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재야'는 제도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전에는 "벼슬하지 않고 민간에 존재한다"고 정의할 정도로 권력과는 거리를 두고 쓴소리 내는 재야에 기반을 둔 연구소들이 우리 주변에도 적지 않습니다. 정부 산하이거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여러 연구소들이 제도권의 정책을 보완해서 풍부하게 만드는 것과 달리 제도권 정책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정책을 감시하고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이들 재야연구소의 주업무입니다. 뉴스토마토는 소수의 목소리로 묻혀있는 이들 재야연구소의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히 새정부 출범 전후로 빚어진 현안과 향후 이슈에 대한 이들의 견해는 귀기울일만 합니다. [편집자]
최근 세법 개정 논쟁을 기점으로 복지국가 이슈가 또 한 차례 도약할 조짐이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해 무상급식으로 보편복지 이슈가 떠올랐다면 이번 세법 개정 문제는 보편증세 이슈에 불을 댕긴 양상이다.
선별복지냐 보편복지냐, 부자증세냐 보편증세냐는 국내 개혁진영의 색깔을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보편증세를 통한 적극적 복지를 주창한다.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복지국가 이슈를 선도적으로 이끌고 있다는데 이 단체의 의의가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2010년 3월15일 '복지국가 제안대회'를 통해 본격적 활동을 개시했다. 출범은 이 보다 앞선 2007년으로, 3년 동안 이론을 수립하고 정책을 개발한 뒤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해 복지이슈를 전면으로 제기,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 단체는 재야단체가 아니'라고 이상구 운영위원장이 농담할 만큼,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현실정치에도 직간접적으로 한발 걸치고 있다. 연구와 교육사업 중심으로 이뤄지는 활동은, 그 대상이 지자체장과 국회의원 등 정치인까지 뻗치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특정당과 상관 없이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의지가 있다면 누구와도 손을 잡는다는 기조다. 이같은 방침 아래 여야 정치인과 보좌관을 대상으로 복지관련 다양한 연구결과와 정책 성공사례를 공유하는 작업을 활발히 펴고 있다. 국회 내 다양한 복지 연구모임은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다.
사진제공: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정책위원 80여명 등 보건, 국내 내로라하는 보건, 복지 전문가 9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연구분야는 의료, 교육, 노동, 정치 등으로 '건강보험 하나로' 캠페인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복지정책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정치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시각 때문에 비례대표 의원은 전체 3분의 1 수준으로 늘리자는 운동도 같이 펴고 있다. 부분적으로 정책을 고치는 수준 말고 나라 전체 시스템을 복지국가 모델로 바꿔야 한다는 게 이 단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내용이다.
복지이슈를 천착하는 단체는 국내 여럿 있지만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보편증세를 적극적으로 주장한다는 점에서 여타 단체와 차이가 두드러진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8일 발표한 세법 개정안은 이런 차이를 부각시켰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당시 민주당의 세금폭탄론을 강력히 비판하고 공제 자체를 축소한 정부의 세법 개정안은 그 방향이 옳다고 손을 들었다. 이 단체가 궁극적으로 주장한 것은 '사회복지세'를 신설하자는 내용으로, 이는 민주당을 위시한 야권이 소득세와 법인세 세율을 높이자고 주장한 것과 명백히 다른 목소리다.
부자증세를 한 차원 뛰어넘은 이런 주장은 본질은 재정운용에 있다는 점과 증세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한다는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는 목소리로 이어지며 한국사회에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다.
사진제공: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한번 복지를 화두로 한 정책선거를 이끌기 위해 진력 중이다. 이 단체가 대표적 브랜드로 내세우는 '건강보험 하나로'와 '증세 운동'이 그 중심축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이상구 운영위원장은 "과거 군부독재시절의 경제정책은 그 공과와 별개로 지금 시대에서 의미가 퇴색했다"며 "대한민국 차기모델은 복지국가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내가 세금을 내야, 당신도 능력만큼 내라고 할 수 있다"
"토인비가 이야기했습니다. 역사는 끌고 가지 않으면 끌려간다고. 시대적 과제인 복지를 따라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상구 운영위원장(아래 사진)은 한국형 복지국가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위한 토대는 부자증세와 보편증세를 동시에 관철시키는 방법이 정공법이라고 밝혔다.
이 운영위원장은 소득이 있는 사람 누구나 아주 적은 액수라도 납세하는데 참여해야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증세를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며 이렇게 말했다. 또 이런 정공법을 택하는 것이 폭넓게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 운영위원장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상근연구원으로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에서 각각 대통령비서실, 보건복지부 등에서 일하며 정책을 직접 다룬 이력이 있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진제공: 이상구 운영위원장
- 최근 정부가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직후 증세에 대한 국민 반발이 만만찮았다. 이런 납세자 반발은 어떻게 봐야 할까.
▲ 부자증세를 한다고 해도 국민은 세금 인상 자체에 동의를 쉽게 안 한다. 왜냐? 정부를 못 믿으니까.
