가 등장합니다. 왈츠는 3박자의 경쾌한 춤곡이죠. 3이라는 숫자는 동양에서는 완벽한 숫자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가족의 왈츠>란 제목은 완벽한 가족 공동체를 의미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흥겨운 세 박자 춤곡은 공연 중 계속 기괴하게 변주됩니다. 그러면서 무대 위 가족의 숨겨진 이야기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암시하죠.
 
3박자 왈츠라는 소재에서 미뤄 짐작 가능하듯 이 연극은 가족 3명 사이 갈등의 원인을 추적합니다. 연극은 기억이라는 형식을 빌어 전개되는데요. 이 집의 아들인 인수, 사건이 벌어질 당시 9살이었던 인수의 기억을 쫓아갑니다. 36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서로를 외면한 채 살아온 가족은 인수를 통해 빈 집에서 재회합니다. 진실 찾기를 위해 현실과 과거, 추억과 환상이 교차되면서 무대에는 시간과 공간이 혼재하게 됩니다.
 
◇공동체 의식을 방해하는 왜곡된 기억
 
표면적 갈등의 주체인 3명은 경찰인 남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내의 여동생입니다. 매력적인 외모의 여동생은 본래 언니 부부에게 왈츠를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그런데 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여동생이 화목한 이 가정에 갈등을 불러 일으킵니다. 경찰에 쫓기는 운동권 애인을 남몰래 집안에 숨겨주고 있다는 게 탄로났기 때문이죠. 완벽한 가족이었던 어른 3명의 관계는 순식간에 삐걱대기 시작하고, 이 과정을 부부의 아들 인수가 지켜봅니다.
 
작품은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어른이 된 인수의 기억을 따라갑니다. 어른이 됐는데도 인수는 왜 불행한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어딘가 불안정한 인수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과거에 대한 명확한 인식 없이 현재가 제대로 흘러가기 어렵다는 시각을 피력하는 듯합니다. 불행한 과거로부터 내내 도망치는 삶을 살았음에도 인수는 결국 피할 수 없는 직면의 순간을 마주하고 맙니다.
 
뭐가 됐든 진실을 마주하겠다는 인수의 결심이 마침내 멈춰 버렸던 과거의 시간을 다시금 무대에서 흐르게 합니다. 인수는 계속해서 과거의 기억을 헤집고 다니면서 기억의 편린들을 정면으로 마주하죠. 작품은 인수가 혼란을 감수하며 기억을 더듬고, 왜곡된 것을 바로잡으며, 가려진 진실을 쫓아 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
 
완벽할 수 있었던 이 가족의 화목을 방해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이 가족 공동체를 파국으로 이끈 원인은 다름 아닌 오해와 의심, 그리고 욕망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어쩌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 철 없는 순수함이 이 가족을 파멸로 이끕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더 자세히는 말씀 못 드리겠네요. 어쨌든.
 
이 과정을 그리는 김민정 작가의 시각이 흥미롭습니다. 가족 중 누구에게도 주홍글씨의 낙인을 찍지 않는데요. 작가는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 넘어 서로 조금씩 오해했던 것들을 인정하고 화해를 모색할 때 비로소 가족의 왈츠, 공동체의 왈츠가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보는 듯 합니다. 공동체의 모든 문제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때야 비로소 아름다운 화합이 이뤄질 수 있다는 시각이지요.
 
이러한 주장이 배우의 대사가 아니라 무대 사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연극인 만큼 무대에는 방과 방문들이 배치돼 있습니다. 과거사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듯 고집스럽게 닫혀 있는 집안의 방문과 달리 현관문의 경우 프레임만 있는 형태로, 사실상 뚫려 있습니다. 아들 인수가 현관문으로 걸어 들어오는 행위, 어머니가 방문을 걸어 잠그는 행위, 아버지가 어머니 방의 닫힌 문을 여는 행위 등은 일종의 소통 의지와 소통 거부에 대한 연극적 상징으로 관객에게 다가옵니다.
 
결국 '나'인 인수까지 숫자 3 안에 포함될 때, 과거의 기억과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때 '가족의 왈츠'는 완성됩니다. 그러니까, 인수가 과거사를 더 이상 아버지, 어머니, 이모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나의 이야기로 받아 들이는 순간 과거 기억의 왜곡이 풀어지고 진실이 밝혀지지요. 결국 모든 것은 '나'로부터 출발하고 '나'로 끝납니다. 이렇듯 <가족의 왈츠>는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공동체의 기억과 왜곡, 반성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해 읽을 만한 연극입니다.
 
- 공연명 : <가족의 왈츠>
- 시간 : 2014년 8월 1일 ~ 9월 28일(월요일 공연 없음)
- 장소 : 대학로 극장 동국
- 작 : 김민정
- 연출 : 박경찬
- 출연진 : 손진환, 이현주, 성라경, 유성진 / 오병남, 배소희, 서신우, 임유정
- 티켓가격 : 3만원
- 문의 : 02-3676-3678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