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으로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전·현직 대표가, 이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검 검사들이 형사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들의 핵심 주장은 ‘일용직에게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쿠팡CFS가 일용직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민사재판 결과가 나왔습니다. 진행 중인 형사재판은 물론 쿠팡의 인력 운용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사진=뉴싯)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민사54단독 이종광 부장판사는 지난 1일 쿠팡CFS 일용직 A씨가 사측을 상대로 청구한 퇴직금 미지급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습니다. 퇴직급여보장법상 일용직도 1년 이상 계속 근무하면서 4주 평균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소액 사건이라 판결문에 판단 이유가 적시되지 않았지만, A씨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셈입니다. 양측이 이 부장판사에게 제출한 의견서를 토대로 사측 주장이 기각된 이유를 짚었습니다.
쟁점1: 일용직 계약의 형식과 실질
사측은 재판 과정에서 1일 단위로 근로관계가 완전히 종료되는 일용 계약을 체결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물량에 따라 매일 채용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속근로 기대 의사가 없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사측은 “A씨는 자발적 선택에 따라 일용직으로 근무했다”며 “상용직으로서 의무를 부담하지 않고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고 A씨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반면 A씨 측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고용 형태와 관계 없이 제공된 노동의 실질을 따져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A씨는 2022년 11월5일부터 2024년 4월7일까지 총 근무 기간 520일 동안 272일을 출근했습니다. A씨 측은 “통상 상용직이 근무해야 할 평일 수인 354일과 비교해 볼 때 77% 수준”이라며 “상용직에 준하는 수준으로 근무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A씨 측은 “일용직이 상용직과 같은 의무를 져야만 퇴직급 지급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어떠한 근거도 없다”며 사측 주장을 비판했습니다. 법원도 고용 형태보다 노동 제공의 실질을 따져 A씨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쟁점2: 공백기 해석 논쟁
A씨가 일하지 않은 공백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도 주요 쟁점입니다. 사측은 “A씨가 자유 의사로 채용 지원을 하지 않거나 지원 취소, 근무 취소를 함으로써 연속해 4일 이상(최대 16일)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기간이 15회나 발생했다”며 “특히 장기 공백 기간은 상용직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근무 형태”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A씨 측은 “최소 1개월에 4, 5일 내지 15일 정도 계속해서 근무하면 퇴직금 지급 대상이 된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며 “주 5일씩 근무하는 상용직과 동일한 수준으로 근무해야만 퇴직금 지급 의무의 요건인 계속성이 충족되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습니다.
공백기에 대해 A씨 측은 “1개월에 4일 미만 일한 기간은 단 한 번도 없다”며 “근무일수가 0일인 주는 전체 근로 기간 75주 중에 단 2주에 불과했고, 심지어 퇴직금 산정 기간에서 제외되는 ‘4주 평균 주 15시간 미만’ 기간 역시 단 한 주에 불과했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업무 강도상 휴식시간이거나, 사측 채용 규모에 따른 대기시간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쟁점3: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사측이 2023년 5월 일용직 퇴직금 관련 취업규칙을 노동자들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한 점도 문제입니다. 계속근로기간 산정 구간을 1년으로 두고 한 번이라도 4주 평균 주 15시간 미만인 구간이 존재하면 퇴직금 지급 대상에서 배제하도록 한 겁니다. 또 근로 기간 중 1개월 이상 공백기가 발생한 경우, 공백기 이전에 1년 이상 근무했더라도 근무 기간을 ‘리셋’하는 규정도 도입했습니다.
사측은 적법 절차를 거쳤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변경된 규정을 법 위반으로 보고 취업규칙 변경 명령을 내렸는데도, 사측 잘못은 없다는 겁니다. 취업규칙을 원상복구한 것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란이 일자 도의적 책임을 진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사측은 정종철 현 대표와 엄성환 전 대표, 법인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데도, 반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민사 판결로 처벌 가능성은 높아졌습니다. 이 사건 수사를 무마한 혐의를 받는 엄희준 전 부천지청장(현 광주고검 검사) 등에 대해서도 최소한 당시 정 대표 등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이 잘못됐다는 게 법원 판단입니다.
쿠팡의 일용직 악용 관행도 영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A씨를 대리한 김상연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쿠팡은 혁신이란 이름으로 근로기준법이 예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일용직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며 “민사사건과 형사사건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인력 운용 방식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