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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의 스포츠에세이)2014년 ACL이 중요한 3가지 이유
2014-03-13 13:47:10 2014-03-13 13:51:14
◇지난 12일 저녁(한국시각) 호주 멜버른 도크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4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G조 조별리그 2차전 전북현대와 멜버른빅토리의 경기에서 전북 이동국(가운데)이 역전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프로축구연맹)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스포츠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들이 있다. "올 시즌이 정말 중요하다"는 시즌 전 전망과 "승부를 쉽게 알 수 없다"는 경기 전 예상이다.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하지 않은 1년이 없고 승패가 쉽게 예상되는 경기도 별로 없다. 누군가 전혀 모르는 종목에 대해 물었을 때 "매우 중요한 한 시즌이 될 것이며 승패를 쉽게 알 수 없는 경기들이 이어질 것"이라는 대꾸만 해도 일단은 넘어갈 수 있다.
 
그럼에도 올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이하 ACL)는 중요하다. 예년보다 더 어려운 경기들이 이어질 것이며 K리그가 재평가받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중국의 광적인 투자에 K리그는 내성을 키워야 하는 해다. '스토리텔링'을 위해 시선을 끄는 이야기들을 써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6월 브라질월드컵 또한 K리그엔 전혀 만만치 않은 상대다.
 
현재까지 흐름은 좋다. 올 시즌 ACL 조별리그 2라운드를 마친 현재 포항스틸러스, 울산현대, 전북현대, FC서울 모두 무패를 달리고 있다.
 
◇중국 '돈 축구'에 내성 길러야
 
최근 중국은 돈으로 축구를 사고 있다. 축구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선에서 축구를 강조하고 있다. 선봉장은 광저우 에버그란데다.
 
헝다 그룹의 쉬자인 구단주가 2009년부터 광저우를 인수해 돈을 쏟아 부었다. 끝내 광저우는 지난해 중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ACL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서 맞붙은 FC서울과 광저우의 선수 연봉 차이는 몇 배에 달했다. 광저우의 외국인 선수 3명(무리퀴, 콘카, 엘케손)의 몸값만 220억 원에 달했다. 이는 K리그 1개 구단 운영비보다 많거나 비슷한 금액으로 추산된다. 광저우의 감독 마르첼로 리피의 연봉도 16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비시즌 기간 K리그 스타들의 중국진출이 흘러나왔다. 잊을만하면 한 명씩 중국행을 선언했다. 데얀, 하대성(이상 서울), 박종우(부산), 케빈, 에닝요, 임유환(이상 전북), 이지남(대구), 손대호(인천) 등 위치나 국내선수 외국인선수 가릴 것 없이 좋은 조건으로 중국행을 택했다.
 
최근 K리그를 둘러싼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중국의 돈 앞에 똑같이 돈으로 맞붙을 수 없는 상황이다. K리그는 지난해 연봉공개를 했고 이후 구단들의 허리띠 졸라매기는 시작됐다. 포항 같은 경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외국인 선수가 없다. 고액 연봉자 선수 1명을 쓰느니 가능성 있는 젊고 몸값 싼 선수들 여러 명을 쓰는 게 낫다는 소리도 일부 구단과 관계자들에게서 들린다.
 
◇지난 2012년 5월 광저우 에버그란드의 지휘봉을 잡은 마르첼로 리피(65·이탈리아) 감독. 그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조국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다섯 차례 이탈리아 리그 우승과 1996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을 차지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장이다. 리피 감독의 연봉은 최소 1000만 유로(약 146억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FC서울과 결승전을 앞두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의 모습. (사진제공=FC서울)
 
몇 년 더 중국의 이런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실력으로 버텨내는 수밖에 없다. 축구는 그나마 공평한 스포츠다. 가장 불완전한 신체인 발로 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ACL에서 K리그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K리그는 포항(2009년 우승), 성남(2010년 우승), 전북(2011년 준우승), 울산(2012년 우승), 서울(2013년 준우승) 등 5년 연속으로 이 대회 결승전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특정 국가 프로팀이 ACL 결승에 5년 연속 진출한 것은 아시아 클럽 대항전이 출범한 1967년 이후 처음이다.
 
어쩌다 돈으로 우승을 살 수는 있어도 매번은 안 된다는 걸 '형님'격인 K리그가 알려줘야 한다.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 제동을 걸어줄 수 있는 리그는 K리그가 유일하다.
 
중국발 자본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 지금 K리그는 향후 최소 2~3년을 내다보고 내성을 키워야 할 단계다. 선수들의 중국행을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은 아직 없다. "결국 축구는 돈이 아닌 조직력으로 작동하는 것"이란 사실을 그라운드에서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시즌 FC서울은 광저우에 우승을 내줬지만 경기를 패하지는 않았다. 1차전 홈에서 1-1로 비겼고 2차전 원정에서 2-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스타 선수와 감독부터 모셔오는 '위에서 아래로' 투자는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이걸 중국에 알려줘야 한다. K리그에게 올 시즌 ACL이 중요한 이유다.
 
