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서울 아파트 시장이 지역과 가격대에 따라 상반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고가 주택이 밀집한 강남권에서는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증여가 빠르게 늘며 이른바 ‘부의 대물림’ 현상이 두드러지는 반면, 강북권에서는 대출 규제가 만든 가격 경계선에 맞춰 중저가 아파트 거래가 집중되는 ‘키 맞추기’ 장세가 형성되는 모습입니다.
11일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에서 아파트·오피스텔·빌라 등을 포함한 집합건물 증여 건수는 총 901건으로 집계됐습니다. 1년 전 같은 기간(514건)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입니다. 연초 일시적으로 주춤했던 증여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입니다.
특히 고가 아파트가 몰려 있는 강남권의 움직임이 두드러졌습니다. 자치구별로 보면 강남구 87건, 서초구 62건, 송파구 56건으로 이른바 ‘강남 3구’의 비중이 높았습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강남구는 두 배 이상, 서초구와 송파구도 큰 폭의 증가세를 나타냈습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 강화가 예고되면서 매도 대신 자녀에게 자산을 이전하려는 선택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증여 주체 연령대 역시 고령층에 집중됐습니다. 강남권에서는 60~70대 이상이 증여인의 상당수를 차지했고, 재산을 넘겨받은 수증인은 30~50대가 주를 이뤘습니다. 고령의 주택 보유자가 세 부담이 커지기 전에 자녀 세대로 자산을 이전하는 흐름이 통계로 나타난 셈입니다.
시장에서는 양도소득세 중과 시행과 보유세 체계 변화 가능성이 맞물리면서 고가 주택 보유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매도 시 세금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만큼, 가격 조정 국면에서도 매물을 정리하기보다 증여를 통해 장기 보유 전략을 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향후 세제 환경이 더욱 엄격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하면서 강남권을 중심으로 증여 수요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 서초구의 부동산중개업소에 매물 정보가 게시돼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가격 낮은 곳으로 실수요 이동…강북 집값 상승
반면 강북권 시장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출 규제가 적용되는 15억원을 기준으로 거래가 집중되면서 중저가 아파트 가격이 단계적으로 올라서는 ‘가격 맞추기’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는 총 3219건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15억원 이하 거래는 2714건으로 전체의 84.3%를 차지했습니다. 대출 규제선 아래 가격대에서 서울 아파트 거래 대부분이 이뤄진 것입니다.
지역별로는 강북권 비중이 높았습니다. 노원·성북·강북·은평 등 외곽 지역에서는 거래 10건 중 9건 이상이 15억원 미만 가격대에서 체결됐습니다. 실수요자들이 대출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매수에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낮은 지역으로 수요가 이동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 8단지 래미안 전용 84㎡는 지난달 10일 15억원에 손바뀜하며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다. 성북구 장위동 ‘래미안장위퍼스트하이’(1562가구) 전용 116㎡는 이달 14억4000만원에 거래됐습니다. ‘서울원아이파크’(2264가구)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대부분 14억원대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가격 상승률에서도 감지됩니다. 강남권 일부 지역이 약보합 또는 하락 흐름을 보이는 사이, 강북 주요 지역은 오름세를 유지하며 대조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형 면적 아파트를 중심으로 매수 문의가 이어지면서 외곽 단지들의 가격 회복 속도도 빨라지는 모습입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대출한도 효과’가 만들어낸 구조적 변화로 보고 있습니다. 고가 아파트는 자금 조달 부담이 커졌지만 15억원 이하 주택은 상대적으로 대출 활용 여지가 남아 있어 실수요가 꾸준히 유입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서울 외곽의 중저가 단지가 거래를 주도하고, 일부 단지는 가격이 규제선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상승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향후 변수는 ‘15억원 가격 경계선’이 얼마나 지속될지 여부입니다. 세제 강화와 금리 수준, 공급 일정 등 복합적인 요인에 따라 강남권 조정 흐름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동시에 중저가 아파트 쏠림이 계속될 경우 외곽 지역의 가격 부담 역시 빠르게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실수요 중심의 거래 구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정책 변화와 거시경제 여건에 따라 자금 흐름이 다시 이동할 수 있는 만큼, 가격대별 양극화가 서울 주택시장의 변수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 랩장은 “고금리와 대출 규제가 이어지면서 실수요자들이 대출한도 활용이 가능한 15억원 이하 중저가 단지로 매수 눈높이를 낮추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며 “사실상 15억원선이 주택 매입의 기준선처럼 작용하는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현재 흐름은 시장 왜곡이라기보다 실수요 중심의 재편 과정에 가깝고, 다주택자 규제가 지속되는 만큼 외곽 지역의 실수요 매수세도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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