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그게 이유라면 취임하지 말았어야 했다
2013-09-23 15:46:18 2013-09-23 15:50:01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거취문제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정작 본인의 입에서 사퇴의사 표현이 나오진 않았지만, 본인 역시 사의설과 관련한 언론보도에 대해 부정하지 않으면서 사퇴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자리라는 것이 그렇듯 앉았으면 일어나는 날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시기와 사유다.
 
외형상으로만 보면 진 장관의 사의표시는 정책의 변화와 정치적인 큰 흐름을 따라가는 듯 무리가 없어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기초연금이 공약 당시와는 달리 진행되고 있고, 그 기초연금 공약 실천의 첨병역할을 맡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약의 변질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매끄러운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65세 이상 모든 국민과 중증장애인에게 월 20만원 이상의 기초연금을 지급한다'는 기초연금을 공약했지만, 오는 26일 보건복지부가 공개할 기초연금 최종안은 지급대상을 소득하위 70~80%로 축소하고 지급액도 소득이나 국민연금 수령액에 따라 차등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진 장관은 그 원안과 수정안의 중심에 있다.
 
변질된 공약을 공식화하기 전에 사의를 표시함으로서 책임소재를 가리는 모습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공약을 보고 판단하고 투표를 한 국민들의 입장에선 여간 불편한 흐름이 아닐 수 없다.
 
먼저 사유부터 부적절하다.
 
공약 수정이 장관직을 내려 놓을 사유라면 진 장관은 애초에 취임부터 하지 말았어야 한다.
 
기초연금의 수정 가능성은 진 장관이 장관으로 취임하기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때부터 제기돼 왔다.
 
당시부터 이미 기초연금을 소득수준과 국민연금 가입여부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수정안이 정부와 새누리당에서 공론화됐고, 이는 이번주 발표될 기초연금 최종안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특히 올 초 진 장관의 인사청문회 발언은 그와 박근혜 정부가 이미 기초연금 공약을 원안대로 지킬수 없는 허위공약임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진 장관은  지난 3월6일 본인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기초연금을 포함해 중증질환 진료비 지원방안 등 복지공약의 정책후퇴를 비판하는 질문에 "대선은 캠페인이다. 선거운동과 정책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둘러댔다.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을 '캠페인' 수준으로 생각한 장관이 이제와서 공약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시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대선공약의 책임을 장관이 지는 것 자체도 부적절하다.
 
기초연금공약은 대선공약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거나 왜 수정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의사표명이 필요하다. 각종 회의를 통해 대통령과 총리에게 정책 진행상황을 수시로 보고해 온 장관이 꼬리잘리듯 하여 마무리 될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공약을 수정하게 된 핵심적인 계기가 재정문제이다. 공약을 설계할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국민들을 설득했다가 이제와서 재정이 부족하다며 변경을 당연시 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쓸 돈도 없으면서 허황된 공약으로 국민들을 속인 셈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까지도 이른바 '증세 없는' 복지공약 재원 마련이 가능함을 역설한 사람이다.
 
진 장관의 사의표시가 자의건 타의건 이를 수용하는 즉시 박 대통령은 그에 합당한 대국민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사퇴의 시점도 매우 부적절하다.
 
수정된 기초연금의 최종안을 사실상 스스로 완성해 놓고 이를 국민들께 발표함과 동시에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은 주무 장관으로서 대단히 무책임한 일이다.
 
달라진 공약은 다른 사람이 해결하라는 뜻이다. 때마침 내년 지방선거에서 진 장관이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시점이다.
 
당장 다음 달부터 박근혜 정부에 대한 첫번째 국정감사가 진행될 예정이고, 기초연금을 포함해서 복지정책과 국가재정문제와 관련된 숱한 법안들이 국회에서 검증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사퇴하는 것은 사고는 본인이 치고 뒷감당은 다른 사람에게 떠 넘기는 꼴이 된다.
 
국민들은 "반드시 지킬 수 있는 것만 공약했다"는 선거철 박근혜 대통령 후보자의 발언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돈도 없는데 빚을 내어 어거지로 공약을 실천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은 진 장관이 사표를 던지고 도망칠 시점이 아니라 대통령과 함께 애초의 공약은 왜 잘못 설계되었는지 통렬히 반성하고 국민들께 머리를 숙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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