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시장 부진으로 벤처캐피탈업계가 역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있다. 투자회수(엑시트) 수단인 기업공개(IPO)가 부진해 실적 개선에 어려움이 많다"
현재 국내 벤처캐피탈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한 업계 관계자의 답변이다. 일반적으로 창투사 등 벤처캐피탈은 IPO나 기업 인수·합병(M&A)를 통해 투자한 기업을 비싸게 팔아야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의 재정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의 재정절벽 리스크와 중국의 저성장 등 대외 여건 악화로 코스닥시장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상장을 미루는 벤처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곧 벤처캐피탈의 수익 악화로 이어져 벤처기업에 대한 벤처캐피탈의 투자 여력을 감소시킨다. 나아가 벤처기업에 대한 벤처캐피탈의 투자 위축을 불러오는 악순환에 빠지는 결과를 만든다.
이 때문에 벤처캐피탈업계는 다양한 엑시트에 대해 고민하고, 정부의 정책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창투사 등 벤처캐피탈은 벤처기업에 투자해 IPO나 기업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한다.
문제는 벤처캐피탈의 여러 엑시트 방안 중에 IPO에 대한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IPO가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넘는 상황에서 요즘처럼 코스닥시장이 부진할 경우 IPO를 연기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고, 이는 곧 벤처캐피탈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지난 10월 벤처캐피탈협회가 발표한 '벤처캐피탈 최근동향 및 활성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IPO 건수는 2010년을 기점으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2010년 76건이던 IPO 건수는 2011년 63건으로 17.1% 줄었다. 올해 8월까지는 13건으로 전년대비 5분의1 수준으로 축소됐다. 벤처붐이 한창이던 2002년과 비교하면 12분의1로 급감했다.
벤처기업이 IPO에 나서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도 벤처캐피탈의 수익성 악화에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IPO에 걸리는 시간은 지난 2005년 9.0년에서 ▲2007년 10.7년 ▲2010년 12.2년 ▲2011년 14.3년으로 매년 늘고 있다.
반면, 벤처조합인 펀드의 존속기간은 평균 7년에 불과해 IPO를 통한 유동화 가능성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신생 벤처기업에 투자를 해도 조합 만기가 먼저 도래해 벤처캐피탈은 어쩔 수 없이 투자기업의 구주를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한 벤처캐피탈업계 관계자는 "창투사 등 벤처캐피탈은 IPO를 통해 투자한 기업을 비싸게 팔아야 수익이 나는 구조"라며 "올해 상장 요건이 강화된데다 코스닥시장 침체로 밸류에이션이 안나와 상장을 미루는 기업들이 늘면서 수익이 발생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벤처캐피탈협회 관계자는 "여러 벤처캐피탈이 벤처기업을 위주로 투자를 하고 있다"며 "요즘처럼 코스닥시장이 최악인 상황에서 가장 큰 투자회수 수단인 IPO의 부진으로 벤처캐피탈의 수익이 작년보다 나빠졌다"고 말했다.
◇VC의 투자금 회수 어려움..'세컨더리펀드'로 숨통 트여야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체계적인 투자금 회수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IPO 이전 단계의 투자금 회수방안인 '세컨더리펀드'가 주목받고 있다.
세컨더리펀드란 사모펀드(PEF)나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회사의 지분 중 매각하기 어려운 주식만 골라 싼값에 인수한 뒤 시간이 지나 지분의 가치가 오르면 팔아서 차익을 얻는 펀드를 말한다.
기존의 펀드를 운용하는 벤처캐피탈은 IPO를 기다리지 않고 세컨더리펀드를 통해 엑시트를 할 수 있어 유동성 확보가 가능하다. 세컨더리펀드 운용사 역시 검증된 기업 지분을 인수함으로써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투자를 받는 벤처기업에게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탈이 구주를 다른 벤처캐피탈에 매각할 경우 별도의 투자를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벤처캐피탈은 투자기업이 IPO에 실패할 경우 상환권리를 행사한다.
한 벤처캐피탈 업계 관계자는 "IPO나 M&A를 통한 투자금 회수가 힘든 요즘같은 시기엔 세컨더리펀드를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재 세컨더리펀드 규모로는 벤처캐피탈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지난달 30일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재 운용중인 세컨더리펀드는 동양인베스트먼트, 아이엠엠인베스트먼트, 알바트로스인베스트먼트, 한국벤처투자 등 총 16개 4502억원에 불과하다. 국내 벤처펀드가 연간 9조원 규모인 것과 비교하면 5% 수준이다. 특히, 벤처캐피탈 선진국인 미국이 10~15%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세컨더리펀드 규모가 최소 10% 이상 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자금 출자가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벤처캐피탈업계 관계자는 "세컨더리펀드는 벤처캐피탈의 긴급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주는 제도"라며 "연간 펀드 규모인 9조원의 10%인 9000억원은 조성돼야 벤처캐피탈이 초기 벤처기업에 투자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탈협회 관계자 역시 "우량기업의 인수를 대상으로 하는 세컨더리펀드를 조성할 수 있도록 현재 정책자금 출자금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초창기인 세컨더리펀드 시장이 확대될 수 있도록 기존의 펀드 운용사와 세컨더리 펀드 운용사를 연결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 M&A 활성화에 '힘' 쓴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청은 세컨더리펀드보다는 M&A 활성화에 정책을 집중한다는 입장이다. 세컨더리펀드는 사모펀드(PEF) 형태로 운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벤처기업간 M&A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세컨더리펀드 자체는 민간에서도 PEF 형태로 작동하고 있다"며 "외국에 비해 제일 안 되는 부분인 M&A에 역점을 두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M&A 거래금액 비중은 5.4%로 영국(17.9%), 호주(17.2%), 미국(11.4%)과 비교해 크게 저조한 실정이다.
이는 오너십 중심의 지배구조 문화와 M&A 시장에서의 불공정 행위가 만연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는 오너가 기업을 설립해 경영하면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는 기업문화이지만, 외국의 경우엔 회사를 설립해 다른 곳에 파는 기업문화가 일반적이다.
또한 국내에서는 정당한 M&A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불합리한 거래 행위가 성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금력과 정보가 부족한 벤처기업들이 M&A에 나서기 불리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소기업청은 친 M&A 환경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먼저 기존에 해왔던 M&A 인식 제고사업을 꾸준히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앞서 중소기업청은 M&A 지원 센터 가운데 하나인 중소기업진흥공단을 통해 M&A 관련 교육을 꾸준히 해왔다.
또한 기술혁신형 벤처기업이 M&A를 할 경우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진행하고 있다.
이병권 중소기업청 벤처투자과 과장은 "자본시장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해 실증 분석을 한 결과, 중소형 규모의 벤처기업이 M&A를 할 경우 성장 효과가 높아 세수가 오히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조세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M&A 세제 혜택 관련 협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내년에는 중소기업청의 예산 가운데 4억여원을 투입해 M&A 지원사업에 대한 투자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중소기업청은 올해부터 '엠엔에이 인포마켓(M&A info-Market)'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 M&A 지원센터 중심에서 벗어나 중소·벤처 M&A 전문 중개기관을 중심으로 매물 DB를 구축하고, 중개기관의 자율거래를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