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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히어로의 고향 '마블' 성공비결 엿보기
악셀 알론소 마블 편집장 내한
2014-08-14 18:30:49 2014-08-14 18:35:09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헐크, 엑스맨.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이 쟁쟁한 영웅 캐릭터들은 모두 고향이 같다. 이들 영웅의 요람은 바로 미국 만화출판사 마블(Marvel)이다.
 
1939년 타임리 코믹스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마블사는 현재 DC코믹스와 더불어 북미 만화계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굴지의 회사로 꼽힌다. 성장과정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회생이 가능할 지 의심스러울 만큼 심한 부침을 겪기도 했다. 명확한 비전 없이 무리하게 투자하다 1996년 파산을 선언한 적도 있다.
 
당시 경쟁사 DC코믹스에 몸 담고 있던 악셀 알론소(51•사진)는 2000년, 아직 위기가 현재진행형이던 시기에 마블행을 감행했다. “마블로 가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주변 모든 사람들의 만류를 비웃듯 알론소는 <스파이더맨>과 <엑스맨> 시리즈의 편집자로 활약하며 마블사의 기사회생에 큰 힘을 싣는다. 현재 악셀 알론소는 마블사에서 편집장을 맡고 있다. 마블 역사 상 15년 내 이 직책에 오르게 된 사람은 단 3명뿐이다.
 
제17회 부천국제만화축제 방문 차 우리나라를 찾은 악셀 알론소를 14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났다. 악셀 알론소는 세계 만화계가 다시 한번 중흥기를 맞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알론소는 “캡틴 아메리카가 누구인지 다 아는 세상”이라며 “만화계가 중요한 시점에 도달했다”고 눈을 반짝였다. 수많은 작가와 스토리, 캐릭터들을 살펴보고 창작의 컨셉트를 최종 선택하는 편집자로서, 그는 특히 한국의 웹툰과 웹툰 시장에 큰 감명을 받은 듯했다. 세계 최고 만화출판사의 편집장에게 한국만화에 대한 인상, 마블사의 근황 등을 물었다.
 
(사진제공=부천국제만화축제 사무국)
 
-한국에 온 목적은 무엇인가?
 
▲여행의 목표는 두 가지다. 첫번째는 한국 만화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위해서다. 현재 마블에서 진행 중인 작업을 함께 할 수 있는 작가들이 있는지 보기 위해 왔다. 두번째는 한국작가들은 어떻게 작업하는지 배우기 위해서다. 특히 웹툰에서 만화독자들이 어떤 유형의 만화를 소비하는지 궁금하다. 출판된 웹툰까지 포함해 한국 만화독자들의 소비성향을 배우기 위해 왔다.
 
마블사에서 영화를 담당하는 '마블스튜디오'는 전세계 작가들과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신종민 이지에이(EGA) 대표의 소개를 통해 한국 작가들과도 일하기 시작했다. 같이 작업한 지 얼마 안 됐고, 더 많이 알기 원한다. 특히 윤태호, 김정기 같은 작가에게 무척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 작가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이제 시작이라고 본다. 
 
-한국작가 작품 중 무엇을 보았나?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기본적으로 웹툰을 많이 봤다. <프리스트>를 봤는데 김정기 작가의 드로잉이 인상적이었다. 마블사는 소재의 다양성을 추구한다. 웹툰은 미래 만화의 표식이라고 본다. 책, 신문, 잡지를 아이패드로 보곤하는데 미래에는 만화를 이렇게 보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책이다.
 
이번 한국 방문 기간 중 디즈니코리아(마블사는 2009년 디즈니에 합병됐다)에서 현재까지 만들어 놓은 웹툰을 볼 예정이기도 하다. 마블의 두 캐릭터를 가지고 마블과 디즈니가 협업하는 작업이 있다. 레이아웃 작업이 끝났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에 대해 조율하고 통찰력을제공하기 위해 간다.
 
