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농지 제도의 출발점은 헌법이 규정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이 원칙은 한국 농업의 공공성과 식량안보를 지탱해 온 제도적 기반이었다. 그러나 농촌 고령화와 농업 구조 변화, 그리고 부동산 시장의 과열이 겹치면서 농지는 점차 생산수단이 아니라 자산 축적의 대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농지 임대차 제도는 이러한 구조적 왜곡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농지까지 투기 대상이 돼버리지 않았느냐”며 농지 투기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고, 전국 농지에 대한 전수조사와 필요시 매각 명령 등 강력한 관리 조치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귀농·귀촌을 하려고 해도 농지 가격이 비싸 어렵다”며 농지 가격 안정과 투기 억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정책 언급을 넘어 한국 농지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농지 가격 상승과 투기적 보유는 농업 진입 장벽을 높이고 농지 이용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연구에 따르면 농지개혁 직후 약 8% 수준이었던 임차농지 비율은 1985년 30.5%까지 상승했으며, 2015년 기준 비농업인이 소유한 농지는 약 32만ha로 전체 농지의 19.1%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농지가 실제 농업 생산수단이라기보다 자산 보유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현행 농지법은 기본적으로 농지를 직접 경작하는 사람이 소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와 임대차를 엄격히 제한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농지 소유와 이용이 분리된 사례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상속이나 투자 목적의 농지 보유, 개발 기대에 따른 장기 보유 등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농촌 현장에서는 임차농 비율이 매우 높아 실제 농업 생산을 담당하는 농민 상당수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채 경작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과 제도 사이의 괴리가 다양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불법 또는 음성적 임대차의 확산이다. 법적 규제가 강한 만큼 실제 농촌에서는 비공식 계약이나 단기 임대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농지 이용의 투명성을 저해한다. 둘째, 농지 투기 문제다. 농지를 실제 농업 생산에 이용하기보다 가격 상승을 기대해 보유하는 사례가 늘면서 농지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이로 인해 청년농이나 귀농 희망자의 농지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 셋째, 임차 농업인의 경영 불안정이다. 단기계약 위주의 임대차 구조에서는 장기적인 농업 투자나 시설 투자, 토양 개선 등의 노력이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농지는 투기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이러한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은 메시지다. 농지는 일반 부동산과 달리 식량 생산과 농촌 공동체 유지라는 공공적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지 정책은 부동산 정책과 동일한 시장 논리로 접근하기보다 공공성과 이용 중심 원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하원오(왼쪽 세번째) 농민의길 상임대표 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지난해 3월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전종덕(왼쪽 두번째) 진보당 의원을 비롯한 농민 단체장들과 농지 규제 완화 중단을 촉구하는 농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농지 이용 실태에 대한 전면적 관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농지 전수조사는 투기적 농지 보유를 파악하고 농지 정책의 기초 자료를 확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둘째, 농지 임대차의 제도화와 투명화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임대차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고 등록제와 계약 관리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장기 임대차 제도 확대가 필요하다. 최소 임대 기간을 늘리고 임차 농민의 영농 지속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넷째, 투기성 농지 보유에 대한 관리 강화다. 실제 경작하지 않는 농지에 대해 이용 의무를 강화하고 필요할 경우 매각 명령 등 실효적 제재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농지는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다. 농지는 국민의 식량을 생산하는 기반이며 농촌 사회를 유지하는 공공 자산이다. 농지가 투기의 대상이 되는 순간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경자유전 원칙을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이제 농지 제도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제다. 원칙은 지키되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을 인정하되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는 균형 잡힌 농지 정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원호 부산대학교 교수, 한국농식품정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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