◇가장 효율적인 스토리 텔링
 
최근 K리그는 이야기를 만드는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고 있다. 놀 것 많고 즐길 것 많은데 그 중에 왜 하필 축구를 봐야 하느냐는 물음에 답하려는 모습이다. '멀티탭 축구' '철퇴타카' '오케스트라축구' '뉴닥공' 같은 수식어가 구단에 따라 붙는다.
 
이런 가운데 가장 좋은 스토리텔링은 역시나 '대표성'이다. 나라를 대표한다는 이야기는 알아서 수식어가 붙기 마련이다.
 
한국에서 축구는 국가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겠으나 어쨌든 이를 부인할 수는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가대표의 경기에는 '조국의 부름이 들리는가. 뜨거운 환호에 승리로 답하라'라는 걸개가 걸렸다.
 
축구는 집단 간 대표성을 띄는 종목이다. 학교에서도 옆 반과 축구를 하지 농구나 야구를 하진 않았다. 축구 좀 하면 싸움 못해도 동네 노는 형들이 괴롭히지 않았다. 합법적으로 옆 동네를 쓰러트릴 수 있는 '우리 동네 공격수'란 생각이 그들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 얘기는 더 이상 할 필요도 없다.
 
ACL은 긴 호흡으로 열리는 국가 간 대회다. 큰 명제는 클럽축구지만 밑바탕에는 나라간 경쟁이 녹아있다. 실제 올 시즌 ACL은 동아시아(한·중·일·호주)와 서아시아(중동)로 나뉘어 4강까지 치른다. 동아시아 국가 클럽들이 ACL에서 강세를 보이자 규정이 바뀌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에스테그랄(이란)의 현장 분위기를 취재했다. 국내 팬들이나 이란 팬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결국 "국가 간 대결"이라는데 동의했다. 한 이란 아저씨 팬은 이란 국기를 들고 사진 촬영에 응했다. 관중석에는 이란 국기와 태극기가 심심찮게 보였고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온 동네 주민도 볼 수 있었다.
 
결국 대중에게 크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은 대표성을 지닌 대회에서의 결과다. 여자 친구한테 "포항이랑 세레소오사카랑 축구하는데 완전 중요해"라고 하는 것 보다 "한일전 하는데 이번엔 포항이 우리나라 대표지"라고 하는 게 훨씬 잘 먹힌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
 
몇 년 전만해도 월드컵이 K리그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란 분위기가 많았다. 2002년 월드컵 직후만 해도 김남일을 보려 K리그에 관중이 꽉꽉 들어찼다. 하지만 이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2006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이런 분위기는 누그러졌다. 이때부터 대표팀의 주축은 조금씩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로 이동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도 마찬가지였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는 이제까지 대표팀 구성원 중 가장 많은 인원이 해외에서 뛰고 있다. 지난 6일 그리스와 원정 평가전 이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인원은 김신욱(울산), 정성룡(수원), 이근호(상주) 등 6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독일과 잉글랜드로 곧장 날아갔다. 국가대표 축구팀은 여전히 국가를 대표한다. 그런데 그게 곧 K리그를 대표하던 시기는 지났다. "한국 축구의 풀뿌리 K리그"라는 말은 이제 전혀 세련된 표현이 아니다.
 
K리그 개막을 앞두고도 이런 기조는 계속됐다. 사실상 월드컵 D-100일이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지금도 끊임없이 유럽축구는 새벽에 계속되고 있다. 공을 차고 골을 넣는 것은 같지만 해외축구, 국가대표축구와 K리그는 전혀 다른 종목으로 느껴진다. 마치 같은 '빙상'에 속하지만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중심축. 이들이 오는 6월 브라질월드컵을 이끌 주축 선수다. (왼쪽부터)이청용(영국 볼튼), 손흥민(독일 분데스리가), 구자철(독일 마인츠). (사진캡쳐=대한축구협회)
 
월드컵이 끝나면 더 많은 축구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질 것이다. 미디어의 발달은 거시적인 것들을 잡기에 충분하다. 안목 있는 사람들은 한국 축구대표팀의 경기 외에도 전 세계 뛰어난 대표팀들의 경기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곤 "세계 축구의 흐름이 이러이러한데"와 같은 논의가 이어질 게 뻔하다.
 
현실적으로 국내 클럽들 간 경쟁인 K리그가 이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 하면 비난의 화살이 날아온다. 매년 그래왔다. 이 때 다시 중요한 게 ACL이다. "축구에서 이런 종목도 있다"는 촉매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
 
ACL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은 언제든 세계 구석구석으로 날아갈 수 있다. 또 언젠간 국내 무대에서도 볼 수 있는 선수들이다. 최근 FC서울이 영입한 수비수 오스마르(26·스페인)는 지난해 부리람유나이티드(태국) 소속으로 ACL에서 뛰며 태국 최초로 이 대회 8강까지 올려놓은 선수다. 이미 ACL을 통해 아시아 무대에서 기량을 검증 받은 셈이다.
 
축구가 국내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아시아 시장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내야 한다. 꼭 결승까지 올라 아시아의 강자라는 걸 입증해야 할 의무가 K리그에 있다. 매년 계속되는 중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첫 단추도 ACL 성적이다. 월드컵으로 축구가 중심에 섰을 때 ACL이 양념 정도는 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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