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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고졸채용, 학력파괴 vs 비정규직 뽑는 '꼼수채용'
2011-07-26 15:47:46 2011-07-26 19:05:53
[뉴스토마토 박미정기자] 은행권에서 시작된 고졸채용 바람이 증권업계 등 다른 금융권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일부 대기업에서도 고졸채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고용시장에 유례없는 '고졸채용'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고졸자에게 취업문이 확대될 것이란 기대와 고졸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될 것이란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임금이나 승진 등 처우면에서 대졸자에 비해 불리한 근무조건을 바꾸지 않고 고졸자들을 채용하려는 데 대해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들의 '꼼수 채용'이란 부정적 시각도 있다. 
 
또 고교 졸업후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는 상황에서 정작 청년실업의 핵심인 대졸자들의 취업 문제 해결에는 도움을 주지 않는 고용 정책이라는 지적과 함께, 정부의 압박에 의한 '신(新) 관치' 경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은행권 고졸 채용 움직임 확대
 
지난 21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2009~2010년 총채용인원 대비 고졸인원의 비율은 5.7%에 불과하다.
 
은행권에서는 이를 올해 10.6%, 2012년 12.4%, 2013년 13.2%로 점진적으로 확대해 3년 연평균 고졸채용 비율 12.1%을 달성할 계획이다.
 
이같은 고졸채용 바람은 기업은행(024110)이 올 상반기에 고졸출신 직원 20명을 뽑았고, 추가로 하반기에 40명을 뽑는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이에 긍정적인 여론이 조성돼 다른 은행들도 앞다퉈 고졸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구인구직을 돕기 위한 중개 역할을 하다가 고졸출신 직원을 뽑게 됐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잡월드 사이트를 통해 중소기업의 구인구직을 돕다보니, 중소기업에서 고졸 인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이에 맞춰 전국의 650여개 특성화고 중에서 250여개 학교와 MOU를 체결해 일자리 소개와 교육을 했고 이 과정에서 기업은행이 솔선수범해 고졸 행원을 뽑게됐다"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지난 21일 다음달 중 전국의 전문계고등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우리창구전담 텔러행원'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우리창구전담 텔러행원은 계약직으로 시작하지만 2년 후에는 우수직원에 대해 정규직으로 전환채용할 계획"이라며 "정규직 전환채용 후에는 대학 진학시 학자금 지원 등의 다양한 복지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 고졸인력 전원 '비정규직'으로 채용.."비정규직 인력 수만 늘리는 꼴"
 
현재 은행권에서는 고졸인력을 대대적으로 채용한다고 하지만, 이들은 모두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뽑힌다. 게다가 은행권에서는 고졸 채용 분위기에 맞춰 계획에도 없는 고졸출신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 압박이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고졸 행원들을 뽑는다고 하지만 기존 창구업무를 보는 비정규직 인력이나 사무 보조 인력을 늘리자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며 "물론 학력차별없이 직원을 채용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비정규직 인원 수만 늘리는 꼴"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막혀 있는 것은 아니다.
 
통상 은행권에서는 비정규직으로 뽑히더라도 일단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된다. 무기계약직이 되면 월급만 정규직과 다를 뿐이지 정년까지 보장되고 복지 혜택도 똑같이 받을 수 있다.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되고 1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시험도 칠 수 있다.
 
기업은행의 경우 2005년부터 현재까지 고졸출신행원 2700명 중에서 506명이 시험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정규직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길고 연봉, 승진 면에서도 차별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2009년 이후 신입행원들의 임금이 삭감되면서 대졸자 초봉이 3200만원 수준이라면 고졸출신 행원의 초봉은 2500만원 수준"이라며 "한 시중은행의 경우 10명 이하의 상반기 고졸 출신 채용자는 채용 전형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 뽑혔다고 들었지만 이들도 비정규직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상고 출신 은행장 신화? 그 시대니까 가능"
 
이전 상업고등학교가 많이 있었을 때는 상고를 졸업해 은행원이 되는 것은 당연한 코스였다. 그러나 상업고등학교 진학률이 줄어들고 IMF를 거치며 구직난이 심해지자 대졸자들이 은행에 입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15년만에 고졸행원 채용 바람이 불고 있으니까 IMF 이후로 은행에서 대졸자들만 주로 뽑았다고 보면 된다"며 "경제위기 후 대졸자들도 취업이 힘들어져 현재 비정규직 텔러는 대부분 2년제 대학 졸업생들이고 4년제 대학 졸업생들도 텔러로 지원하는 사람이 많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이전에 상고 출신들이 은행의 주류를 형성하고 은행장까지 했던 이유는 그 시대에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고 상고 자체 수도 많았기 때문"이라며 "현재 불고 있는 은행권 고졸 채용 바람은 현실을 무시한 채 비정규직 인원만 늘리는 셈"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 "대졸자 채용에 역차별 있을 수도"
 
고졸 출신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가운데 산업은행은 이번 하반기에 고졸자 50명을 정규직으로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22일 "고졸 채용 50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이라고 말했고, 산업은행은 이들의 대학 진학을 위한 학자금도 지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하반기 채용 계획 인원 150명 가운데 50명을 고졸 정규직으로 뽑으면 그만큼 대졸자 채용 인원은 축소되는 셈이 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고졸 인원 5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만큼 대졸자 채용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고졸 채용이 82%에 달하는 높은 대학진학률과 비싼 등록금, 대졸 실업난과 맞물리며 우리나라 학력 인플레이션을 제거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고졸 채용을 밝힌 은행들도 대학 학자금 지원 혜택을 내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경제, 경영학을 전공한 대졸자들이 현재 하고 있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부가적인 교육이 필요할 것"이라며 "고졸 채용으로 학력 인플레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은행권이 고졸 인력의 대학 진학을 돕는 것은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은행권 취직 준비생은 "인문계 졸업자가 그나마 전공과 성별 차별없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이 은행권이라 높은 인기만큼 취직하기가 어렵다"며 "고졸자 채용으로 학력 차별을 없애겠다고 말하는 분위기 속에 대졸자 현실도 씁쓸하다"고 말했다.   
 
뉴스토마토 박미정 기자 colet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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