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전쟁과 석화)②팔수록 손해…석화업계 역마진 비명
나프타 톤당 1100달러 넘었지만 제품값 '제자리'
에틸렌 마진 급락…공장 멈춰도 고정비 부담 '여전'
2026-04-13 06:00:00 2026-04-13 06:00:00
이 기사는 2026년 04월 8일 10:47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전례 없는 위기와 맞닥뜨렸다.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이 이미 흔들린 상황에서 나프타 가격 급등과 원료 수급 차질까지 겹치며 부담이 한층 커졌다. <IB토마토>는 전쟁이 불러온 원가 압박과 공급망 마비의 실태를 진단하고 이번 위기를 계기로 중동 의존도를 낮출 원료 다변화와 고부가가치 중심의 사업 재편 방안을 살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중동발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국내 최대 석유화학 단지인 여수와 대산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과거 유가 급등기가 정유사와 석유화학사들에게는 막대한 재고평가이익을 안겨줬던 것과는 대조적인 풍경이다. 유가상승 이면에는 원재료비 급등과 수요 절벽이 있다. 제품을 판매할수록 손실이 커지는 역마진 구조가 짙어지면서 업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동 전쟁 영향 받은 여수 국가산업단지. (사진=연합뉴스)
 
나프타 뛰는데 제품값 못 따라가
 
8일 업계에 따르면 중동 전쟁 여파로 원재료값 급등, 제품가격 정체, 글로벌 수요 둔화, 설비 고정비 부담이 한꺼번에 겹쳤다. 우선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의 급격한 변동이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쟁 발생 전에는 톤당 600달러 수준에서 등락을 반복하던 나프타 가격은 중동 지역 공급 차질 우려가 확산되며 단기간에 톤당 1100달러를 넘어섰다.
 
최근 한 달 사이에도 나프타 가격은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사들은 원유를 정제해 나온 나프타를 수입해 기초 유분을 생산하기 때문에 원재료비 급등은 곧바로 생산원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석유화학 제품 수익성 척도인 에틸렌-나프타 스프레드 폭락이다. 업계에서 통용되는 나프타분해시설(NCC)의 손익분기점(BEP)은 톤당 약 300달러며, 기업이 적정 수준의 영업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당 스프레드가 350달러 안팎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시장 지표에 따르면 스프레드는 한때 34.5달러까지 하락했으며, 최근에도 24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손익분기점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로, 사실상 공장을 가동해 제품을 생산할수록 현금흐름이 악화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수익성 저하 현상은 기초 유분인 에틸렌에만 국한되지 않고 하부 제품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폴리에틸렌(PE)과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ABS), 스티렌모노머(SM) 등 주요 제품군 역시 원재료 상승폭을 제품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여파로 전방 산업인 자동차와 가전, 건설 분야의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얼어붙으면서 공급 과잉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의 수혜는 사라진 채 나프타 급등에 따른 원가 압박을 기업이 온전히 떠안고 있는 형국이다.
 
경영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자 국내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은 가동률 조정, 설비 가동 중단 등 비상조치에 나섰다.
 
LG화학(051910)롯데케미칼(011170) 등 주요 석화사들은 이미 일부 고객사들에 공급 차질 가능성을 예고했으며, 가동 중단이나 정기보수 시점 조정을 통한 생산량 감축을 진행 중이다. 여천NCC는 일부 설비의 가동 조정과 공급 차질 가능성을 두고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은 일부 NCC 시설의 가동을 중단하며 수익성 방어에 주력하고 있다. 여수와 대산, 울산 등 주요 산업 단지를 중심으로 설비 가동률은 예년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가동 중단 불가피…'고정비 부담'이 다음 과제 
 
생산량을 줄이는 결정 과정에서도 기업들은 막대한 고정비 부담이라는 난관에 봉착해 있다. 문제는 생산량을 줄이거나 설비를 멈추는 것만으로 해법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석유화학 설비는 수조원 규모의 자금이 투입되는 장치 산업으로, 설비를 멈추더라도 인건비와 감가상각비, 기본 유지보수비 등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상당하다. 가동을 중단하면 원재료 구입비용은 절감할 수 있지만, 설비 유지에 들어가는 고정비는 매출 없이 고스란히 손실로 잡히기 때문이다.
 
또 NCC 설비의 특성상 한번 가동을 중단한 뒤 다시 정상 가동 상태로 돌리는 데 드는 재가동 비용과 시간적 손실이 막대한 것도 문제다. 특히 고객사와의 장기 공급계약 미이행에 따른 위약금과 신용도 하락 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팔수록 손해인 상황에서도 셧다운 여부를 결정하는 데 극심한 진통을 겪는 상황이다.
 
정부도 현재 석유화학 제품 수급 불안을 경제안보 차원의 위기로 규정하고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나프타를 경제안보 핵심 품목으로 지정하고 수출 제한과 비축 강제, 수급 현황 보고 의무화 등의 행정명령을 검토하고, 일부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의 나프타 재고 수준이 현재 한달분도 되지 않는다는 점은 불안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수급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경우 공급조정 명령권을 발동해 물량을 강제 배분하는 시나리오까지 고려하고 있다.
 
향후 전망에 대해서도 업계와 전문가들은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나프타 공급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국내 업체 가동률 하락과 설비 셧다운은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에틸렌뿐만 아니라 주요 다운스트림 품목에서 적자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석유화학 산업 전반의 실적 하향조정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내 대형 석유화학 기업의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과거 유가 상승기에는 제품 수요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원가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원가 부담을 기업이 그대로 떠안는 역마진 상황"이라며 "나프타 공급망 불안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될 경우 실적 반등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라고 말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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