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앨범을 발매한 랩퍼 빈지노. (사진=빈지노 인스타그램)
[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랩퍼 빈지노가 새로운 앨범을 냈습니다. 힙합계의 아이돌이란 애칭을 얻을 만큼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랩퍼인데요. 특히 여성팬들이 빈지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돌 가수들처럼 각종 음악 방송에 출연하거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비추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인기를 얻고 있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빈지노의 새 앨범 ‘Up All Night EP’는 빈지노가 디자이너 브랜드 WOOYOUNGMI의 파리 컬렉션 음악을 총괄하면서 구상하게 된 앨범인데요. 5번 트랙에 담긴 연주곡인 ‘I Don`t Have To Work’를 비롯해 총 5곡이 담겼습니다. 연주곡을 제외한 나머지 4곡을 통해 빈지노가 대중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힙합을 좋아하는 팬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힙합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여러 이유가 있을텐데요. 랩 장르 자체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겠고, 힙합 특유의 거침 없는 스타일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흔히들 힙합을 저항의 음악이라고 하죠. 그런 만큼 가사에 욕설이나 비속어, 성에 대한 수위 높은 표현 등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말랑말랑한 대중 가요를 좋아하는 음악팬들의 입장에선 그런 부분이 불편하게 느껴질 겁니다.
빈지노의 노래 중에도 그런 센 표현이 포함돼 있는 노래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의 1번 트랙에 담긴 ‘Jackson Pollock D*ck’이란 곡을 들어 보면 빈지노의 노래가 다른 랩퍼들의 노래들과는 분명 다른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노래의 주제는 '망나니의 방탕한 아침'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할 것 같습니다. 빈지노는 여성과의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 노래합니다. 이와 같은 주제를 갖고 랩을 할 때, 마음 먹기에 따라선 상당한 수위의 표현들로 가사를 채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빈지노는 이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제목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은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빈지노는 여성과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커다란 캔버스 위에 물감을 흘리고, 끼얹고, 튀기면서 몸 전체로 그림을 그리는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 비유를 했습니다. 서울대 조소과에 재학 중인 빈지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표현력입니다.
이런 표현 방식을 통해 빈지노는 '있어 보이는 노래'를 만들어냅니다. 수위가 높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많은 여성들이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1번 트랙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눈 빈지노는 2번 트랙의 ‘How Do I Look?’에선 쇼핑에 나섭니다. 새 청바지를 사입은 빈지노는 자신만의 힙합 스웨그를 뽐내는데요. 뮤직비디오엔 온스타일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의 참가자들이 빈지노와 함께 등장합니다.
랩의 필수 요소 중 하나는 라임(rhyme)입니다. 우리말로 운율인데요. 힙합을 좋아하지 않는 음악팬이 있다면 랩퍼들이 단어들을 어떻게 가지고 놀면서 운율을 맞추는지를 눈여겨 보면 힙합에 흥미를 느끼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뻔하고 진부한 라임은 재미가 없습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라임을 들려주는 빈지노는 창의적인 라임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요.
‘How Do I Look'의 가사를 보죠.
“오늘밤 여기서 party. 아마도 저 여잔 자이언티 빠, I see thru her body. I'm lookin for a fashion killa with polo on, no 아베좀비. 손가락엔 tattoo 손목엔 어른스러운 악세사리”
party, body, 아베좀비, 악세사리 등의 단어들이 라임을 이루는데요. 빈지노는 얼핏 봐선 운율이 맞지 않을 것 같은 단어들을 통해 라임을 만들어냅니다.
"Welcome to club swag 24hour, girl you look so chic. 궁금해 너의 왼쪽 손목에 찬 시계 Is that vintage? 투팍처럼 머리에는 터번 on is that mischief. 너의 옷차림이 나는 맘에 들어, u r freakin’ hip"에서 볼 수 있듯, chic, vintage, mischief, hip과 같이 영어 단어를 적절히 활용해 라임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빈지노의 음악이 매력적으로 들리는 이유입니다.
쇼핑을 마친 빈지노는 3번 트랙의 ‘미쳤어’를 통해 클럽에서 정신 없이 즐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번 앨범의 수록곡 중에선 가장 하드한 노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처럼 빈지노는 때론 하드한 느낌의 노래를 통해 힙합 마니아들의 입맛을 충족시켜주기도 합니다.
빈지노는 분명 언더 힙합신의 음악을 하고 있는 랩퍼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언더에, 때로는 오버에 어울릴 법한 음악을 선보이면서 적절히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도 주는데요. 빈지노가 누군가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이런 다양한 느낌이 바로 빈지노가 랩퍼로서 가진 경쟁력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멀끔한 외모를 가진 빈지노는 오버도 아닌, 그렇다고 아이돌도 아닌 그 어디쯤 자신만의 위치를 구축해나가고 있습니다.
4번 트랙의 ‘Up All Night’는 만취한 채 밤을 새는 빈지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흥청망청 술에 취해 방탕한 생활만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빈지노가 잠을 못 이루는 진짜 이유는 헤어진 뒤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그녀 때문인데요. 이 노래는 “아직 니 생각이 나서 그래. 내 친구들은 말 안 해도 understand. 증상은 더욱 심해지지 잘 때 쯤엔 결국 침대에서 인스타그램을 켰지. 나와 달리 너는 너무 멀쩡해"와 같은 가사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화려한 밤문화를 즐기는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한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있는 남자. 이런 노래 속 이미지에 여성팬들이 상당히 뜨거운 반응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아이돌 가수 중 가장 경쟁력 있는 랩퍼로 꼽히는 빅뱅의 지드래곤의 노래 중에서도 이와 비슷한 감성을 담은 곡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활동하는 무대는 다르지만 여성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랩퍼들 사이엔 이와 같은 묘한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힙합계의 아이돌 빈지노가 언더신과 오버신 모두에서 경쟁력이 있을 만한 앨범을 내놨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쪽을 모두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언더신의 랩퍼들도, 오버신의 아이돌들도 눈여겨 볼만한 앨범입니다.
< 빈지노 프로젝트 앨범 'Up All Night EP' >
대중성 ★★★☆☆
음악성 ★★★★☆
실험성 ★★★☆☆
한줄평: 아이돌 랩퍼들, 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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