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예빈기자] 계속되는 불경기에 취업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라지만 여성들에게는 더 가혹하다. 직장을 구하는 것부터 힘들고, 막상 직장을 구한다고 해도 밀려오는 가사와 육아는 일을 계속 하기 힘들게 한다. 아이를 키우고 나서 재취업은 더욱 힘든 일이다. 여성 대학 진학률은 유례없이 증가했지만, 이들이 사회생활을 해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뉴스토마토는 여성들이 겪고 있는 일자리 문제들에 대해 집중 점검해 본다. [편집자주]
# A(25세)씨는 모든 면에서 소위 말하는 '고스펙'이다. 서울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데다가 토익도 950점을 넘고, 스피킹 점수도 갖췄다. 학점도 4.5만점에 3.9점이다. 대외활동도, 봉사활동도 어느 것하나 빠짐없이 했다. 하지만 면접은 고사하고 서류통과조차 쉽지 않다. 비슷한 스펙의 남자 선배들이 주요 대기업 서류에 연이어 턱턱 붙는 것을 보면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A씨는 "'남자라는 것이 취업 시장에서 가장 큰 스펙'이라는 말을 요즘 들어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취업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취업시장에서 성별은 학벌, 토익 점수, 봉사활동여부보다 때로는 더 결정적인 평가 요소로 작용한다. 여성들에게 서류전형부터 면접까지, 최종합격까지 가는 길은 남성보다 더욱 멀고도 험하다. 힘들게 합격하더라도 고생길이 훤하다. 취직 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직장 생활을 지속하는 것은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현재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수준이 4% 내외로 추정되고 있으며, 추가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크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출산율 저하 등에 따른 노동공급 둔화, 생산성 지체 등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생산 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인 여성 노동력의 활용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대 여성 같은 연령대 남자보다 취업안돼
우리나라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74.3%로 남성의 진학률보다 5.7%포인트 높다. 하지만 지난해 대졸자 취업률은 남성이 60.1%, 여성이 52.1%로 남성이 크게 앞선다. 좋은 일자리도 남성에게 더 열려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이나 공기업 정규직 등 선망 직장에 취업한 여성 대졸자는 18.5%에 불과했지만 남성 대졸자는 29.3%로 여성보다 10.8%포인트 높았다.
구직자 김유진(26세)씨는 "일단 비슷한 스펙의 남자들이랑 서류 통과율 자체가 다른데다 면접에서 물어보는 질문수준도 차이가 난다"며 "면접관들이 남자 지원자들에게는 축구 잘하냐, 취미가 뭐냐 등을 질문했고 내게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세계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고 털어놨다.
최근 취업에 성공한 안진영(26세)씨는 "우리 회사가 그나마 여자를 많이 뽑는 편인데도 연수원에가보니 300명의 동기들 중 여자는 60명 뿐이었다"며 "1차면접에서 2차, 2차에서 최종, 최종에서 합격자 연수까지 단계를 올라갈 수록 여자비율이 더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민가은(26세)씨 역시 "성별이라는 바꿀 수 없는 요소로 차별받을 때는 정말 슬프고 허무하다"며 "취업 시장에서 여자들이 겪는 진입 장벽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것"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입사 전·후로 차별받아
모 기업 관계자는 "학점, 영어 점수 등 객관적인 스펙을 놓고 보면 여자들이 훨씬 나은 경우가 많다"며 "성적 순으로 줄을 세워보면 1등부터 50등까지 대부분 여자인 경우도 꽤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같은 남자가 일시키기도 편하니 월등히 여성 지원자가 뛰어나지 않으면 남성을 뽑게 된다"고 고백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도 "실무 단계에서 암묵적인 할당량이 있는 경우가 많다"며 "실무 면접에 여자가 조금 많이 올라오면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몇 명만 빼고는 다 떨어뜨린다"고 털어놨다.
여자를 뽑지 않기로 유명한 한 국내 대기업의 경우 신입 사원 남녀 성비가 9대 1에 달할 때도 있다.
채창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원은 "채용공고 등에 명시적으로 성별에 따른 차별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각 채용 단계에서 교묘하게 차별하는 관행들이 아직도 많은 대기업에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혼이나 출산 부분에 있어 취업 중단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여성은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며 "연구로 검증 된 부분은 아니지만 기업들은 여성이 초과근무, 휴일근무를 꺼리는 등 기업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렇게 힘들게 채용된 후에도 여자라는 승진 확률이 떨어지는 부서로 배치가 되는 등의 불이익이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되면 중심인력으로 성장할만한 좋은 자리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근무의욕이 떨어지는 등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여성차별 결국 기업 손해
하지만 이러한 여성 차별이 계속된다면 결국 기업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채 선임연구원은 "적재적소에 가장 필요한 사람을 배치하고 활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다"며 "성별에 따른 차별은 특정 업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객관적으로 선택할 수 없게 만들어 매칭상의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임효창 서울여대 부교수는 "이러한 차별은 크게보면 국가 전체의 손실일 수 있다"며 "차별로 인해 능력있는 여성들이 직장에 들어갈 수 없고, 사기가 꺾이게 되는 것은 국가적으로 유능한 인재를 잃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시대가 변하고 있고 진취적으로 일을 해나가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으므로 기업들이 성별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객관적으로 구직자를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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