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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여름밤 '최고의 사치' 야외 오페라 <라보엠>
역동적 연기, 다채로운 무대 연출로 관객을 사로잡다
2012-09-02 18:04:02 2012-09-02 19:49:36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소나무숲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늘이 어둑해지면서 주위도 차차 고요해진다. 태풍이 지나간 후 멋과 낭만이 정점에 달한 늦여름 밤, 야외오페라 <라보엠>이 상연되는 연세대 노천극장을 찾았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야외 오페라야말로 여름밤 최고의 문화적인 사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가족이나 연인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아 노천극장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19세기 파리, 보헤미안의 삶에 빠져들 준비를 한다. 
 
야외의 큰 공간에서 수천 명이 한 공간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다. 지붕 없이 열려 있는 하늘 아래 관객들이 뿜어내는 집중력이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냈는데, 국내에서는 좀처럼 겪기 힘든 경험이었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은 1830년대 파리 뒷골목을 배경으로 가난한 시인 로돌포와 아름답고 병약한 여인 미미의 사랑 이야기다. 다소 진부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관객의 감각과 감성을 다각도로 건드리는 독특한 매력 때문이다.
 
<라보엠>의 많은 곡들은 마치 영화에서의 교차편집처럼 하나의 곡 안에 두 가지의 선율을 진행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두 개 이상의 폭 넓은 선율들이 서로 다른 리듬을 타고 흐르는 셈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플롯도 두 갈래로 뻗어나간다. 주된 플롯인 로돌포와 미미의 슬픈 사랑이야기 외에 마르첼로와 무제타의 변덕스런 사랑이야기가 병렬적으로 배치되면서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프랑스의 오랑주 프로덕션 시스템을 그대로 들여온 이번 공연에서는 다채로움이 더욱 배가됐다. 반 아레나형 무대 뒤편을 둘러싼 커다란 스크린에는 눈 내리는 다락방의 창 밖 풍경, 흥겨운 라틴거리, 앙상한 나무들로 가득한 거리 등이 투사되면서 장소의 변화를 시원스럽게 표현했다. 
 
또 등·퇴장로로 활용되는 몇몇 이동식 문은 각 막마다 분위기에 맞춰 적절히 옮겨져 다양한 공간과 동선을 창출했으며 음악과 플롯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를 보였다.
 
가수들이 오페라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선입견을 불식시킬 정도로 활발하게 움직이며 연기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전혀 쓰지 않아 가수들은 더욱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오페라의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모습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시인(로돌포), 화가(마르첼로), 철학자(꼴리네), 음악가(쇼나르) 등 캐릭터별 개성도 뚜렷이 살아났다.
 
'내 이름은 미미'를 부르는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목소리는 명불허전이었고, 로돌포 역의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는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력까지 갖춘 탁월한 오페라 가수임을 여러 아리아를 통해 증명했다. 한 마디로 한여름밤의 사치라 부르기에 부족함 없는 무대였다.
 
서울시향과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조화로운 연주까지 어우러져 무대는 공연 내내 풍요로웠다. 태풍으로 인한 순연과 비싼 티켓가격 논란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국내 최초로 야외원형 극장에서 펼쳐진 오페라 <라보엠>은 오페라 팬들의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했다. 
  
연출 나딘 뒤포, 지휘 정명훈,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소프라노 라우라 죠르다노,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 테너 마르코 카리아, 바리톤 토비 스테포드 알렌, 베이스 비탈리 코발료프, 베이스 임승종, 서울시립교향악단, 수원시립합창단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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