문제는 국민이 자기가 낸 세금으로 복지 혜택을 제대로 받아본 적 없다는 데 있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았는데 항만 보수하고 도로 건설하고, 그러다 보니 정부가 이걸 어디에 쓸지 모른다는 불신이 있다. 이걸 또 토목 건설에 써서 날리는 거 아닌가 한다. 재정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것이다.
세금을 내고 복지혜택이 돌아오면 국민도 알게 될 것이다. 보편증세를 조금씩 맛보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무상급식 자체는 아주 작은 정책이지만 체험이 되니까 아무도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말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 증세에 대한 부담을 부자가 져야지 왜 중산층이 져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다. 보편증세가 답인가 부자증세가 답인가.
▲ 부자증세로는 마련할 수 있는 재원에 한계가 있다. 또 내가 세금을 어느 정도 부담해야 증세에 반발하는 부자들에 대해서도 좀 더 당당히 말할 명분이 생긴다. 나도 내는 만큼 당신도 능력만큼 내라고 요구할 수 있다.
세금으로 나라 재원을 조성해도 복지정책에 안 쓸 가능성 있는데 보편증세는 이런 문제를 막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자료제공: 복지국가소사이어티
- 증세라면 어디서부터 풀 수 있는가.
▲ 여러가지 안이 있고 개인적으로 적자재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우리나라 재정건전성이 높은 편이다. 국가부채가 양호한 편이니까 적자재정을 통해 복지정책을 먼저 선보이고 국민이 동의하면 증세하고 세수를 확보해서 복지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그외 사회복지세를 신설해 세율을 차츰 높이는 식으로 증세를 복지와 연동하는 방법이 있고 다년회계를 도입하는 방법도 있다. 국내 회계연도는 1년으로 잡는데 스웨덴처럼 3년 회계, 5년 회계로 잡아서 처음엔 복지정책을 펴고 뒤에선 세수를 좀 더 높이는 식으로 할 수 있다.
우린 지금 단계에서 사회복지세 도입이 유용하다고 본 것이다. 법안도 여럿 발의된 상태다. 갑자기 높은 세율을 매겨서 걷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이라도 내는 게 중요하고 당장은 1%, 2%라도 그걸 점차 확대시켜야 한다.
- 세율을 인상하는 방법도 있는데 왜 목적세 도입인가.
▲ 국민 불신을 불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회복지세는 복지분야에만 쓸 수 있다. 이렇게하면 정부가 엉뚱한데 세금을 쓴다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
박근혜정부의 세법개정안은 상위 38%를 더 내게 하자는 건데 이 안으로 만들어지는 세수는 많지 않다. 이 정도 갖고 어떻게 정부가 약속한 복지정책을 시행할 수 있겠나.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감면 부분을 손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다수 국민에게 혜택이 가도록 하려면 보편증세가 중요하다. 소득이 있으면 일단 세금을 내게 하자는 것이다.
지금 국민 절반은 세금을 하나도 안내는데 그 분들도 500원, 1000원씩 내게 하고 없는 집, 있는 집 차등하지 않는 복지혜택을 주는 게 필요하다.
- 국민여론이 정말 복지를 원하는가 하는 점도 문제 아니겠나.
▲ 지난번 대선에서 3000만명이 투표했고 이 가운데 52%는 박근혜의 점진적 복지에 표를 줬다. 나머지 48%는 이보다 급속한 복지에 표를 준 것이다.
대선후보 공약을 봐라. 어느 쪽을 보더라도 메인 공약은 복지다. 적어도 2007년 선거에 비해 2012년 선거에선 4대강 공사나 부자 감세 같은 이슈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게 기초노령연금, 건강보험 같은 복지이슈다.
굳이 설문조사 하지 않아도 지난 대선이 국민여론을 반영했다고 본다.
- 이번 세법개정을 기점으로 보수진영에선 다시 복지정책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복지와 성장이 상충될 거란 시각이나 복지로 인한 부작용을 부각하는 목소리를 어떻게 봐야 할까.
▲ OECD 국가는 평균적으로 재정의 50% 정도를 복지사업에 쓴다. 우리는 25%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복지병이란 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OECD 국가의 평균이라도 복지에 지출하고 나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지금은 복지가 너무 적어서 생기는 문제가 많다. 당장 대학 나와도 갈 데가 없고 일자리가 없으니 자영업자만 느는 구조다.
그 사람들 이야기대로 성장 중심의 국가정책을 지난 정부 때 해봤지만 일자리, 경제성장률, 내수시장 어느 것 하나 늘어난 게 없다. 경제규모는 커져도 대기업만 이득을 보는 이런 구조적 모순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건가?
지난 30여년 토목건설 중심의 경제를 운용했다. 민주정부 10여년이라고 해도 경제정책만큼은 복지가 중심은 아니었다. 그렇게 40년 해봤으니 다른 것도 한번 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이즈 이야기 하지만 프랑스나 독일 사이즈가 작은가? 우리가 그 정도 복지만 해도 감지덕지다. 독일식 복지는 프랑스와 다르고, 프랑스식 복지는 또 스웨덴과 다르다. 나라마다 산업구조나 문화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북유럽식 복지를 벤치마킹 할 수 있겠지만 똑같이 만들 순 없다. 우린 한국식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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