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그놈의 검증 때문에 이지경이 됐는데 그분들이 또 검증을 하신다니 걱정이네요."

일선 공무원들의 입에서 험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장차관 인사에서 허술한 검증으로 곳곳에서 말에서 떨어질 후보자를 쏟아낸 청와대가 이번에는 다음 순번인 1급인사에 앞서 대상자에 대한 검증때문에 시간을 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데체 뭘 얼마나 검증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검증기간이 길어지면서 부처에 따라 최대 2주 이상 고위직이 공석으로 비워진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공직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1급은 고위공무원 중 가장 높은 등급인 '가'급 고위직을 말하는데요. 부처 실장급이나 차관보가 바로 이 1급 고위직입니다.
1급 공무원은 추후 정무직인 차관이나 장관까지 올라설 수 있는 후보군의 자리이기 때문에 청와대의 검증을 거치는데요. 이번에는 유독 그 검증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새 정부 들어 가뜩이나 장관들이 늦게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실무 책임자인 1급 고위직이 결정되지 않고 있으니 전체적인 업무가 마비상태까지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실제로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했던 옛말은 절대 틀리지 않았습니다. 인사가 안되니 만사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핵심 정부부처들이 대거 이주해 있는 정부세종청사의 모습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기획재정부의 경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대통령 업무보고까지 끝냈지만 아직 본격적인 업무진행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1급 고위직 6개 자리 중 4자리나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그것도 예산실장, 세제실장 등 핵심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실무책임자가 결정이 되지 못했습니다.
당장 다음주에 추가경정예산안의 편성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주무실장 대신 차관과 국장들이 국회를 드나들고 있습니다.
이런 사정은 국토교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토교통부는 1급 실국장들이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올해 부동산 대책까지 벌써 발표해버렸습니다. 뒷수습을 해야할 사람들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은 1급이나 국장급인사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사치'에 가깝습니다.
위원장과 장관도 아직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죠. 모두 그 파란지붕 아래의 분들이 검증을 잘못한 덕에 벌어진 일입니다.
과장들의 마음은 더 조급합니다. 전체적으로 스타트만 늦어졌지 일을 마무리 해야할 시점은 예년과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합니다.
윗자리가 정해져야 과장이나 사무관들도 자리를 옮겨서 새로운 자리에서 올해 업무를 시작할텐데 윗자리가 비어있으니 새 업무를 언제 시작하게 될지, 지금 업무를 언제까지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꼬인 인사는 업무 외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공무원들도 일반회사 직원들처럼 봄이면 단합대회 겸 체육대회를 하는데요. 세종청사에 있는 부처에서는 아직 체육대회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통 부처 체육대회는 1급 간부들을 중심으로 실국별 대항전으로 진행되는데, 리더들이 공석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추경이다 뭐다 업무일정도 빠듯해져서 모여서 운동연습을 할 시간도 없고, 세종시에서는 행사를 치를 운동장도 마땅한게 없다고 합니다.
이쯤되면 파란지붕 아래 그분들에게 돌을 던지고 싶은 공무원들이 한둘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러다 복사기에 종이가 걸리는 것까지 인사때문이라는 핑계가 나오지나 않을 지.
만사의 책임을 떠안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인사를 해결해야할 것 같습니다. "장관검증이나 잘하지"라는 핀잔을 듣지 않으려면 말이죠.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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