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나는 사정이 있고, 당신은 인성이 없다
2026-02-02 15:17:11 2026-02-02 15:29:36
얼마 전 출근길, 회의 시간에 쫓겨 급하게 차선을 변경했다. 백미러 속 뒤차 운전자의 일그러진 표정이 보였지만, 속으로 '어쩔 수 없지, 급한 일이니까'라며 상황을 합리화했다. 그런데 며칠 뒤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엔 내가 끼어들기를 당하는 쪽이었다. 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저 사람 운전 뭐 저래!"였다.
 
돌아보니 부끄러웠다. 나의 끼어들기는 어쩌다 발생한 '긴박한 사정'이었고, 상대의 끼어들기는 상습적인 '인격적 결함'이었다. 같은 끼어들기였지만, 내 마음속 법정은 이미 판결을 마친 뒤였다. 내 끼어들기에는 "급한 사정이 있었으니까"라며 변호사처럼 감싸주고, 상대의 끼어들기에는 "저런 인성"이라며 판사처럼 단죄했다.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변호사, 남에게는 한없이 엄격한 판사. 해석의 잣대가 이토록 달랐던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부른다. 자신의 행동은 외부 상황 탓으로, 타인의 행동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본성 탓으로 돌리는 인지 편향이다. 1970년대 사회심리학자 리 로스(Lee Ross)가 명명한 이 개념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문제는 이 편향이 운전대 위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일터에서 이런 이중 잣대를 적용해온 적이 있다. 내가 맡은 조직의 업무가 지연되면 "규정상 어쩔 수 없다", "예산이 없다", "인력이 부족하다"며 상황 탓을 했다. 그런데 협력 부서의 업무가 늦어지면 어땠나. "그 부서는 원래 일 처리가 느려", "담당자 인성 문제야"라며 사람에게 낙인을 찍었다.
 
조직에서 이런 편향이 만연하면 협업의 신뢰 기반이 무너진다. 실수나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저 사람이 원래 그래'라는 꼬리표를 붙이기 시작하면, 솔직한 소통은 사라지고 방어적 태도만 남는다. 누군가의 실수를 상황의 맥락에서 먼저 이해해줄 때, 구성원들은 비로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 회의실에서 "제 잘못입니다"라는 말이 점점 듣기 어려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편향은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일이 재미없을 때 "요즘 세상이 참 재미없어"라고 투덜댄 적이 있다.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모래만 있어도, 구슬 하나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이 빛을 잃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담는 내 렌즈에 먼지가 쌓인 것이다. 조직에서 "이 회사는 비전이 없어"라는 말도 비슷한 구조일 수 있다. 물론 정말 비전이 없는 조직도 있겠지만, 때로는 비전을 읽어내는 내 렌즈에 먼지가 낀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결국 귀인 오류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변화해야 할 당사자가 정말 주변인가, 아니면 나 자신인가. 우리는 대개 전자를 선택한다. 주변이 바뀌면 모든 게 나아질 것 같다. 상사가 바뀌고, 시스템이 바뀌고, 동료가 바뀌면. 하지만 어느 조직에 가든 비슷한 불만을 반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해석 습관'이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글을 쓰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본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 역시 여전히 이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평생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잠깐 멈추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혹시 저 사람에게도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지 않을까." 심리학자들은 이를 '의도적인 상황 탐색'이라 부른다. 타인의 실수를 보았을 때 "왜 저랬을까"라고 묻기 전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외부 요인을 세 가지만 먼저 떠올려보는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압박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큰 책임감에 짓눌려 있는 건 아닐까, 오늘 아침 힘든 소식을 접한 건 아닐까. 이 작은 연습이 판사의 망치를 내려놓게 만든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에게 '인성 없는 사람'으로 비칠지 모른다. 그러니 타인의 실수 앞에서 한 번쯤 멈춰 서자. '저 사람에게도 나처럼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지.' 이 작은 믿음이 우리를 인색한 판사에서 너그러운 동료로, 그리고 경청하는 리더로 이끄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김주성 노원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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