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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외로움으로 공유한 `소외`..삐걱대는 뚝심
극단 마찰, 김철승의 신작 <너의 외로움은 늘 작다>
2012-11-18 16:57:01 2012-11-18 16:59:02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이즈막의 연극 연출가들에게서 두 가지 양상이 읽힌다. 하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으로써 극을 만드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명제를 제시하고 다양한 표현 양식을 통해 그 속살을 체험하게 하는 유형이다. 극단 마찰의 연출가 김철승은 후자다.
 
극단 마찰의 연극 <너의 외로움은 늘 작다>는 제목으로 명제를 제시하고 공연에서는 '너'와 '나'의 외로움의 크기를 비교함으로써 주어진 명제를 경험하게 한다. 4명의 등장인물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외로움을 결국 소외시킨다. 외로움의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않고 이런저런 형태로 변질된다.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품지 못하기에 너의 외로움은 늘 작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연출가의 생각이다.
 
무대에 오른 한 50대 남자는 외로움으로부터 빠져나와 애써 담담해졌으며, 30대 남자는 외로워지는 것이 두려워 현실에서 도망치고 만다. 30대 여자는 외로움을 견디며 누군가를 끝없이 기다리지만 곧 확신을 잃게 되고, 20대 여자는 외로움을 분노로 치환해버린다. 각각의 인물에게는 퇴직, 연애, 짝사랑 등 다양한 배경이 있으나 모든 구체적인 정황들은 극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니다. 극은 다양한 인물을 거쳐 하나의 소실점, 즉 외로움을 회피하는 것으로 수렴된다.
 
짐작했겠지만 극단 마찰의 공연은 내러티브가 분명하지 않다. 대본보다는 배우의 몸에서 빚어진 즉흥성이 극의 중심이다. 공연을 만드는 과정도 독특하다. 마치 즉흥 연기 워크숍처럼 리허설을 진행하다 때가 되면 무대에 올리는 식이다. 즉흥의 폐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연출가가 무대에 올라 배우들에게 직접 디렉팅을 하기도 한다. 구성원들이 함께 만든 기본 텍스트가 있긴 하지만 공연 때마다 매번 즉흥으로 텍스트의 내용을 취사선택하기에 공연마다 구체적 양상은 각기 다 다르다.
 
텍스트와 배우의 몸은 기표와 기의 관계로도 설명될 수 있다. '모든 것의 끝은 망각입니다', '나는 너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 '온정과 격려의 눈빛이 필요합니다' 같은 단편적인 말들이 변형된 외로움의 기표라면, 이들이 보여주는 존재의 상태가 변형된 외로움의 기의인 셈이다.
 
외로움에 대한 '의도적 현실 부정'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해 나가는가가 관극의 포인트다. 결론보다 과정과 경험이 중요한 셈이다. 배우들이 관객석에 앉아 있다가 등장하거나 극중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등의 설정이 극 이해의 힌트가 될 수 있다. '너'라는 대명사는 배우 개인에 머물지 않고 관객으로까지 확장되는데, 이로써 배우의 상태는 관객에게까지 전이된다.
 
LIG레지던스 작가로 선정된 연출가는 이번 작품에서 설치미술가, 영상작가와 협업했다. 무대는 우주 혹은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해와 달을 떠올리게 하는 커다란 두 개의 구, 구름 모양의 장치로 유머러스하게 빚어낸 하늘, 하늘 위에 위치하는 라디오 방송국, 놀이터의 정글짐을 연상시키는 구조물 등 무대에는 관객의 상상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즐비하다. 여기에다 5대의 모니터가 무대 곳곳에 다양한 각도로 놓여 있다.
 
무대의 여러가지 요소들은 배우의 연기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달로 보이는 구 하나가 지상 가까이에 떨어지면서 극이 시작하는데 이로써 무대는 외로움이 지배하는 세계가 된다. 모니터에는 영상작가가 미리 작업해둔 영상과 무대 위 현재 벌어지는 일을 담은 라이브 영상, 두 가지가 투사된다. 영상작가가 어두운 밤 거리를 거꾸로 이동하며 찍은 영상은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보게 하는 실마리로 작용하고, 배우 각각의 모습을 담은 라이브 영상은 외로움을 견디는 각각의 양상을 극대화하는 도구가 된다.
  
배우와 무대의 각 요소를 통해 어떤 상태를 경험하게 하는 이 극에서는 한스 티스 레만이 말한 '재현보다는 현전이, 소통보다는 공유의 경험이 중요한' 포스트드라마적 연극의 면모가 엿보인다. 다양한 소재와 공간을 재료로 삼아 국내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연극적 실험을 감행하는 극단 마찰의 뚝심이 이번 공연에서도 빛난다.
 
아쉬운 점은 기자가 본 16일자 공연의 경우, 충분한 리허설을 거치지 않은 듯한 인상을 풍겼다는 것이다. 즉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보기에는 극이 지나치게 자주 삐걱댔다. 극이 자주 멈칫거리는 순간, 관객의 경험도 일시정지한다. 연출가의 디렉팅도 같은 맥락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무대에서 표현되었어야 할 상당부분이 연출가의 멘트에 기대어 표현되었기에 공연은 약간은 설명적인 느낌을 풍겼다.
 
연출 김철승, 무대감독 안승민, 영상 강수연, 설치미술 이상홍, 피아노.작곡 이상욱, 배우 김인권, 문일수, 유은지, 정슬기, 22~24일 LIG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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