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장기화로 중동에 ‘발목’…현대차 현지화 전략 ‘안갯속’
“수요 위축 등에 단기 실적 방어 어려워”
HMMME 구축·가동 계획 차질 ‘불가피’
2026-04-22 12:06:38 2026-04-22 12:06:38
[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미국발 고율 관세 압박을 피하기 위한 현대차그룹의 ‘중동 드라이브’가 전쟁이라는 암초를 만났습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군사 충돌이 장기화되면서 핵심 해상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고, 신흥 소비시장으로 부상한 GCC(걸프 6개국)의 자동차 수요 둔화와 물류 차질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 전용부두에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다. (사진=뉴시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아이오닉3 공개 행사에서 “중동 판매 감소분을 다른 시장으로 온전히 만회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는 “중동 시장용 차량이 현지 기준에 맞춰 생산돼 북미나 유럽 판매용으로 바로 전환되기 어렵고, 일부 물량 조정을 검토하더라도 단기간에 대응할 수 있는 규모는 제한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수출 물류망은 이미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현대차 인도법인(HMIL)을 비롯해 마루티 스즈키, 타타 모터스 등 인도 완성차 업체들이 중동으로 향하는 차량 선적을 무기한 연기하고 있습니다. 전쟁 보험료 급등과 컨테이너당 최대 2000달러(약 295만원)에 달하는 긴급 운송 할증료가 물류비를 끌어올린 탓입니다. 희망봉을 경유하는 우회 항로도 있지만 운송 거리와 비용이 크게 늘어나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인도법인의 중동 의존도는 구조적으로 높습니다. 현대차 인도법인의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동 수출 비중은 21.96%이며, 중동·북아프리카 전체로 확대하면 수출 물량의 약 40%가 해당 지역으로 향합니다. 올해 수출 7~8% 증가를 목표로 제시했으나 물류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이 같은 성장 계획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현지 생산과 중동 수출이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구조인 만큼, 수출 성장 로드맵 전반에 수정이 불가피해졌습니다. 호르무즈 봉쇄는 단순한 물류 문제를 넘어 인도 사업 전반의 성장 궤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사진=현대차그룹)
 
현지 생산 거점 구축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합니다. 현대차는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합작해 올 4분기 가동을 목표로 현지 생산법인(HMMME)을 건립 중입니다. 내연기관과 전기차를 합쳐 연간 5만대 규모로 설계된 이 공장의 현재 공정률은 5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우디 킹 압둘라 경제도시(KAEC)에 들어서는 이 시설은 중동 최초의 현대차 생산 거점으로, 중동·북아프리카(MENA) 전역을 겨냥한 수출 전초기지로 계획됐습니다.
 
반조립(CKD) 방식으로 운영되는 공장 특성상 양산 개시까지 과정이 복잡합니다. CKD 공장은 양산 6개월 전까지 핵심 인력, 부품, 설비 세팅을 끝내야 합니다. 전쟁이 지속되면 숙련 인력의 현지 투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것이 업계의 우려입니다. 부품 조달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영향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UAE·쿠웨이트 등 GCC 핵심국에 공격을 가하면서 소비 심리도 위축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현대차·기아는 중동에서 약 32만대를 판매해 15% 안팎의 점유율을 유지해 왔습니다. 글로벌 투자 분석업체 번스타인은 전쟁이 중동 자동차 시장을 주도하는 현대차와 토요타, 중국 체리자동차에 경영상 막대한 차질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수요 회복도 멀어진다는 진단이 나오며, 2030년까지 중동 시장 점유율 20% 달성이라는 목표도 불투명해질 전망입니다.
 
미국의 고율 관세가 북미 수출 전략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현대차는 인도 생산기지를 통한 중동 수출 확대와 현지 생산거점 구축으로 수익 구조를 분산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른바 '제2의 중동 붐'을 미국 관세 회피의 핵심 카드로 삼았지만, 전쟁이라는 변수가 끼어들면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습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분쟁이 끝나더라도 기존 공급망을 재건하고 복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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