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에서 마주 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말 한마디 없이 오른쪽으로 비킨다. 상대방도 그렇게 한다. 둘은 아무 충돌 없이 서로를 지나친다. 이 0.5초 안에 일어나는 일은 수십 년간 사회적으로 학습된 공간 협상이다. 로봇은 지금 이 0.5초를 배우는 중이다.
피지컬 인공지능(AI)은 이미 공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오는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항공사 JAL(Japan Airlines)은 당장 지난 5월부터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수하물 운반과 지상 작업에 투입하는 실증 실험을 시작했다. 앞으로는 병원 복도, 학교 로비, 양로원 식당이 될 것이다. 사람과 로봇이 일상의 동선을 공유하는 공간들이다. 그 공간에서는 물리적 충돌 회피와는 전혀 다른 층위의 규범이 작동한다. 부딪히지 않는 것과 불편하지 않은 것은 다르다. 로봇 공학이 오랫동안 전자를 풀어왔다면, 지금은 후자 앞에 막혀 있다.
이 문제를 연구자들은 흔히 '소셜 내비게이션(Social Navigation)'이라 부른다.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동하는 로봇의 항법 문제다. 1966년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사람이 타인과의 거리를 네 구역으로 나누어 인식한다고 제안했다. 가족이나 연인 사이의 친밀 거리(0~45cm), 친한 친구 사이의 개인 거리(45~120cm), 업무나 사교 자리의 사회 거리(120~360cm), 강연장처럼 낯선 타인과의 공적 거리(360cm 이상)가 그것이다. 로봇 공학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로봇 주변에 거리 기반의 안전 구역을 설정해온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문제는 현실의 개인 공간이 그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2026년 발표된 논문 「사회적 인식 로봇 내비게이션을 위한 근접학 분류 체계(Advancing a taxonomy of proxemics for socially aware robot navigation)」는 2020년부터 2025년까지의 실험 연구 39편을 종합 분석해, 개인 공간이 거리 하나로 정의될 수 없음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로봇이 앞에서 다가오느냐 뒤에서 다가오느냐에 따라 같은 거리도 전혀 다르게 느껴지고, 로봇의 외형과 소음 수준에 따라서도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는 거리 자체가 달라진다.
이 논문이 핵심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하나다. 개인 공간은 고정된 원이 아니라 사람의 자세, 로봇의 생김새, 공간의 구조, 과업의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는 동적인 경계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안된 많은 로봇 내비게이션 알고리즘은 여전히 고정된 거리 임곗값을 중심으로 사람을 피하는 방식에 의존해 왔다. 로봇이 충돌을 피하면서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결과로 생기는 현상이 있다. 이름도 있다. '동결 로봇 문제(Freezing Robot Problem)'다. 이를테면 사람이 많은 복도에서 로봇이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버리는 문제를 말한다. 로봇은 주변 사람들의 예상 이동 경로를 계산하고, 어느 방향으로 가도 누군가와 부딪힐 것 같으면 멈춰버린다. 안전을 위한 판단이 오히려 로봇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2022년에 발표된 연구 「소셜 내비게이션의 동결 해제(Unfreezing Social Navigation: Dynamical Systems based Compliance for Contact Control in Robot Navigation)」는 이 역설을 정확히 짚는다. 로봇이 사람과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피하려 할수록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더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한 존재가 된다. 굳어버린 로봇에 보행자가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로봇은 예의 바른 로봇이 아니라 불편한 로봇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관련 연구들에서 밝혀진 내용을 종합하면 두 방향이 보인다. 하나는 사람의 다음 동작을 먼저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로봇이 자신의 의도를 몸짓으로 먼저 드러내는 것이다. 상대방이 오른쪽으로 비킬 것 같으면 로봇이 먼저 왼쪽으로 비켜 길을 만들어주거나, 몸의 방향을 살짝 틀어 "나는 이쪽으로 간다"는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연구들에서 밝혀지듯, 이 두 방향 모두 통제된 실험실 환경에서 도출된 결과이며 참여자의 연령·문화·신체 조건 역시 제한적이다. 해법이 만들어진 조건과 해법이 적용될 현실 사이의 간극이 그만큼 크다.
개인 공간의 감각은 문화권마다 다르다. 서울 지하철 환승역에서 몸을 부대끼며 이동하는 사람과 북유럽 공항 로비에서 넉넉한 간격을 유지하는 사람은 로봇에게 기대하는 거리도 다르다. 노인이 느끼는 로봇의 압박감은 젊은 성인과 다르고, 휠체어를 탄 사람이 로봇과 마주치는 경험은 서 있는 사람의 경험과 구조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연구는 이 차이들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서구 성인 중심의 실험실 데이터로 만들어진 알고리즘이, 문화도 다르고 몸도 다른 사람들이 뒤섞인 공간에 그대로 이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병원 로비, 요양원 복도, 학교 식당에 로봇이 들어오려면,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로봇을 불편하게 느끼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먼저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술 도입 이후에 보완할 문제가 아니라, 도입 이전에 우리 사회가 요구해야 할 조건이다. 로봇이 사람을 피하는 것은 기술의 문제다. 로봇이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은 문화의 문제다. 복도에서 0.5초 안에 벌어지는 공간 협상을 로봇이 배우는 일은, 연구실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걷는 현장에서만 가능하다.
최홍규 연구위원(EBS) /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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