한국 웹툰과 마블에서 하는 것과 기본 구조가 같다고 본다. 마블에서는 웹툰을 인피닛 코믹스(Infinite Comics)라고 부르는데 디지털 기기에서 웹툰은 수직으로, 인피닛 코믹스는 수평으로 넘긴다는 것만 다르고 비슷하다고 본다. 인피닛 코믹스는 디지털 만화로 세미 애니메이션이라고 보면 된다. 프레임이 고정돼 있고 그 안에 동영상이 추가되기도 한다. 초기에 실수를 많이 했던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피아노나 농구를 배울 때 그렇듯 실수하면서 배운다고 생각한다. 마블은 투자하는 데 굉장히 조심스럽고 신중한 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정말 많이 투자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종이책의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미국시장의 만화독자는 책을 사고 소장한다. 소매의 기본 방식이다. 거기서 우리 매출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 외에 마블사의 가장 큰 성장 분야가 디지털 코믹스다. 독자들의 다운로드가 또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최근 사례를 들어보겠다. 미스 마블이라는 새로운 캐릭터 만들었는데 이 인물은 파키스탄인이고 모슬람이며 뉴저지에 살고 있다. 발표 당시 논란이 있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굳이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않고 그냥 발표했다. 마블걸 역시 미국 사람이니까. 출판 이후 20만부가 팔렸다. 엄청난 히트다. 만화를 잘 안 읽던 사람도 이슈 때문에 사서 보기도 하더라. 이런 현상들이 우리의 미래 지표를 제시한다고 본다.
 
미국에서는 만화책에 관한 한 하드커버 책과 디지털 시장이 공존할 것이라고 본다. 꾸준히 소장할 사람도 있고, 디지털로 볼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드카피는 문학처럼 취급하고, 디지털시장은 새로 생긴 판매대로 보고 있다. 배급망이 추가 됐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웹툰은 공짜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또 불법 다운로드 하는 경우도 많은데 미국은 어떤가?
 
▲불법 다운로드의 경우, 미국에도 온라인 상에서 파일을 불법으로 제공하는 사람들도 있다. 근데 그게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모른다. 불법 다운로드의 확장세보다 우리가 성장하는 속도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불법 다운로드는 사실 혼자보다는 집단적인 대응이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한국 웹툰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미국 웹툰보다) 한국 웹툰이 훨씬 더 괜찮다는 것?(웃음) 한국 작가들이 훨씬 더 경험이 많다. 소재의 다양성을 매력이라 말하고 싶다. 마블에서는 수퍼 히어로를 좋아하긴 하지만 인생에 영웅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삶의 단면들, 스토리, 드라마를 더 좋아한다. 그런 이야기들은 모든 것을 다 담아낼 수 있지 않나. 윤태호 작가는 정말 놀랍고 멋지다. 정말 좋아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작품을 읽고 싶다. 편집장으로서 작품을 살지 말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마블은 유니버설한 것을 추구한다. 한국 웹툰이 마블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마블사 작품의 90% 이상이 수퍼 히어로다. 그러나 나머지 10%는 인생의 단면을 다루는, 소시민적인 작품이 있다. 물론 범죄가 등장하긴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범주를 좋아한다. 미국 시장에 한해서는 그렇게 가도 된다. <옵틱 너브>와 <고스트 월드>는 영화화 될 예정이다. 이 작품들은 남녀가 서로 바람 피는 얘기, 임대료 없어서 힘들어 하는 얘기들을 다룬다.
 
-윤태호 작가의 작품이 왜 독자 입장과 편집장 입장에서 각각 다르게 다가오는 지 궁금하다.
 
▲내 직업은 만화책을 파는 일이다. 기존에 있는 독자층을 상대로 달성해야 하는 수치가 있는 동시에 성장할 수 있는 걸 예측하는 게 내 일이다. <미스 마블>의 경우 위험을 감수했고 성공했다. 독자층을 늘려 가는 게 내 직무다.
 
마블 작품 리스트에는 현재 <블랙 위도우>, <미스 마블> 등을 포함해 10개의 여성 리더십이 존재한다. 2년 전만해도 하나 밖에 없었다. 여성 독자층이 늘고 있고, 성장의 잠재력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렇게 갈 수 있었다. 리스크테이킹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모든 에디터는 취향이나 창의성에 대한 목표가 각자 다 다르다. 독자층을 우리 쪽으로 잡아내는 길 역시 다 다를 것이다. 그 길을 예상하는 과정에서 너무 앞서 가 버리면 안 된다.
 
