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조 밴드 어쿠스틱 블랑이 미니앨범을 발표했다. (사진=포츈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뜨거운 여름을 맞아 걸그룹들이 섹시한 콘셉트의 노래를 잇따라 발표하고 있습니다. 남성팬들의 입장에선 참 고마운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들의 선정성 경쟁이 과도해지지나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어떤 걸그룹의 노래는 너무 노골적이어서, 또 어떤 걸그룹의 노래는 섹시만 있을 뿐 음악이 없어서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이라는 점에서 이해는 갑니다.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MSG가 필요하듯,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음악팬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선 더 큰 자극이 필요할 겁니다. 이런 자극적인 음악이 넘쳐나는 자극의 시대에 살다보면 순수한 매력을 가진 음악이 그리워지곤 하는데요. 그럴 때 이 앨범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3인조 밴드 어쿠스틱 블랑(ACOUSTIC BLANC)의 첫 번째 미니앨범인 ‘어쿠스틱 블랑 Pt.1’입니다.
우선 어쿠스틱 블랑이란 밴드가 아직은 생소하게 느껴질 팬들도 있을 듯하니, 이 팀에 대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어쿠스틱 블랑은 가수 박기영이 결성한 밴드입니다. 지난 1998년 가요계에 데뷔한 박기영은 ‘시작’, ‘마지막 사랑’, ‘블루 스카이’ 등의 곡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죠. 나머지 두 명의 멤버는 기타리스트 이준호과 베이시스트 박영신입니다. 이준호는 한국인 최초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리세오음악원에서 플라멩코 기타를 최고 과정까지 마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또 박기영과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재학 시절부터 함께 음악을 해온 동료인 박영신은 김종서, 이적, 조성모, 김연우, 장나라 등의 가수들의 라이브 세션과 녹음 작업에 참여한 실력파입니다.
세 사람이 의기투합해 만든 어쿠스틱 블랑의 첫 번째 미니앨범엔 보너스 트랙을 포함해 총 7곡이 담겼습니다. 3번 트랙의 '톡톡톡'을 다른 버전으로 해석한 곡이 보너스 트랙의 형식으로 마지막 트랙에 포함됐는데요.
첫 번째 트랙에 실린 인트로인 ‘To A Child Dancing In The Wind’는 악기의 소리가 들어가 있지 않은 무반주 트랙인데요. 박기영의 허밍으로만 녹음됐습니다. 앨범 전체의 색깔을 대변해주는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용한 밤, 가만히 눈을 감고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박기영이 딸을 재우며 흥얼거리다 만들게 됐다고 하는데요. 언제부터인가 이 곡을 불러줄 때 마다 딸이 잠을 자지 않고 두 손을 쫙 벌려 마치 바람 사이에 있는 것처럼 춤을 추기 시작해서 'To a Child Dancing in The Wind 라는 제목이 붙여졌다네요.
그런데 이 노래가 탄생하게 된 과정과 별개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바람(Wind)은 보통 시련이나 역경을 의미하죠. 그렇게 보면 '역경 속에서 춤추고 있는 아이에게'란 제목이 되는 건데요. 요즘 우리 아이들 학원이나 과외 때문에 참 바쁘죠. 게다가 그런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지도 못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 문득문득 안타까워 집니다. 'To a Child Dancing in The Wind'는 험난한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노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트랙엔 지난 4월에 선공개됐던 ‘벨라 왈츠’란 곡이 담겨 있습니다. 왈츠 멜로디를 통해 봄의 기운처럼 설레는 사랑에 대한 느낌을 표현했는데요. MSG 하나 들어가지 않은 순결한 음악이란 느낌을 줍니다. 어떻게 하면 더 큰 자극을 줄지, 어떻게 하면 대중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음악을 만들지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요즘의 다른 가수들과 달리, 어쿠스틱 블랑은 그저 감성적인 사운드를 통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순진무구하게 표현해냅니다. 초고음인 6옥타브 D를 돌고래처럼 편안하게 끌어올리는 박기영의 발성은 들을 때마다 인상적이네요.
세 번째 트랙의 ‘톡톡톡’이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입니다. 가사를 우선 잠시 살펴볼까요.
“어제가 꿈인 것처럼 하루가 시작되고, 끼니를 거른 것처럼 기운이 없어. 허전한 마음이
자꾸 네가 생각나 어느새 또 눈물이 흐른다. 세수하고 분칠하니 아픈 마음도 덮어지고. 촉촉했던 눈가도 차갑게 식어지고. 가슴을 쓸어내려 톡톡톡 두드려주니. 내 손도 남의 손 같아 위로가 된다.“
고독한 현대인에게 위로를 건네는 곡입니다. '톡톡톡'이란 말의 어감이 귀여우면서도 어딘지 슬프게 느껴지네요. 어쿠스틱 블랑은 어깨를 '톡톡톡' 두드리면서 고된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줍니다.
네 번째 트랙의 ‘이야기’엔 우리 삶에 대한 담백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항상 아플 테지만 힘들지 않게 힘을 빼. 같이 쉬어주는 한숨에 숨을 얻어간다. 또 아플 테지만 또 힘들지만 한숨 쉬고 나와 같이 울어도 돼”라며 어쿠스틱 블랑은 음악을 듣는 우리에게 직접 이야기하듯, 우리들의 아픔에 대해 같이 공감을 해줍니다. 박기영의 절제된 듯한 감성적인 목소리가 돋보입니다. 바로 지금, 누구나 힘든 일 하나 정도는 겪고 있지 않나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잠시 위안을 받아보는 건 어떨까요?
다섯 번째 트랙에 실린 ‘어떤 느낌’은 남미풍의 화음에 룸바 리듬이 더해진 색다른 노래입니다. 어쿠스틱 블랑은 연습 중에 "'어떤 느낌'을 가지고 곡을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했다가 그 '어떤 느낌'이 실제 곡의 제목이 됐는데요. 어쿠스틱 블랑이 말하는 '어떤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요? 그게 바로 어쿠스틱 블랑만의 느낌인 것 같습니다. 음악에 취한 듯 여러 음들을 짚어내는 어쿠스틱 블랑의 연주와 박기영의 목소리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리고 그 음악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해지게 만들고, 자신도 모르는 새 뭔가 치유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죠.
여섯 번째 앨범엔 에필로그인 ‘Nana’가 있습니다. 어쿠스틱 블랑이 실력파 뮤지션들로 구성된 밴드다 보니 이런 멋진 연주곡을 들을 수도 있네요. 이 노래는 우아한 왈츠풍의 멜로디로 시작되는데요. 뒤 이어 트레몰로 주법의 기타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습니다. 연주에서 음이나 화음을 빨리 규칙적으로 떨리는 듯이 되풀이하는 주법이 트레몰로인데요. 어쿠스틱 블랑의 음악적 깊이와 뮤지션으로서 지향하는 바를 느낄 수 있는 에필로그입니다.
요 몇 달간, 우리 모두에게 치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기댈 곳도, 위안을 얻을 곳도 마땅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요. 어쿠스틱 블랑의 이번 앨범이 그런 치유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음악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끔 하는 앨범이 아닐까 싶습니다.
< 어쿠스틱 블랑 미니 1집 '어쿠스틱 블랑 Pt.1' >
대중성 ★★★☆☆
음악성 ★★★★★
실험성 ★★★★☆
한줄평: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힐링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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