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이 그리스에 대한 추가적인 자금지원과 유로존 은행들에 대한 자본확충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에 유럽 금융위기가 잠시 주춤해졌다.
하지만 위기감의 불길이 약화됐다고 해서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다. 유로존 위기는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기 이전에 유럽은행들이 얼마나 빠르게 자본을 확충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리스 디폴트가 단발성 악재로 끝날 때에는 악영향이 단기간에 그치겠지만, 유럽은행들이 체력을 회복하기도 전에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로 위기가 확산될 때는 리먼 사태를 능가하는 위기가 올 수도 있다.
유로존 금융위기가 다시 번져 걷잡을 수 없은 상황에 이를 경우,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것은 즐겁지 않지만, 아직 속단하기엔 이르다.
◇ 한국 '최악 시나리오' 멀어진 것 아니다
김종수 NH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 위기 우려가 다소 완화되는 듯 해도 민간의 손실부담, 유로 금융기관의 신용등급 강등 , 뱅크런 우려 등에서 보듯 여전히 유럽 금융시장은 신용경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과거 그리스 구제금융 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국가간 불협화음이 지속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순 없다는 지적이다.
실물경제나 금융시장에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이러한 시나리오는 치명적이다. 달러 가뭄이 극심해지면 국내 금융기관은 외화차입이 어려워지고 환율은 크게 오를 수 밖에 없다. 또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경기 둔화는 국내 수출물량 감소라는 실물경제에 타격으로 이어진다.
또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은 실질 소득 감소 그리고 자산가치 하락이라는 악순환을 갖고 온다. 취약한 내수는 이를 상쇄할 만한 힘이 없고 900조원을 위협하는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은 내부로부터 위기가 터진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 韓경제 펀더멘털 글로벌경기 영향 '절대적'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과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110.1%로 2008년 4분기 이후 최고수준이다. GDP 대비 수출입 비중은 우리나라의 대외의존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결국 글로벌 경기 침체시 수출경쟁력이 악화되면서 경제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미국과 유럽이 우리 수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달한다. 미국은 경기지표가 다소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소비는 늘지 않고 있으며 유럽은 부채를 줄이기 위해 긴축재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들 국가의 소비위축은 국내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물동량이 줄어드는 등 국내 수출물량이 감소하면서 해외 투자기관은 한국 경제성장률을 2%대까지 낮추기도 했다. 물론 수출기업이 환율 상승에 따른 수혜를 예상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달러강세는 근본적으로 경기둔화 우려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같은 환율 상승 수혜기대감은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 예대율로 돈 버는 은행. 외부충격 대응 '미숙'
수출 물량이 감소하면 국내 달러 자금이 줄어들고 외화유동성을 확보해야 하는 은행들은 그 만큼 해외에서 외화를 조달해야한다.
문제는 유럽 재정우려로 은행들이 달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다 최근 조달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기때문에 자금조달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며 "다만, 달러 조달하는데 드는 비용이 커지고 시장상황이 불안하다보니 장기자금을 조달하기는 쉽지 않은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은행을 비롯한 기업들이 엔화 등 비달러화로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는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리스 디폴트로만 보면 영향은 크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유럽계 전체가 위험하다"며 "미국도 맞물려 있는게 많아서 한꺼번에 이들 자금이 빠져나가면 당해낼 수 있는 은행은 없다"고 우려했다.
◇기업은 예금, 가계는 대출..韓경제 '비정상'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외부충격을 견디기엔 내수동력이 너무 취약해졌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강화되면서 내수 위축이 지속됐다. 문제는 과거처럼 대기업의 이익이 중소기업과 가계로 이어지는 낙수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
대기업이 돈을 벌고 외형적으로 GDP가 올라갔다고 해도 가계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물가상승이 지속되면서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서민들은 빚을 지고 살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질적인 펀더멘털 개선 없이 대출을 통한 소비를 늘린 결과 이제 우리나라는 9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라는 위협을 당하게된 것이다. 2분기 기준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한 가계신용은 876조원으로 사상최고치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억제 대책을 내놨지만 효과는 커녕 대출금리 상승과 비은행금융기관의 대출 급증이라는 부작용만 낳고 있다.금융사의 한 관계자는 "가계 소득 증가로 저축이 늘면 이를 토대로 금융기관이 기업에 대출을 해줘서 경기를 살리는 선순환이 되야하는데 지금은 기업이 은행에 예금하고 이 돈을 가계에 빌려주는 정반대의 상황이 됐다"고 꼬집었다.
국가채무도 2008년 309조원에서 2011년 435조원으로 41%늘면서 재정건전성이 우려되고 있어 공격적인 경기부양책 카드를 꺼내기도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이 관계자는 "한국의 펀더멘털이 좋고 금융시장이 개선됐다고 해도 이는 글로벌 경기가 양호하다는 것을 전제하에 가능한 것"이라며 "내부적으로는 이미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