-90년대 겪었던 어려움 때문에 마블사에 좀더 신중하게 결정하는 문화가 생긴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때는 미래를 내다보는 게 없어서 힘들었다. 80년대나 90년대 초의 작품을 보면 다양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신뢰를 많이 잃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뒤쳐져 있었다. 당시에는 DC코믹스가 더 잘했다. 재능 있는 작가들을 더 잘 알아봤고, 트렌드를 '안티 히어로'로 읽어냈다. 현재 마블사가 잘 성장해가고 있는데 그 때 실수를 통해 배운 게 있었기 때문이다. 또 토이비즈와 합병하고 나서 2000년 이후, 그쪽 경영팀이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위험을 감수하는 쪽으로 재정비 할 수 있었다.
 
-마블사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온다고 보나?
 
▲지금 마블사가 자리를 유지하고 경쟁자들과 차별되는 포인트는 진정성이다. 현실에 근거하고, 현실에 살고 있다. '실제 세상을 반영하라'가 우리의 철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키스탄인 미스 마블, 게이인 카우보이, 흑인인 캡틴 아메리카, 여자 토르가 가능했다. 미국은 '에브리원'이다.
 
또 영웅에 공감할 수 있을 때 독자들이 좋아한다. 호크아이 같은 경우 급한 성질이 있다. 성격의 약점을 보며 독자들이 공감하며 좋아한다. 미스 마블 역시 일종의 영웅인데 16살 파키스탄 소녀다. 그러나 독자가 16살 소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스 마블의 보편적인 면 때문에 이런 폭발적인 인기몰이가 가능했다.
 
독자들이 영웅의 결점이나 약점에 끌린다고 해도 에디터, 작가, 화가로서는 현 시대의 상황과 문제점을 읽어내는 게 중요하다. 10~20년 전과는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미스 마블은 9.11 사태 이후 세상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미스 마블은 부자동네인 맨하튼시의강 건너편에서 배고프게 살고 있는데 나는 천둥의 신 토르보다는 미스 마블에 더 공감이 간다.
 
-트렌드를 읽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영화 쪽의 성공비결도 궁금하다.
 
▲다양한 스태프가 함께 노력한다. 일단 직원들을 다양하게 구성하려 하는 편이다. 지금 여성 편집인들이 다섯 명 있는데 내가 처음 왔을 때에 비하면 크게 발전한 것이다. 캐릭터, 작가 등에 대한 아이디어는 편집인들이 각자의 판단 아래 가져 온다. 그러면 내가 최종 결정한다. 인하우스 작가 같은 것도 없다.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만화만 읽는 사람은 편집인으로 뽑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화 이외에 다른 책들을 읽고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폭 넓음, 다양성 같은 요소가 중요하다. 나는 자주 직원들에게 최근에 무슨 책을 읽었는지, 그게 왜 재밌었는지, 특정 뉴스에 대해 사람들은 왜 저 뉴스에 반응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본다.
 
영화 쪽인 '마블 스튜디오'는 '마블 웨스트'라고도 불리는데, 영화 파트의 성공 비결은 원작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아이언맨> 같은 경우도 10년을 넘기면서 쌓이고 쌓인 원작 스토리가 있다. 그 중 하나를 영화화 할 때도 원작 분석을 굉장히 철저하게 한다. 마블 스튜디오는 스토리를 샅샅이 뒤지며 원작을 이해하려 하고 작가와 에디터와도 충분히 대화를 한다. 회의 과정에서 절대로 우리가 놓칠 수 없는 캐릭터의 성격 같은 것들에 대해 논의한다. 토니 스타크 같은 경우는 교만하고 건방지고, 똑똑한 척을 하며 바람둥이이고 술주정뱅이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진실성이 있다. 그래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캐스팅 됐고. 그래서 만화책 독자 수준의 관객을 끌어올 수 있었다. 이런 과정 통해서 히트작이 탄생한다. 건물은 튼튼한 터 위에다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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