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바다로 세계로 미래로." 부산 앞바다에서 해양수산부 기자들과 마주한 송상근 부산항만공사(BPA) 사장의 첫 일성입니다. 이 구호는 기회 때마다 단 한 번도 바꾸지 않고 사용하는 상징적인 문장이자 바다와 함께한 신념과도 같습니다.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하며 정책과 현장이 한층 가까워진 요즘, "일하는 맛이 너무 재미있다"는 송 사장의 미소엔 글로벌 거점항만 구축을 향한 부산항의 전략적 방향성이 엿볼 수 있습니다.
부산역을 출발해 견마교를 넘어설 즈음, 푸른 바다 위로 거대한 철제 구조물들이 군무를 추는 듯한 장면이 시야를 채웁니다. 수천 개의 컨테이너가 자로 잰 듯 '오와 열'을 맞춰 쌓이고 초대형 크레인들이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쉼 없이 움직이는 곳. 부산신항은 대한민국 경제의 혈맥이자 전 세계 해상 물류가 교차하는 핵심 거점 항만입니다. 1876년 개항 이후 150년. 북항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물류의 역사는 이곳 신항에서 인공지능(AI)과 무인 로봇이 이끄는 '스마트 항만' 시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뉴스토마토>가 동원글로벌터미널부산(DGT)을 방문, 완전 자동화 컨테이너 터미널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태평양의 라스트 스테이션
부산항의 위상은 세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연간 컨테이너 처리량이 약 2440만 TEU(1TEU,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로 세계 7위이자, 환적 물량은 세계 4위에 달합니다. 특히 환적은 최종 목적지로 가기 전 중간 항구에서 짐을 옮겨 싣는 것을 말하는데, 부산항은 지정학적으로 '태평양의 라스트 스테이션' 역할을 수행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는 "부산항은 고속도로의 마지막 휴게소와 같습니다. 중국, 일본, 러시아에서 모인 화물들이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건너기 전 마지막으로 거치는 곳"이라고 밝혔습니다.
부산항은 매주 268개의 정기 노선이 운영되며 화주들에게 '언제든 내 물건을 실어 보낼 배가 있다'는 확신을 줍니다. 안개로 인해 연간 수십 일을 쉬는 북중국 항만들과 달리 기상 악화로 인한 항만 폐쇄가 연간 단 하루나 이틀에 불과한 안정성까지 갖춘 최적의 기항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위상 뒤에는 생존을 위한 고민도 녹아 있습니다. 국내 부산항은 진해신항 건설과 북항 재개발을, 밖으로는 로테르담·바르셀로나·인도네시아·미국 등 해외 물류 거점 확보를 동시에 추진 중입니다.
BPA의 자산은 약 7조4000억원에 달하지만 수조 원 단위가 투입되는 거대 국책 사업들로 인해 부채 비율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매년 국정감사의 단골 현안 건이나 글로벌 물류 전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피할 수 없는 투자'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부산항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차대한 해입니다. BPA는 올해 진해신항 1단계 부두 기반시설 공사를 본격화하고 2-6단계 상부시설 건설에 고삐를 죄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와 중국의 거대 항만들이 스마트·대형화를 앞세워 위협하는 상황에서 부산항은 단순히 시설을 관리하는 역할을 넘어 물류비 절감 등 글로벌 물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겁니다.
지난 22일 박정재 동원글로벌터미널부산(DGT) 사업지원실장이 완전 자동화 컨테이너 터미널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자동화 항만…AI 운영체계로 지능화
부산신항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동원글로벌터미널부산(DGT)입니다. DGT는 국내 최대 규모의 완전 자동화 컨테이너 터미널로 총면적 140만㎡, 6개 선석, 연간 450만TEU 처리 능력을 갖췄습니다. 컨테이너를 배에 실어 나르는 안벽 크레인(STS) 역시 국내 최초 ‘더블 트롤리(안벽 크레인인 STS 한 대에 컨테이너를 옮기는 운반 기구가 두 개 장착된 시스템)’를 장착해 2만5000TEU급 초대형 선박까지 신속하게 처리합니다.
무엇보다 터미널 내부에는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차량이 지정된 위치에 도착하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인식하고 무인 장비들이 컨테이너를 옮기는 식입니다. AGV(무인 운반차), ARMGC(자동레일 장착 크레인), STS 크레인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24시간 작업을 이어가는데도 과거 항만 상징인 디젤 매연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박정재 DGT 사업지원실장은 "자동화라고 해서 사람이 하는 작업보다 무조건 빠를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다"며 "현재 DGT의 시간당 컨테이너 처리량은 25~26개 수준으로 부산신항 내 유인 터미널(26~27개)과 비교하면 소폭 낮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자동화 도입 2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이미 유인 터미널의 약 90% 수준까지 따라왔다"며 "모든 장비가 사전에 설정된 값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언제나 같은 품질의 작업을 유지한다. 사람이 상황에 따라 속도를 높일 수는 있지만 그만큼 편차와 위험도 커지는 데 하역 품질과 안정성이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이곳은 선박 접안부터 하역·야드 운영·차량 반출입까지 항만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통합 관리하는 터미널 운영 시스템 'TOS(Terminal Operating System)'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즉, 자동 항만의 두뇌 역할로 자동화 장비와 인공지능(AI) 운영 체계를 연결하면 지능형 하역이 가능해집니다.
송상근 부산항만공사(BPA) 사장은 지난 22일 부산 해운대 인근에서 해양수산부 기자들과 만나 글로벌 거점항만 구축을 향한 전략안을 밝혔다. (사진=부산항만공사)
'북극항로' BPA에도 새로운 미래
스마트 항만 구축 등 글로벌 거점 항만뿐만 아닙니다. BPA는 북극항로 활성화에 대비한 중장기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송 사장은 북극해 연안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극지 항해에 적합한 친환경 연료 공급 인프라와 특수 하역 장비를 선제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항만 현장 관계자는 "태평양의 '마지막 휴게소' 부산항이 북극을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첫 번째 관문'으로 거듭나려는 야심 찬 행보를 다짐하고 있다"며 "완전 자동화 항만은 북극항로 시대를 대비한 전초기지로 지능형 AI 운영까지 변동성을 최소화하고 선사와 화주에게는 신뢰를 제공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자동화, 북극항로, 대규모 투자 등 부산항은 방향을 정확히 잡고 있다"며 "24시간 멈추지 않는 고동은 대한민국 물류의 현재이자 미래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자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부산=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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