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대구·구미, 대기업 '외줄' 타다 '동반추락'
(특별기획-산업현장을가다!)④대구·구미 산업단지
2012-08-23 16:15:02 2012-08-24 15:13:31
[뉴스토마토 황민규·곽보연·염현석기자] 20일 경상북도 대구염색산업단지의 한 공장.
 
녹슨 기계들이 쉴새 없이 뿜어대는 증기로 실내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작업장에 너댓명의 직원이 염색된 천을 옮겨 나르고 있었다.
 
"대구 염색업계는 곧 무너질 것 같습니다. 이익창출이 안되는데 무슨 수로 버티겠습니까. 아무리 한때 대구경제를 이끌었던 게 섬유업이라 해도 수지가 안 맞는데…"
 
말을 채 잇지 못하고 긴 한숨을 내쉰 박광열 무길염공 대표이사. 1999년 대구염색산업단지에 처음 입주한 무길염공은 단지 내에서도 나름 규모가 큰 중소업체로, ‘나염’과 ‘감량’ 공정에 특화된 기업이다.
 
한눈에 봐도 노동 강도가 녹록치 않아 보였지만, 대다수 근로자들은 40~60대 연령층으로 구성돼 있다. 젊은 일손이 모자란 탓이다.
 
박 대표는 "원래 염색단지에서 가장 컸던 게 제직 업종이었는데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를 좇아 대기업 생산기지가 너도나도 중국으로 이동했다"면서 "우리나라 공장은 거의 다 죽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대구의 뿌리산업인 '섬유'는 부산의 '신발'과 함께 70년대 경공업을 이끌었던 산업화의 일등공신이다. 화려했던 전성기는 녹슨 기계만큼이나 이제 옛말이 됐다.
 
물론 이는 비단 섬유산업만의 얘기가 아니다. 노동 경쟁력에 의존했던 제조업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제때 중공업으로 전환치 못하면서 산업기반은 극히 쇠약해졌고, 이는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졌다. 생산기반을 잃어버린 소비도시의 얼굴이다.  
 
뿐만 아니다. 영남권 지역산업을 대표하는 대구염색산업단지, 구미국가산업단지 등 지역경제 전역에 걸쳐 '대기업 외줄타기' 식의 산업구조가 고착화되면서 현지 중소기업들의 자생력은 '제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20일 경상남도 대구염색산업단지의 정경
 
◇제직·염색·건설 등 제조업 무너져..'늪'이 되다
 
"대구는 이제 뭘 해도 안 되는 동넵니다. 섬유업종뿐만이 아니라 지역경제를 먹여살리던 건설사도 망했고, 중소업체들마저도 김해로 빠지고 있습니다."
 
대구 성서산업단지 인근에서 만난 택시기사는 연신 푸념을 늘어놓았다. 현지 주민들에게 대구는 한때 우리나라 '제3의 도시'로 불렸던 자부심만큼이나 오늘날의 자화상이 실망스럽다.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대구의 섬유산업은 지역을 넘어 국가 전체의 경제발전을 이끈 핵심 기간산업으로 명성을 떨쳤다. 대구의 뿌리 깊은 연고산업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 대구는 광역시 중 가장 낙후된 도시로 전락했다. 인구는 인천시에 뒤진 지 이미 오래고, 성장 가능성은 대전에도 못 미친다.
 
90년대를 기점으로 대형 의류업체들이 제직 공장을 대거 중국으로 이동하고, 이로 인한 섬유산업의 과다출혈은 원가절감 압박을 더욱 부추겨 결국 인근 공장들의 연쇄 도산을 낳고 말았다.
 
제조업 기반이 사라지면서 대구 지역경제 전체가 '늪'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후 대구는 약 10년간의 장기침체를 거쳐오며 점점 '떠나고 싶은' 소비도시로 전락해 갔다.
 
실제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와 대구경북연구원에 따르면 올 들어 대구는 섬유업종 침체와 맞물려 제조업 기반이 낙후되고 설비투자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곧 생산 및 수출량 감소로 이어졌고, 대구 전체의 실업률 또한 덩달아 큰 폭으로 상승했다. 대구지역 취업자 수는 지난해 3분기 2만명 감소에 이어 4분기에는 1만명 더 줄었다.
 
소비심리가 위축된 서민들이 지갑을 열지 않자 서비스업의 질적 수준도 매우 낙후된 상황이다. 오늘날 대구시의 외양이 마치 서울의 20년 전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유다.
 
또 기업들은 대구가 '살아남기 힘든 도시'라고 입을 모은다.
 
경북대 LINC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대구에서 유명한 기업으로 어디 하나라도 꼽을 수 있느냐"며 "우방그룹, 청구그룹 등 대구 토종기업들은 모두 사라지고, 중소 영세업체들만 2, 3차 하청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대구시는 지역 토종기업들의 자생력 확보를 위한 지역특화산업 및 전통산업, 제조업 인프라 확충 등은 외면한 채 오로지 '규모의 경제'에만 매달리며 대기업 유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지 중소업체의 한 관계자는 "대구시가 몇몇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업체들의 자생력을 키우는 방안을 강구 중이지만 본질적인 방안이 아니라 '치적쌓기'에 가깝다"며 "지난 10년이 넘도록 대기업을 끌어오는 데에만 사활을 걸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미, 공동화 현상.."대기업, 있어만 주세요"
 
전체 인구가 42만명 수준에 불과한 구미는 전국산업단지 생산의 7.7%,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초대형 산업도시다.
 
90년대를 기점으로 전기·전자 메카로 자리매김한 구미 국가산업단지는 당시 삼성전자, 금성사(LG), 대우전자 등이 생산거점을 두면서 경북권 최대의 산업도시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외관으로 드러나는 구미시의 풍경은 90년대 이전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상남도 구미국가산업단지
 
단지의 한 근로자는 "구미에 대기업 공장이 많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 아니다"며 "30~40분을 감수해서라도 대구에서 출퇴근하는 근로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다수의 대기업이 집약적으로 몰려있는 경북권 최대의 산업단지지만, 도시 전체가 아직 '공단도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근로시간을 제외하고 도시가 텅 비어있는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구미는 생산된 '부'가 지역경제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실제 구미산단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대기업이 철수하면 지역경제가 망한다'는 위기감이 깊게 깔려 있었다. 지역 전체가 입주해 있는 대기업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입주 업체별로 들여다보면 이 같은 구조적 모순이 더욱 확연해진다.
 
효성의 1차협력체인 H사 관계자는 "대기업 업황이 바로 우리 중소업체들 업황으로 직결된다"며 "임가공 형태에서 벗어나 수출이나 ODM으로 가려 해도, 기술력과 수출력이 부족해 독립적인 업체로 성장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대기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업체들이 많다보니 이들 중소기업들이 말하는 자사의 업황이 곧 모기업의 업황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근 업체의 한 관계자도 "구미산단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업체가 삼성 휴대폰"이라며 "삼성 휴대폰 업황이 구미산단의 업황으로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자체 차원에서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 공장을 유지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김장현 한국산업단지관리공단 대경권 본부장은 "대기업은 일자리 창출, 세금을 통한 지자체 재원 확충 등 지역경제를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대기업이 지역 중소업체와 상생협력, 동반성장 노력을 통해 기술 등을 전달해야 중소업체가 자생력을 갖게 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구조"라고 말했다.
 
지금의 산업구조상 대기업과 지역경제가 질적·양적으로 함께 부흥하는 균형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는 결과적으로 구미가 국가 전체 산업단지 생산의 상당규모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낙후지역'의 멍에를 벗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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