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밀릴때 대화록 터뜨린 검찰, 이젠 "논란 우려돼 말못해"
박대통령 '공약파기' 여론 들끓자 수사결과 발표로 일거에 국면전환..그땐 논란우려 안됐나
2013-10-11 12:25:23 2013-10-11 12:29:11
[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방이 정국의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는 가운데 여당이 밀릴 때 대화록 중간수사결과 발표로 국면을 전환시킨 검찰이, 이제와서 '논란이 우려돼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노골적인 친새누리, 친박근혜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지난 2일 "대화록이 일절 없다"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해 또 한 번의 NLL 정국을 초래한 검찰은 이후 제기된 각종 의문에 대해서는 말을 바꾸거나, 명확한 설명을 회피한채 입을 다물고 있다.
 
검찰은 애초 수사결과 발표에서 "참여정부에서 정식 이관된 기록물 중엔 회의록이 없다. 일절 없다"면서 "끝까지 여기에 대한 건 다 봤다. 일절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봉하 e지원에서 삭제됐던 걸 복구한 초안 상태의 대화록과 이를 수정한 형태의 최종본 대화록 두 개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의 중간 발표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이 '실종'된 이유를 수사하던 검찰이 무슨 이유에선지 그에 대한 언급은 생략한 채 '삭제'를 부각시켜 발표하자 새누리당은 즉각 "사초 폐기"라고 공세를 시작했다.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사퇴 논란과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 파기 파문으로 여권이 수세에 몰렸던 국면은 단숨에 대화록 정국으로 전환됐다.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은 검찰이 복구했다는 대화록이 초안이라는 점을 들어 내용의 미진한 점들을 보완해 완성한 대화록이 발견된 최종본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검찰의 말이 바뀌기 시작했다. 4일 검찰은 "사라졌다가 복구된 것도 완성본, 발견된 것도 완성본, 국정원 것도 완성본"이라면서 "최종본이라는 개념이 없다. 나름대로 다 최종본"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면서 "굳이 얘기하자면 사라진 것이 더 완성본에 가까운 것"이라며 "자꾸 초본, 초본 할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초본과 완성본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다 완성본이란 판단은 어떻게 한 것인지 등 핵심 이유를 묻는 질문엔 "나중에 말하겠다"며 대답을 피했다.
 
대신 검찰은 "누가 삭제하라고 지시했는지가 중요하냐", "삭제 이유도 수사 범위냐"는 물음에는 "당연하다"고 즉각 반응했다. 초본의 삭제자와 지시자를 처벌하려는 검찰의 수사방향과 속내를 짐작케 하는 태도다.
 
이러한 검찰의 입장엔 이번에 발견된 두 개의 대화록(초안·최종본) 가운데 초안이 완성본에 가깝기 때문에 참여정부에서 이를 삭제했다면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애초 중간 발표에선 초안에 불과했던 복구한 대화록은 검찰의 말바꾸기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은 5일 검찰의 소환 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삭제 지시는 없었으며, 초안을 토대로 최종본을 만들었고 호칭 수정 등의 미미한 차이가 있다고 진술했다.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 등 참여정부 인사들도 9일 기자회견에서 "(기록원에 정식으로 이관된) 청와대 e지원에도 (봉하 e지원에서 발견된) 회의록 초안과 최종본이 존재하는지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며 반격을 펼쳤다.
 
봉하 e지원이 청와대 e지원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므로 원본인 청와대 e지원에도 이번에 검찰이 찾았다는 두 개의 대화록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확인이 필요하다는 요구다.
 
아울러 검찰이 방점을 찍고 있는 '삭제'에 대해선 '표제부' 삭제라고 해명했다.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할 당시 청와대 e지원에 초안과 최종본이 중복됐기에 초안의 '내용'이 아니라 '표제부'만 삭제했다며 표제부가 삭제된 문서는 이관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국정원에서 녹취록을 바탕으로 작성한 초안은 발언자가 뒤섞이거나, 내용이 불분명하고 누락되는 등 보완할 점이 있었다"는 말로 초안과 최종본의 성격 차이를 강조하며 완성본과 비교할 수 있는 초안의 공개를 검찰에 촉구했다.
 
초안을 공개해 이 문서가 문자 그대로 초안인지 여부가 확인되면 완성되지 않은 문서를 이관시킬 필요가 없어 표제부를 삭제했다는 참여정부 측의 설명은 설득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검찰은 10일 "법적 문제도 있다. 거기서 해달라고 해도 해줄 게 아닌 것 같다. 쉬운 것이 아니다. 요구한다고 될 게 아니다"며 초안을 공개할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했다.
 
'초안 삭제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검찰로서는 초안의 가치가 완성본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 원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하게 되기에 공개를 반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지금 괜히 이러쿵 저러쿵 얘기를 해봤자 논란만 일어난다. 논란이 일어나는 건 맞지 않다", "지금 말하면 수사 결과가 나가는 거라서..", "나중에 수사가 다 끝나고 최종 수사 결과 발표할 때 말하겠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공약 파기에 대한 성토 목소리가 높아지던 시점에서 석연찮게 중간 발표를 실시해 대화록 정국의 포문을 연 검찰이 이제와서 "논란만 일어난다. 논란이 이는 건 맞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그렇다면 애초에 대화록 이슈를 터뜨릴때는 논란이 예상되지 않았느냐는 반박이 가능하다.
 
이같은 검찰의 태도는 여권이 비난받던 시기에 대화록 이슈로 국면을 전환시켜 결국 여론의 비난에 몰린 여당에 도움을 주려 '방패막이'를 자임한 것 아니냐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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