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곽보연·염현석기자] 조선업 불황에 따른 여파가 장기화되면서 대기업 납품이 급감하자 코너에 몰린 중소 조선업체들이 '해양레저' 산업으로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호남권을 대표하는 대불국가산업단지 내 중소 조선업체들은 최근 업계에 불어닥친 불황에 맞서 해양레저산업과 해양플랜트 등 사업다각화에 두 팔을 걷고 나섰다. 대기업 납품 물량이 급감한 현 상황에 비춰볼 때,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유일한 '구명 보트'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승산이 뚜렷하지 않은 사업이다. 해외 시장의 높은 벽과 내수시장 부재 때문이다. 정부는 해양레저 산업의 '청사진'만 제시했지 이렇다할 지원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특히 조선업종 불황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후죽순으로 해양레저산업 관련 업체가 늘어나며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공급과잉 조짐이 나타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 전경. 대불산단은 입주업체의 73%가 선박 관련업체로 이뤄져 있다.
◇생존 위해 몸부림치는 중소 조선관련업체들
"대불산단이 죽어뿌리면 목포도 다 망하제. 목포는 대불이 먹여살리는 거여."
목포에서 대불단지로 들어가는 길에 만난 택시 기사는 대불산업단지가 목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불산단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약 1만4000여명 정도다. 이들 대부분이 통근버스를 이용해 목포에서 영암군 대불산단까지 출퇴근 하고 있다. 실제로 대불산단은 목포 경제를 지탱하는 주축 중의 하나다.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위치한 대불단지의 가동업체 265개사 중 조선해양기자재 업체는 193개사로 73%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형조선업체들은 금융위기와 유럽재정위기 이후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방향을 틀고 있지만 대부분의 중소형 업체들에게는 먼나라 얘기다.
이들에게도 실낱같은 희망은 있다. 세계 상선시장과 맞먹는 규모의 해양레저산업이 바로 그것. 그 중에서도 주문생산에 의한 제작으로 이루어지는 요트 시장은 조선관련기자재 제조 업체로서는 유리한 분야다. 대형조선업체의 수주실적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밖에 없었지만 해양레저산업 진출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겠다는 심산이다.
산업단지공단 대불지사 관계자는 "해양레저 시장은 상선시장과 맞먹는 대형시장이 형성돼 있어 업체들이 뛰어들고 있다"면서 "레저 선박을 만들때 선박부품을 만들던 기존의 설비를 이용하면 되기 때문에 설비투자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는 것도 업체들이 매력을 느끼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올 상반기 전세계 요트시장 규모는 370억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같은 기간 상선시장(347억달러)을 능가하는 규모다. 실제로 대불산단에 입주한 조선기자재업체 CEO 열명 중 여덟명이 사업다각화에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단지공사 대불지사가 추진하는 미니클러스터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업체는 총 111개다. 해양레저산업 및 에너지 · 플랜트 산업에 전체의 절반 이상인 65개 , 해양레저산업에는 29개의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다각화를 꾀하는 업체의 상당수가 해양레저산업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선박용 파이프를 만드는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이 업체도 최근 해양레저선박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업체의 적극적인 의지에 비해 미적지근한 정부
업계 뿐 아니라 정부 역시 해양레저산업육성의 필요성은 절감하고 있다. 반면 업계의 적극적인 의지에 비해 정부 지원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진입하려는 업체들이 생겨나고 있어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과당경쟁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2009년 해양레저산업을 신성장동력사업으로 지정하고 오는 2020 년까지 세계 시장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해양레저장비산업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국토해양부는 '마리나법'을 제정, 해양레저활동 및 산업단지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관계자들은 정부차원에서 내수시장 형성을 위한 지원이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조선강국이라는 이미지는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해외시장에서는 레저선박을 만들어본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내수시장 활성화가 제일 시급한 상황이다.
"업계와 정부가 자꾸 엇박자로 나가고 있습니다. 요트산업을 키워주겠다며 장밋빛 전망만 쏟아놓고는 구체적인 대안이나 정책도 없고 오히려 내수시장을 위축시키고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 해양레저선박의 99%는 값싼 일본의 중고선박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일본 중고선박 수입을 위해서 정부가 오히려 규제를 풀어주려하는 등 키워주지는 못할망정 내수시장을 억누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낮게는 5억원대부터 몇십억원까지 호가하는 해양레저선박산업을 정부 차원에서 대놓고 지원하는 것도 어렵다. '요트'는 전통적으로 과소비와 사치품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어 정부는 해양레저시장에 대해 확신을 하면서도 섣불리 발벗고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최근 조선업 침체로 중소선박관련 업체들이 해양레저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사진은 S 업체가 제작중인 레저용 요트.
◇높기만 한 해외시장의 '벽'
불황 속에서도 해양레저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우리업체들에게 해외시장 또한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세계 해양레저시장에서 한국의 입지는 자동차산업에서의 모잠비크쯤 될 거에요. 그만큼 불모지란 얘깁니다"
5~6년 전부터 레저선박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는 S업체 관계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인지도가 없다보니 해외판로개척과 마케팅 등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다. 대불산단의 대부분의 업체들은 해외세일즈팀 같은 체계적인 시스템 없이 업체의 사장이나 대표가 직접 해외 바이어를 찾아다니는 식의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다.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인 7년전 레저선박 분야로 사업다각화를 도모한 P중공업은 대불산단내에서 해양레저선박업계의 선두주자다. 연구개발에 꾸준히 투자한 결과 레저선박분야에서 전체 매출의 30%를 올리고 있다. 7년전에는 다들 미쳤다고 했다.
국내업체로서는 해외시장에서 그나마 선방하고 있는 P중공업조차 낮은 인지도가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요트는 대개 주문자의 발주에 의해 건조가 시작된다. 이러한 수주 실적을 바탕으로 바이어들은 업체의 기술력과 품질을 가늠하고 다시 발주한다. 발주를 받으려면 먼저 '실적'이 우선되어야한다는 얘기다. 내수시장에서 실적을 쌓아가야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국내 해양레저시장 자체가 없다보니 요트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디자인과 인테리어 기술을 가진 인력도 찾기 힘들다. 대부분의 국내 업체들이 이탈리아에서 디자인과 인테리어의 외형저작권을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중소업체들에게는 디자인 수입비용과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는 사실상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P중공업이 7년동안 약 100억원 규모의 R&D 비용을 투자해온 반면, 자금력이 미약한 중소업체에게 기술개발 비용은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또 다시 자금압박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비관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보면 선진국은 대체로 해양강국" 이라면서 "해양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필수산업인 해양레저산업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이 아니라, 시장의 성장가능성을 보고 내수시장 활성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끝>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